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탄발언’ 경연장이 된 버라이어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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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 따져보기] 이문원 〈미디어워치〉 편집장대행

한 포털사이트 뉴스페이지에서 ‘폭탄발언’이라는 검색어를 넣어봤다. 기간은 8월25일부터 9월1일까지 일주일 간. 정치계, 스포츠계 뉴스도 종종 눈에 띄지만 연예계 뉴스가 압도적으로 많다. 그 안에서 다시 고르자면, TV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의 연예인 발언을 옮긴 것이 대부분이다.

KBS 2TV 〈해피투게더 시즌3〉, MBC TV 〈황금어장〉 2부 코너 ‘라디오스타’, SBS TV 〈절친노트2〉, KBS 2TV 〈신동엽 신봉선의 샴페인〉, SBS TV 〈야심만만2〉, 그리고 SBS TV 〈스타부부쇼 자기야〉에서의 연예인 발언이 계속 기사화되고 있다. 한국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이 전반적으로 ‘폭탄발언 쇼’가 돼가고 있다는 방증이다.

▲ SBS <스타부부쇼 자기야> ⓒSBS
이 같은 현상의 원인은 단순하다. 프로그램 측 입장에서는, 그렇게 갈 수밖에 없어졌기 때문이다. 출연 연예인 ‘폭탄발언’에 의존하지 않고서는 특색을 만들어낼 수 없다. 한 마디로, ‘기획력’이 부족해서다.
근래 들어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은 꾸준히 지탄의 대상이 돼왔다. 대표적으로, 끊임없는 표절 논란이 있었다. 뭔가 독창적인 듯 여겨지는 기획이 등장하면, 다음날 곧바로 표절 의혹이 제기될 정도였다. 대표적 리얼 버라이어티 프로그램들은 다들 한 두 번씩 표절 논란에 휩싸였다. 가장 최근 사례가 SBS 〈스타킹〉이다. 심지어 EBS 과학 버라이어티 〈과학실험 사이펀〉까지도 의혹의 대상이 됐다.

기획만 등장했다 하면 표절 논란이 일고 지탄을 받으니 아예 ‘기획 없는 버라이어티’로 가게 된 셈이다. 위 언급한 ‘폭탄발언’ 버라이어티 프로그램들은 무대 설정 외 기획적 차별성이 극히 희미하다. 철저히 출연진의 구성과 발언 수위에 의해 차별화 된다. 출연진이 바뀌면 당연히 분위기도 바뀐다. 아예 다른 프로그램처럼 여겨지는 것들도 있다.

물론 그 동안에도 버라이어티는 늘 표절의 연속이었다. 다만 근래 들어 ‘적발’이 더 심해진 것뿐이다. 인터넷 시대가 열리고, 한국 연예인들의 일본 진출이 늘면서 자연스럽게 일본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의 국내 노출도가 높아졌기 때문이다. 이제 대중도 표절 논란에 분노하기보다 짜증을 내고 있다. 아무리 지적하고 비판해도 소용이 없다. 당연한 일이다. 이것은 ‘태도’의 문제가 아니라 ‘세대’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표절’을 별 일 아닌 것처럼 여기던 방송세대 내에선 개선 노력이 소용없다. 크리에이티브 능력과 개념, 시스템 자체가 희박하다. 하고 싶어도 못한다. 결국 다음 세대, 지금의 표절 논란을 지켜보며 경각심을 갖게 된 세대로 ‘물갈이’돼야만 해결될 일이라는 것이다. 모든 종류의 대중문화산업 시스템 개선은 세대교체로만 해결돼왔다. 우리도 1990년대 한국영화 르네상스를 그렇게 일궈냈다. 새 판을 짜야만 끝난다.

그렇다면 지금 해야 할 일은? 그저 계속해서 지적하고 비판하는 수밖에 없다. 지루하고 짜증나는 과정이더라도 별 수 없다. 현 인력을 억지로 교체시킬 수는 없기 때문이다.

▲ 이문원 〈미디어워치〉 편집장대행

미국 영화평론가 에마뉴엘 레비는 대중문화산업 세대교체 기간을 대략 10년으로 봤다. 지금은 더 빠를 수도 있다. 그동안 지금의 젊은 영상세대가 절대 선배들의 방식을 ‘보고 배우지 않도록’ 미디어와 대중은 끝없는 감시를 기울여야 한다. 표절과의 전쟁은 죽은 가지를 쳐낸다기보다는 새싹을 돋운다는 개념으로 출발해야 끝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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