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적 획일성과 배타성이 빚어낸 그릇된 증오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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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연과 차우진의 연예방담] 2PM 사태로 본 한국사회 현주소

인기 아이돌 그룹 2PM의 리더 박재범(22)씨가 ‘한국 비하 발언’을 이유로 지난 9일 쫓겨나듯 미국으로 떠났다. 한국인의 뿌리와 미국인의 머리를 가진 박재범의 4년 전 발언이 이렇게 큰 파장을 몰고올 거라고 예상한 이는 거의 없었다. 하지만 한 네티즌의 문제제기에서 포털과 인터넷 언론의 유통, 네티즌의 비난 그리고 소속사 JYP엔터테인먼트의 ‘퇴출’까지 걸린 시간은 불과 4일이었다. 이동연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와 차우진 대중음악웹진 ‘weiv’(www.weiv.co.kr) 에디터가 2PM 재범 퇴출 사건을 통해 본 한국사회와 엔터테인먼트 산업의 문제점을 짚었다. 〈편집자주〉

재범의 한국비하? 네티즌·포털·언론 책임?
그것도 아니면 JYP의 문제일까?

▲ 이동연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PD저널
이동연(이하 이) : 이 사건의 핵심이 뭘까. 본인이 직접 썼던 글의 내용일까. 익명의 네티즌과 상업적 포털 저널리즘의 과잉 유통일까. 그것도 아니면 JYP엔터테인먼트(이하 JYP)의 처신 문제일까. 모두 연관이 되겠지만, 발언과 유통 그리고 책임을 어떻게 두느냐에 따라 사건을 보는 시각이 달라질 것 같다.

차우진(이하 차) : 문제는 번역해서 최초에 블로그에 썼던 사람의 왜곡과 오역이었다. 이를 유통한 책임은 포털보다 인터넷 언론사들이 더 크다.

: 발언을 처음 접했던 익명의 유포자는 ‘이거 내가 올리면 대박나겠다’는 생각을 한 것 같다. 여파에 대한 아무 생각이 없었다. 기자 역시 취재하지 않고, 네티즌이 제기한 것을 그대로 긁어서 기사를 썼다. 4년을 준비하고 1년을 활동한 가수가 4일 만에 퇴출된 것이다.

: 속도가 정말 빨랐다. 섹스 비디오나 스캔들이었으면 한 달은 갔을 것이다. JYP에서 탈퇴를 발표하기 전 사과문을 내자마자 MBC 〈일밤〉 ‘노다지’에서도 곧바로 하차했다. JYP 역시 ‘시간 끄는 것보다 손을 놓는 게 우리에게 도움된다’고 생각한 것 같다. 하지만 그런 결정을 하게 만드는 동기나 배경, 분위기가  범국민적인 건 아니었다. 일부 네티즌들이었다.

: 논란이 된 지난 5일, 24시간 안에 2PM 광고가 모두 내려졌다. 물건을 팔아야 하는 회사에서 리스크를 줄이기 위한 조치였겠지만, 그런 신속한 결정이 이뤄지는 게 한국사회다. 성찰이나 합리성, 상대방에 대한 이해나 전제를 바탕으로 하는 게 아니라, 철저하게 자기 이익의 관점에서였다. 이 사건이 한국사회에 던지는 메시지가 적지 않다.

: 블로그 반응도 볼 만하다. RSS로 블로그를 구독하는데 하루 2~3개씩 드라마든 연애 이슈를 쓰는 사람들이 있다. 가족드라마에 비판적이고, 사회·이슈 드라마에 환영하는, 나름 개방적이고 진보적이라는 사람들이다. 그런데 박재범 일에 대해서는 두 번 생각할 것 없다는 식으로 글을 썼다. 오히려 보수적인 사람들이 ‘그래도 너무 한 것 아니냐’는 반응을 보였다. 분열점이 발생한 것이다. 삐뚤어진 민족주의, 잘못된 애국심이 밑에 깔려 있기는 한데 실제로는 블로그 포스팅 하나 더 하려고 한 것이다.

