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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칼럼] 여당, 수정안 공개 안해…국민 무시의 정치

‘직권상정’이란 이름의 폭탄 위에 장착된 시계 바늘이 빠르게 회전하고 있다. 여당은 국회의장의 결단을, 야당은 국회의장의 직권상정 철회를, 국회의장은 여야의 합의를 촉구하고 있지만 사나흘 후면 폭탄은 터지고 말 것이라는 게 여의도 정가 주변의 대체적 관측이다.

폭발의 시간은 다가오지만 여전히 아무도 모른다. 본회의장 동시 점거라는 사상 초유의 코미디를 보이면서까지 여야가 전쟁을 하고는 있지만, 정작 무엇을 놓고 전쟁을 벌이려는 건지 말이다. 지난해 12월 언론관계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하고 일주일 만에 직권상정을 통해 처리하려다 여론의 된서리를 맞았던 여당이 이번엔 그 법의 수정안을 제출조차 하지 않고 직권상정을 하겠다며 스위치를 누르고 있기 때문이다.

여당 수정안의 개괄적인 방향은 발표됐다. 지난 17일 국회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원회 나경원 한나라당 간사가 기자간담회를 열고 법안 수정 검토안 일부를 공개한 것이다.

▲ 안상수 한나라당 원내대표
나 의원에 따르면 여당의 수정안은 △신문·대기업의 지상파 방송 경영 2012년까지 유예 △ 시청점유율 30% 상한 규정 도입 등이 주요 내용이다. 전자는 미디어발전국민위원회(여당·자유선진당)와 야당(선진당·친박연대)·무소속 의원들의 의견을, 후자는 창조한국당과 민주당의 수정안 그리고 박근혜 전 대표의 제안을 수용한 결과라고 나 의원은 설명했다.

또 여당 법안 원안이 설정하고 있는 신문·대기업의 방송 지분 상한(지상파 20%, 종합편성채널 30%, 보도전문채널 49%)을 ‘사전 규제’ 장치라고 의미를 부여하며 시청점유율이란 ‘사후 규제’가 더해질 때 선진국보다 강력한 규제가 가능해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신문·대기업이 소유할 수 있는 방송 지분과 관련해 야당, 구체적으론 선진당과의 협상이 끝나지 않은 만큼, 본회의 직권상정 전 수정안을 공개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럴듯하다. 그러나 일견 그럴 뿐이다. 여당이 수렴했다는 의견들의 주체인 민주당, 창조한국당 그리고 박 전 대표 측에서 일제히 반발이 터져 나온 것이다. 특히 독일의 시청점유율 상한 개념을 처음으로 법안에 반영한 이용경 창조한국당 의원은 “여당 수정안의 시청자점유율 30% 상한은 신문·대기업 누구든 방송에 진입, 현재의 MBC·SBS 점유율을 합한 것보다 더 많은 점유율을 보장하겠다는 여론독과점 보장법”이라고 비판했다.

창조한국당의 법안은 독일과 마찬가지로 시청자점유율을 기준으로 신문의 방송 진입을 보장하는 진입규제로서의 역할을 하는데, 여당의 수정안은 이 같은 진입규제의 의미를 전혀 반영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한 마디로 30%라는 수치만을 가져왔을 뿐, 바다를 건너 귤을 탱자로 만들어 놓고도 귤이라 우기는 형국인 셈이다.

‘매체합산 시청점유율 30%’ 기준을 제안, 여당이 언론법 개정의 이유로 ‘방송독과점’을 주장하는 것과 달리 여당의 법 개정이 되레 ‘여론독과점’을 부를 수 있다는 점을 지적했던 박 전 대표도 여당이 자신의 제안을 곡해한 ‘페이크(fake) 법안’을 여당이 강행처리 하려는데 반발하며 지난 19일 “본회의에 참석하게 된다면 반대표를 행사하겠다”고 밝혔다.

이처럼 일부 방향이 공개됐을 뿐임에도 불구하고 여당의 법안 수정안에 대한 비판이 쏟아지고 있지만, 여당은 임시국회 회기 종료일 닷새를 앞두고 국회의장의 직권상정 결단을 거세게 압박하고 있을 뿐이다. 수정안에 대한 국민의 이해도, 야당의 어느 정도의 동의도 필요 없다는 태도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국민은 지금 자신 앞에 놓인 게 모자인지, 코끼리를 삼킨 보아뱀인지 도통 알 수가 없다.

도대체 상황을 이렇게까지 만들고 있는 여당의 자신감은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지난달 18일 나 의원이 언론 인터뷰에서 한 말마따나 “미디어법은 국민들이 이해하기 어려운” 것이기 때문에 이해나 설득을 시키려는 노력보단 계몽하면 될 일이라고 생각하는 걸까. 정보통신정책연구원의 GDP 왜곡과는 상관없이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는” 법 개정이라 주장하고 있는 만큼, 그 주장의 당위성을 확보하기 위해선 반발 정도는 무시해도 좋다고 보는 것일까.

유시민 전 보건복지부 장관은 저서 ‘후불제 민주주의’에서 중국 춘추시대 말기 사상가 한비(韓非)의 말을 인용, 정치 권력자들이 경계해야 할 오류를 지적했다. 책에 언급된 바에 따르면 한비는 용과 마찬가지로 군주에게도 역린(逆鱗)이 있어 이를 잘못 건드리지 않아야 유세(遊說), 다시 말해 군왕을 설득할 수 있다고 했다.

이 말을 현재에 접목해보자. ‘대한민국의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오는’ 시대인 지금, 이 역린은 군왕이 아닌 국민에게 있다. 국민을 잘못 건드리지(무시하지) 않고 설득해야 한다는 말이 되는 것이다. 실제로 대한민국 민주화의 역사는 이 역린을 건드린 정치권력에 대한 국민들의 저항으로 쓰여 왔다. 여당이 국회의장에게 직권상정을 요구하기 전, 국회의장이 직권상정을 결단하기 전 한 번쯤 곱씹어야 할 대목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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