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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시대도 휴머니즘이다

|contsmark0|길을 가다가 수많은 pd들을 만나는 세상이 되었다. 메이저 공중파의 pd에서부터 케이블, 인터넷방송 pd에 이르기까지 실로 엄청난 pd들이 양산되었다. 그런 만큼 소수집단들이 응당 누리게 마련인 사회적 특권도 더 이상 기대할 수 없는 세상이 된 것이다. 오히려 무한경쟁의 수레바퀴를 굴리는 방송노동자의 한사람에 지나지 않는다는 처연한 현실인식은 때로 우리를 슬프게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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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smark5|이렇듯 pd 개개인에게 정체성의 위기까지 불러일으키게 한 장본인이 누구일까? 그것은 ‘새로운 문명’이라고까지 일컬어지는 디지털 기술이다. 기술은 항상 그렇듯 생각보다 빨리 오고 생각보다 빨리 간다. 디지털이라는 말을 논한 지 불과 몇 년만에 우리는 그토록 익숙했던 아날로그에 이별을 고해야 하는 상황에 처해있고, 공중파 방송사는 그 천문학적 비용에도 불구하고 이미 디지털의 길로 접어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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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smark10|이제 디지털 혁명에 적응하는 자는 살아남고 그렇지 못하는 자는 도태되는 과정이 점차 그 속도를 더해갈 것이다. ‘새로운 문명’의 시대가 도래한 만큼 pd들도 이에 적응해 나가기 위해 분연히 노력 해야한다. 변화를 두려워해서도 안 된다. 아직 디지털 혁명의 초창기임을 고려한다면, 지금 새롭게 시작하는 것은 여전히 빠른 것이다. 용기를 가질 일이다. 하지만 더욱 중요한 것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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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smark15|아날로그건 디지털이건, 그 기술적 차이를 뛰어넘어 영원한 것은 ‘인간’이다. 언필칭 ‘디지털 휴머니즘’이라고 떠드는 기업들의 광고들을 보라. 이윤을 쫓는 상업주의도 그 기술만으로는 성공할 수 없다는 것을 스스로 인정하는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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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smark20|그렇다면 디지털 시대에 방송의 휴머니즘은 과연 무엇일까? 지난 시대 우리 pd들이 사회와 방송의 민주화를 위해 투쟁했던 것이 당대의 휴머니즘이었다면, 이제 권위주의를 넘어서 가는 21세기 디지털 시대의 우리의 휴머니즘은 과연 어떤 것이어야 하는가? 분명, 새로운 시각과 방법론이 필요한 시대다. 그래서 참으로 어려운 문제다. 하지만 방송문화의 주역인 pd들이 그 고민을 포기할 때 방송은 디지털이라는 앙상한 기술만이 남고, 상업주의와 시청률만이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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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smark25|디지털이라는 꽃병에 휴머니즘이라는 꽃을 꽂을 권리와 의무는 우리 pd들자신에게 있다. 다시금 스스로를 추스리고 새로이 무장할 일이다. 우리에게 아직도 유효한 것은, ‘어떻게 살아 남느냐’보다 ‘어떻게 사느냐’가 아닌가. 社 說 방송위원회는 독립성이 생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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