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에스트로, 손끝으로 폭풍을 지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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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D의 눈]

시청자의 항의전화를 받았다. 지난 주말 방송된 특집방송, ‘마에스트로 정명훈의 아시아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이하 APO) 공연 중계 실황에 미니 다큐멘터리를 결합한 시도에 대한 반발이었다. 시청자의 항의는 다큐멘터리로 클래식 공연시간을 잡아먹더니만, 결국 전 악장을 방송하지 않고 멋대로 잘라서 내보냈다는 것이었다. 공연 러닝타임이 두 시간을 훌쩍 넘어가므로 어차피 전 악장을 방송하기도 무리였고, 미니 다큐멘터리가 포함되었기 때문에 공연 시간이 더 줄어들었다. 처음부터 시청자의 항의를 예상했었지만, 이 시도에는 반드시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었다.

APO는 정명훈의 명성을 바탕으로 뉴욕, 시카고, 베를린, 런던, 도쿄, 서울 등 세계 28개 정상급 오케스트라에서 활동 중인 아시아의 연주자들로 구성된 아시아 최초의 프로젝트 오케스트라이다. 1997년 창단 이후 한중일 3국을 오가며 매년 한 차례의 대규모 공연을 통해 아시아의 클래식을 세계 정상으로 끌어 올렸다는 찬사를 받고 있다. 이러한 평단과 관객의 호평에 불구하고 APO는 2001년 해산되었다. 세계 각지에서 단원들을 모아 공연을 하기 위해 필요한 막대한 예산 때문에 후원처를 찾기가 어려웠기 때문이었다.

 APO의 창립이념은 단지 APO를 세계 최고의 오케스트라로 만들자는 것이 아니다. 아시아 각국 연주자들이 모여 아시아의 즐겁고 사랑스러운 음악을 세계에 들려준다는 것이다. 마에스트로는 특정 도시, 특정 국가만의 음악발전이 아닌 아시아 전체를 생각하고 이 프로젝트를 진행했다고 한다. 종교적 수준에 가까운 ‘대한민국주의’가 지나치게 일상 속에 파고든 한국에서 얼마나 산뜻한 생각인지. 하지만 그런 산뜻함은 이 프로젝트를 창단 5년 만에 좌초시켰다.

APO같은 국제적 규모의 거대 프로젝트 후원은 문화예술에 확고한 의지는 물론 경제력도 겸비한 선진국이나 문화유산과 재력을 두루 겸비한 대도시가 아니면 어렵다. 마에스트로는 조건을 만족하는 선진국과 대도시를 중심으로 후원을 부탁했으나, 그들은 모두 자국 혹은 자기 도시의 문화 발전에 도움이 되는 프로젝트만의 지원이 우선이라고 했다. 그렇게 몇 년의 공백기를 거친 후, 한국도 서울도 도쿄도 베이징도 아닌 인천의 전폭적 지원으로 2006년 재탄생했고 매년 우리에게 아름답고 사랑스러운 음악을 들려주고 있다.

오케스트라의 글로벌 올스타 프로젝트임을 감안하더라도, 이제 APO는 세계에서 어깨를 견줄만한 사례를 찾기 어려울 만큼의 규모와 극한의 감동을 주는 것으로 유명하다. 이를 지휘하는 마에스트로 정명훈에 대한 평가도 절대적이다. 그러나 우리가 감격하는 세계 최고의 수준의 감동에는 막대한 예산과 지역 정부의 의지와 지역민의 절대적인 동의가 필요했다. 그런 의지와 실행력에 대한 평가는 온전한 것일까?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공연물에 미니 다큐를 결합해 정명훈의 APO를 가능하게 만든 인천의 문화예술지원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을 따름이다. 이 지면을 빌어 시청자의 양해를 구한다. 

▲ 공태희 OBS 예능제작팀 PD

APO의 감동을 온전히 느끼기 위해서는 반드시 전 악장을 감상해야 한다는 시청자의 지적이 백 번 마땅하다. 단위 프로그램 PD의 의지로 어려운 일이지만, 반드시 전 악장이 수록된 재 편집본을 방송하고 싶다. APO가 연주한 말러는 마치 악기로 이루어진 숲에 휘몰아치는 폭풍 같았다. 그리고 그 중심에 손끝으로 폭풍을 지휘하는 마에스트로가 있었다. 그 모습을 다시 한 번 온전하게 보여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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