: 설득력 있는 분석이다. 비난과 동정의 패가 나눠지는 게 아니라, 비난했던 사람이 동정도 한다. 아무생각 없이 블로깅하고 댓글을 단다는 것이다. 우리 사회의 금기시 된 문제, 즉 근원적인 이데올로기 정서인 애국과 민족이라는 훈육 받은 감정들이 문제를 촉발시켰다고 본다.

: 재범에 대한 것은 증오에 가까운 분노였다. 박재범이 한국을 떠날 때까지 쓰겠다고 한 사람의 블로그 배경화면은 김대중 대통령 스킨이었다. 블로그 제목으로 ‘선생님의 큰 뜻을 받들어서 살겠다’고 했다. 이런 분열증은 어디에서 오는 것인가 싶다. 이런 사람들은 외국인 영어 강사들이 “한국은 더럽다. 난 고등학교 밖에 안 나왔는데 여대생들이 날 좋아한다”는 것에 대해 “한국을 좋아하는 척이라도 하라”는 식으로 증오나 적의를 드러낸다. 박재범을 욕하는 마음 속에는 국가주의가 있는 것이다. 내가 곧 대한민국이고, 국가를 욕하는 것은 나를 욕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정치적 진보, 문화적 배타주의
한국 사회 새로운 인간형태

: 반응이 ‘쿨’하지 않나. 언론사도 쿨하고, 네티즌도 쿨하다. 이런 쿨한 가면 속에 숨어있는 냉소와 비열함을 기반으로 한 공동체 감정이 두렵다. 마치 사이코 패스와 같은 무감정의 감정이다. 정치적으로는 진보적이면서 문화적으로 배타적이고 획일적이다. 일본을 닮아가는 것 같은데, 일본에 없는 내셜널리즘까지 들어오다 보니, 지구상에서 출현 불가능한, 한국사회가 가지고 있는 새로운 인간형태 탄생이다.

: 문제는 이것들이 나쁘지만, 없어 지지 않을 것이라는데 있다. 최소한 100을 기준으로 박재범에 대해 “양키 고 홈”이라는 게 20~30이라고 하면, 다른 20~30이 “안된다” 하고 나머지가 관망하면서 “이쪽이 맞다. 그르다” 하는 게 적당한데 이게 안 되는 상황이다. 한국사회가 글로벌화 되고 엔터테인먼트 사업이 커지고 있는 상황에서 다국적 멤버가 생길 수밖에 없는데 이런 일이 발생하면 똑같은 상황이 벌어질 것 이라는 게 암담하다.

▲ 2PM 전체 (재범, 준호, 준수, 닉쿤, 찬성, 우영, 택연) ⓒJYP엔터테인먼트
: 부르디외가 패거리 문화를 설명하면서 실제 가담한 자들은 자신들이 공모한다는 사실을 망각하고 산다고 지적했다. 이런 사건 터지고 나면 하나의 패거리가 돼 배타성을 드러내는데, 이게 한국사회를 유지해 왔던 메커니즘인 것 같다. 김대중 전 대통령을 추모하는 사람이 박재범을 미워하는 것도 민족, 조국의 범주로 보면 수긍할 만도 하다. 실체적 허구이지만 상당한 힘을 발휘하고 있다. 해체되지 않으면 똑같은 일이 발생한다. 라이프스타일이나 문화는 탈국적화 돼 있지만 결정적인 순간에는 내셜널리즘을 보인다는 것이다. 어렸을 때부터 훈육된 강고한 주입효과라고 본다.

