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헨드릭스의 책읽기] (26) 열외인종 잔혹사 (2009)

▲ 〈열외인종 잔혹사〉 (주원규, 한겨레출판, 2009)
아감벤은 〈호모 사케르〉에서 현대의 사회를 이야기할 때 헐벗은 삶(bare-life)이라는 말을 쓴다. 로마시대에 죄를 지은 자가 그런 경우인데 그에게 세금을 부과하거나 어떠한 노동도 시키지 않지만 그를 누구든 죽여도 아무런 상관이 없다. 살아있지만, 목숨은 붙이고 있지만 사회에서 아무런 유의미하지 않은 존재. 좀비 같은 삶이다.

그런 좀비 같은 삶을 사는 사람들, 어디서 죽어도 알 수 없이 처참하게 사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고용보험을 가지고 이야기해볼 수 있을 듯하다. 우선 고용보험 적용대상이지만 가입하지 못한 이들이 196만 명에 이른다. 주15시간 미만 근로자 등 고용보험 적용 제외 대상자도 165만 명이나 된다. 여기에 영세 자영업자 412만 명과 청년층 등 신규 실업자 4만 명, 실업급여 수급조건을 갖추지 못했거나 수급기간이 종료된 실업자 46만 명 등도 ‘사각지대’에 속한다(한겨레 9월 2일자). 쉽게 이야기해 사회적 안전망의 그물 밖에 사는 사람들이 총 823만 명이 되는 것이다(올해 1월 기준).

그러면 그런 사람들은 어떤 모습으로 살아갈까? 주원규의 소설 〈열외인종 잔혹사〉는 그런 사람들을 ‘열외인종’이라며 사회 바깥에 있는 사람으로 말한다. ‘이태백’을 면하려고 어학연수를 다녀오고 토익과 토플 점수를 마련하고 국가 공인이든 민간단체, 협회 주관이든 가리지 않고 자격증을 따온 윤마리아가 맞이한 상황은 외국계 제약회사 무급 인턴사원인 것이다. 학교를 다니지 않으며 알바로 시간을 때우고 PC방에서 밤새고 창문으로 도망치는 일을 습관으로 하는 기무. 탑골 공원에서 전투복을 입고 선글라스를 끼고 시국연설을 하면서 ‘좌익 빨갱이’를 때려잡자고 선동하는 장영달 할아버지는 ‘밥 퍼주는 봉사단체’ 앞에서 호루라기를 불면서 질서를 잡아준 대가로 고깃국을 먹으면서 연명한다. 몇 년 노숙자 생활을 하면서 자신의 ‘짬뽕’ 냄새를 맡을 수 없는 김중혁. 그들이 코엑스 앞에서 십 헤드 카니발(양의 머리탈을 쓰고 살육을 벌이는 페스티벌)의 한 가운데로 들어간다. 11월 24일. 코엑스는 정전이 되고 서울 한 복판에서 죽이고 죽이는 아비규환이 벌어진다.

사실은 우연이기도 하고 필연이기도 하다. 약을 투약하는 알바를 하는 장영달이나, 단속반을 피해서 도망친 김중혁은 우연히 그곳으로 향한다. 데이비드교라는 이교(異敎)의 행사에 끼면 자신의 정규직 전환에 좋은 영향을 미칠 줄 알고 나타난 윤마리아, 온라인 게임 회사의 이벤트에 참여하면 20,000 포인트를 받는다며 좋아서 아이템을 채우려고 권총을 들고 나타난 기무. 하지만 우연인지 아닌지는 전혀 중요치 않다.

그들에게 브레이크가 있을까. 그들이 무엇을 무서워 하긴 할까. 더 이상 나락으로 떨어질 곳이 없다고 느끼는 것은 비단 노숙자 김중혁에 한정된 이야기일까. 뒤에 펼쳐지는 어드벤처보다 각자의 사연들에 공감하게 되는 이유는 뭘까. 아무도 들어주지 않는 절절한 사연, 기껏해야 ‘여성시대’가 들어줄 이야기. 하지만 알고 보면 각자의 사연들을 표현도 못하면서 하루하루를 버티는 좀비들이 과연 남의 이야기이기만 할까. 거기에는 각자의 선택이 없다.

▲ 헨드릭스/ 블로거
사회에서 열외로 밀려나있는 사람들의 이야기. 그 열외는 알고 보면 어디에나 존재한다. 그리고 ‘비즈니스 프렌들리’의 구호아래 격화되는 경쟁의 시대와 빈부격차 확대의 시대는 사회안전망 없이 나락을 두려워 해야 하는 시절이다. 모두가 선택할 수 있는 게 사라지는 순간 곧 좀비들이 등장하고, 그 좀비들이 세상을 뒤덮는 순간 폭동이 실현되는 것은 아닐까.

저작권자 © PD저널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