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 세포 속에 MB정권의 실정은 기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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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배지 떼고 거리로 나선 정치인 천정배·최문순

매일 오후 6시 서울 명동의 거리를 찾는 두 사람이 있다. 목포의 3대 천재 중 한 명으로 불리며 잘나가는 변호사 생활을 하다가 4선의 국회의원으로 참여정부 당시 여당의 원내대표와 법무장관을 지낸 엘리트 정치인 천정배. 그리고 방송기자 출신으로 전국언론노조 위원장에 이어 MBC 사장까지 지낸 현장에서 잔뼈가 굵은 언론인 출신의 새내기 정치인 최문순.

서로 다른 삶의 궤적을 거쳐 18대 국회에서 만난 이들은 지난달 22일 여당의 언론관계법 날치기 처리 직후 ‘민주주의’와 ‘언론의 자유’를 지켜내지 못한 책임을 지겠다며 하루를 사이에 두고 금배지를 떼어 냈다. 1년 4개월 만의 일이다. 그리고 이들은 일주일도 지나지 않아 명동 거리에서 다시 만났다. ‘언론악법 원천무효 1000만인 서명운동’을 위해서다.

세상의 모든 권력이 마지막까지도 탐하는 권력이라는 정치권력을 스스로 내려놓은 이들이 ‘거리의 정치인’을 선택하면서까지 얻고자 하는 것은 무엇일까. <PD저널>은 거리서명 열흘째인 지난 10일 이들을 만났다.

“MB정권의 잘못, 국민 기억 속에 쌓인다”

▲ 천정배 민주당 의원 ⓒPD저널
역시 관록의 정치인이었다. 먼저 도착한 천정배 의원이 명동거리에 모습을 드러내자 많은 이들이 그를 알아보고 편하게 인사를 건넸고 그 역시 상냥하게 답했다. 거리를 지나던 두 명의 대학생은 서명을 한 후 천 의원과 대화를 하던 기자를 사진사 삼아 기념촬영을 했다.

“지난 토요일(8월 8일) 광화문 광장 1인 시위를 하느라 하루 빠지고 지금까지 열흘 동안 명동에서 서명운동을 진행하고 있는데, 많은 분들이 서명운동에 흔쾌히 응하며 응원도 해주신다. 기독교 신자로서 기독교식으로 말하자면 정말 국민들로부터 은혜를 받는 기분이다.”

국민들로부터 기(氣)를 느낀다며 웃는 그의 말에 꼬투리를 잡았다. 여당 시절 장관까지 지낸 야당의 4선 중진의원으로서 원내에서 할 일이 남아있는 게 아니냐고. 그러나 천 의원은 고개를 저었다. 그는 “지난 1년 4개월은 소수 야당으로서 국회에서 할 수 있는 일이 아무 것도 없음을 확인하는 시간이었다”면서 “원내에서 무엇인가를 이루려면 야당이 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항의인 의원직 사퇴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모든 것을 버리고 단호한 투쟁력을 확보해야만 1996년 신한국당 정부의 노동부·안기부법 날치기 처리 이후 야권과 국민의 반발에 부딪혀 결국 그해 정부가 추진한 각종 정책이 좌초된 것과 같은 결과를 낳을 수 있다는 것이다. ‘사즉생 생즉사(死卽生 生卽死)’라는 얘기다. 그는 “MB정부의 야당 정치인으로서 향후 투옥까지도 각오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언론법 개정에 대한 반대는 처음부터 높았고 여당의 날치기 처리를 비판하는 목소리도 여전히 높지만 정권은 개의치 않는 분위기 아니냐고 다시 한 번 물었다. 그의 각오만으로 돌파할 수 있는 현실이라고 믿는지에 대한 질문이었다.

잠시 침묵의 시간과 함께 천 의원의 시선이 서명을 하는 시민들에게도 옮겨졌다. 그리고 그가 입을 뗐다.

“선거를 통한 정권교체가 가능한 시대인 만큼 그게 불가능했던 과거처럼 국민이 봉기하긴 쉽지 않다고 본다. 하지만 당장 국민이 일어나지 않는다 하여 민주주의에 역행하는 정권의 행태가 잊히거나 사라지는 게 아니다. 국민의 기억 속에 모든 것은 쌓인다.”

“언론 자유 수호의 주체는 언론인이다”

▲ 최문순 민주당 의원
천 의원과 대화를 마친 후 최문순 의원을 찾았다. 쉽게 눈에 들어오지 않아 서명운동을 진행하는 이에게 물으니 “저 앞에서 ‘삐끼’일을 하고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다시 한 번 주위를 살피니 역시나 그의 말마따나 호객행위(?)에 열심인 최 의원의 모습을 찾을 수 있었다.

천 의원에게와 마찬가지로 따지듯 물었다. 언론법 개정은 시작일 뿐인데 그렇게 국회를 떠나버리면 공영방송법·미디어렙·공영방송 민영화 등 남은 문제들은 어떻게 할 거냐고.

“정연주 전 KBS 사장 해임, MBC <PD수첩> 제작진 수사, 미네르바 사건에 이어 언론법 개악 등의 사태에 대해 원내에서 단 하나도 제대로 막아내지 못했다. 누구 한 명은 책임을 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더구나 정부·여당이 야당 자체를 인정하지 않는 게 국회의 현실 아닌가. 국회의원이란 틀을 벗어던지고 더 잘 싸우기 위해 선택한 방법이다.”

그와 함께 서명운동을 진행하고 있는 이들을 보니 정치인 아니면 그들의 보좌진, 그도 아니면 일반 시민들이었다. ‘삼순이 아빠’로 유명한 배우 맹봉학씨도 이날 서명운동에 동참했다. 그러나 언론법 개정 원천무효를 위한 서명운동임에도 불구하고 정작 언론인들의 모습은 거의 보이지 않았다.

이 점을 지적하자 ‘선배 언론인’이기도 한 최 의원은 “오랫동안 언론에 대해 (정권이) 이렇게 하는 것을 경험하지 못했기에 민감하게 심각성을 느끼지 못하는 것일 수 있다”며 변명을 해주면서도 “언론의 자유를 지키는 주체는 야당도 일반 시민도 아닌 ‘언론인’ 자신이어야 함을 잊어선 안 된다”고 이내 쓴소리를 했다.

“여당의 언론법 날치기 처리 과정에서 불거진 부정투표 등의 문제에 대해 헌법재판소가 올바른 결정을 내리길 기대하고 있지만, 중요한 것은 언론법 개정 자체가 원천무효라는 사실이다. 이명박 정권이 언론의 자유 등을 훼손하는 일을 하면서 그때그때 넘기려 할 때 언론이 기록하지 않고 나서지 않는다면 이를 비판하는 국민의 저항도 축적되지 못한다. 언론인의 앞장이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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