: 콤플렉스라는 생각이다. 미국에서 살다 왔고 영어 좀 하면 부자라고 생각한다. 한국은 행복지수 제일 낮고 이민가고 싶어 하면서 꼭 이런 일이 발생한다. 쉽게 깨지지도 않고 그게 뭔지도 모르면서 믿게 된다. 열 받는 것은 왜 일관된 기준을 적용하지 않느냐는 것이다. 연예인들에게 이 정도의 잣대를 들이대면서 〈한겨레〉, 〈경향〉에서 정치인들의 부동산 소유와 자녀들 국적 문제를 지적해도 이 정도로 분개하지 않는다. 나보다 센 애들한테 말을 못하고, 만만한 게 연예인들이라 이들에게 퍼붓는다.

연예인에 대한 대중의 관심
사회적 복지 무너진 국가에서 발생

▲ 차우진 대중음악웹진 'weiv' 에디터 ⓒPD저널
: 연예인들에 대한 대중들의 관심도 이 사건과 무관하지 않다. 4년 전의 글을 발견했다는 것은 안티이든 팬이든 연예 문화에 대한 굉장한 집착과 관심 때문이다. 합리적이었다든지 무관심 했다면 이렇게 커지지도 않았을 것이다. 포털 메인기사가 연예뉴스로 채워지고, 주말의 연예오락 프로그램과 케이블까지. 한국인들은 시시콜콜한 연예인 문제를 계속 접하고 산다. 대리만족일까, 스트레스 해소일까. 후자라면 정말 심각하다.

: 땅도 좁고 사람도 적은데 모든 정보가 엔터테인먼트에 집중된다.

: 예전에 파리에서 차를 마시고 있었는데, 친구가 내가 앉은 자리를 보고 “샤론스톤 같은 유명 배우들이 많이 와서 앉는 곳”이라고 말하더라. 재밌는 것은 유럽에서는 이런 자리에 스타가 있다고 해도 눈인사만 잠깐하고, 본인들이 차 마시게 놔둔다는 것이다. 만약 우리나라에서 송혜교가 스타벅스에서 커피 마셨으면 가만 놔뒀겠나.

: 〈사우스 파크〉라는 애니메이션을 보면 브리트니 스피어스 얘기가 나온다. 어떤 무리가 브리트니에게 버린 자신의 아이를 보여주겠다고 유인한 뒤 브리트니를 방에 가두고 사진을 찍고 이를 파파라치에 보낸다. 사건이 커져서 기자들이 몰려오고, 모텔을 포위하고 돌도 던지고 비난을 한다. 그러자 브리트니가 엽총을 머리에 쏘고 자살한다. 하지만 죽지 않고, 계속 걸어 다닌다. 그러면서 옆에 있는 사람은 “넌 재기할 수 있다”고 말하고 애들은 “이것이 새로운 스타일”이라며 브리트니를 팔고 다닌다. 말도 못하고 생각도 못하지만, 사람들은 계속 사진을 찍는다. 무시무시한 양면성이다. 스타를 원하지만, 그 스타의 밥줄은 내가 쥐고 있고, 어떤 식으로든 권력을 행사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을 보여준다.

: 2000년 초반에 봉천동에서 결손가정의 한 학생을 인터뷰를 했는데 지긋지긋한 가난에서 벗어나고 싶다며 이효리 언니 같은 스타가 되고 싶은 게 꿈이라고 말했다. 그 애한테는 신분상승을 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인 것이다. 사회적으로 배제당한 자들이 그렇게 있다. 10대 팬들은 아이돌에 대해서 동일시하는 동시에 지독하게 질투도 한다. ‘쟤가 뭔데, 노래도 별로인데, 돈은 많이 번다’는 것이다. 동경과 증오심이 동시에 생기면서 실체와 허상을 혼동한다. 한국 엔터테인먼트 산업이 미국과 비슷한데 사회적 환경에서 나타나는 양상도 흡사하다. 미국은 의료·교육 등의 복지가 망가진 반면, 경제적 복지가 갖춰진 유럽은 누구를 증오하거나 동일시하는 게 덜 하다. 재범을 증오하는 심리 안에 이런 게 작동한다고 본다.

