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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신발 끈을 조여 매며

|contsmark0|해가 바뀌어 웬만하면 온갖 장밋빛 약속들이 난무할 법한 때이건만 우리의 스산해진 마음은 지금 이 땅에서 섣불리 희망을 말한다는 게 무척이나 주저되고 조심스럽기마저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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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smark3|지난해 이맘때 새 천년의 시작이라고 요란했던 축제 분위기를 떠올리면 그야말로 너무 빨리 끝난 잔치 같은 생각이 앞섭니다. 새 시대는 축포를쏘아댄다고 그저 오는 게 아니라는 가르침이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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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smark6|성급한 축배의 뒤끝은 이처럼 쓰고도 허탈합니다. 어쩌면 우리가 앞장서불어댄 희망의 나팔 소리가 헛된 희망을 부채질한 것은 아니었나 하는 자책도 피할 수가 없습니다. 우리의 고뇌가 부족했던 탓이라고 봐야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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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smark9|무엇인가에 홀린 듯이 모두가 이리 쏠리고 저리 달려갈 때 우리로서는 그 길은 아닐지도 모른다는 좀 더 치열한 성찰이 있어야했고 필요하다면‘아니다’라는 목소리를 높이는 용기가 있어야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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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smark12|적어도 모두를 어딘가로 휘몰아 잇속을 챙기려는 자들에게 무턱대고 장단을 맞춰주는 우(愚)는범하진 말았어야 했겠지요. 우리의 자화상은 아직도 부끄러울 수밖에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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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smark15|세상이 급속도로 바뀌면서 pd 노릇하기가 갈수록 어려워진다고들 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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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smark18|일상을 지배한 속도의 여신은 충분히 자비롭지가 못한지 숭배의 대열에서 벗어난 무리들에게는 가혹한 박탈로 응징을 해댑니다. 그 속도 숭배의 대오를 따라잡기 힘든 판에 달라진 대중들의 변덕 섞인 기호와 우리의 상상력의 주파수를 맞추기는 또 얼마나 어려운 일이겠습니까. 권력과 자본의 통제와 지배는 세련도를 더해가며 아직도 우리를 옥죄고 있지요. 훈수를 일삼는 이들의 까다로움도 이전 같지가 않습니다. 물론 들어 마땅한 고언까지 마다하는 협량을 옹호하고자 함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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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smark21|까다로운 훈수꾼이 많아지면 돌을 두는 이는 어찌 할 바를 몰라 기량 발휘는 고사하고 때로 돌을 던져버리고픈 충동을 느끼기도 하지요. 우리의 부끄러움을 덜어보고자 둘러대는 ‘상황 탓’으로 들릴까 싶어 더는 안 하겠습니다. 이 또한 우리 하기 나름 일수도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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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smark24|예년 같지 않은 매서운 칼바람이 황량함을 더합니다. 이럴 때일수록 우리의 이웃들인 시청취자들은 우리로부터 진정한 위안과 꿈이 섞인 노래들을 보고듣고 싶어하겠지요. 깨트릴 수 없는 희망을 속삭여줘야하는 것은 고스란히 또 우리의 몫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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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smark27|하되 거짓 희망의 확성이 아닌 보다 낮더라도 참 희망의 전달자가 될 수 있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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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smark30|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나중은 창대하리라, 올 한해 그러기를 진정으로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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