: 먹고 사는 게 팍팍해서 그런 것 같다. 인터넷 뉴스에 악플 다는 사람들 보면, 어떤 기사든 비슷한 내용으로 단다. 피해의식을 적개심으로 드러낸다. ‘애가 내 지갑을 노리고 있다’는 것이다. 내 일이 안 풀리는 것은 누구 탓이겠냐. 있다면 정부 탓이다. 그런 것을 구체적인 상황을 없애는데 쏟는 게 아니라 다르게 쏟는다. 해봤자 안 된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예전에는 연예인을 향해 TV에서 한 번 웃고 1000만원 번다고 비난하다가, 요즘에는 고생한다는 것 같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는데…. 크게 달라진 것 같지 않다.

: 〈프레시안〉에 기고한 글에 댓글이 꽤 많이 달려서 쭉 훑어봤는데, 못 마땅해 하는 댓글이 태반이었다. ‘너도 교수냐’ ‘너무 오버하지 마라’ ‘당신도 대한민국 시민으로서 어떻게 동조를 하냐’는 것이었다. 오버하지 말라는 것은 대화와 소통의 문제, 국립대 교수가 애국심이 부족하다는 것은 민족주의, “한국에서 돈 벌려고 하려면 예의가 있어야지” 하는 심리까지. 이를 관통하는 것은 다 비슷하다고 본다. 〈미녀들의 수다〉 독일인 베라 논란에서부터 교포 연예인, 제3세계 노동자까지 배타적 애국주의 뿐만 아니라, 소통과 공동체, 돈과 성공 등에 대해 한국사회가 단순하고 획일적으로 생각하는 데서 온다.

: 제대로 배우지 못해서 그렇다. 이것과 저것을 통합해서 생각을 못한다. 외국인 비하 발언 나쁘다는 것은 알면서도, 스스로에 대해 성찰하는 것이 안 되니까 이중적인 태도가 나타난다.

JYP ‘퇴출’에 초점 맞춘 2PM의 팬덤
한국사회와 저널리즘에 문제제기 해야

: 2PM 팬들의 반응 역시 주목할 만 하다. 과거 H.O.T 해체할 때 거리시위에 나선 팬들이 800명이었는데 지난 주말에는 2000명이 모였다. 아쉬운 것은 팬들이 발언과 유통, 그리고 퇴출 가운데서 퇴출에만 무게를 뒀다는 것이다. 기획사를 공격하는 것보다 한국사회와 저널리즘에 적극적으로 문제제기를 하는 쪽이 바람직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과거 서태지 팬덤과 다르다. 그 부분이 아쉽다.

: JYP 태도도 아쉽다. 박진영이 한국 정서에 맞춰서 설득하려고 했으면 “내가 두들겨 패서라도 애를 만들겠다. 혹은 버리지 않겠다”고 하는 게 맞는데 그런 것도 아니었다. 박재범 의지에 대해 제고하지 않고, 도마뱀 꼬리 자르듯이 아예 종지부를 찍었다.

▲ 서울 청담동 JYP엔터테인먼트 앞에서 열린 2PM 팬들의 시위 ⓒ2PM 팬클럽 '언더그라운드'
: 한국 연예제작 시스템에 대해 전반적으로 점검해 볼 때가 왔다. 고 장자연 사태에서의 한국의 권력과 연예자본, 동반신기 사건에서 주종관계에 따른 계약문제, 그리고 박재범은 다문화시대에 아이돌 정체성에 대한 고찰이 필요하다. 무서운 것은 이런 모든 일들이 시간이 지나가면 없었다는 듯이 사라지는 것이다.

: 이 사건을 사람으로 봐야 한다는 생각이다. 대상화의 문제이다. TV에서 아무리 떠들어도, 이 사람도 사람이라는 생각을 해야 한다. 10억을 벌든 100억을 벌든 인권이 있다. 기본 가이드라인이 있어야 한다. 그게 기본이 됐을 때 이런 저런 얘길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번 일로 뭔가를 배웠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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