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킷감청과 통신비밀보호법의 개정필요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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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송경재 경희대 학술연구교수

최근 국가정보원이 이메일과 인터넷 게시글, 메신저 등을 감청하기 위해 인터넷 회선을 통째로 들여다보는 패킷감청(Deep Packet Inspection)을 하고 있다는 의혹이 제기되었다. 패킷감청은 인터넷회선 감청으로서 컴퓨터 네트워크 패킷을 필터링하여 네트워크를 통해 전달되는 내용을 모두 감청하는 방법이다. 이 방법은 인터넷 회선을 감청하는 것이므로 사이버 망명을 통해 국외 게시판에서 글을 쓰고 블로그 활동을 하더라도 모두 감시할 수 있다.

그러나 패킷감청의 무서움은 범죄 피의자 개인에만 해당되지 않는다는 점에 있다. 예컨대, 집에서 사용하는 컴퓨터는 가족 모두가 사용하는 것이고 회사 컴퓨터 역시 다른 사람들이 사용했다면 이것도 모두 감청할 수 있는 것이다. 말 그대로 인터넷에 접속하면 모든 것이 감청되는 기술이기 때문에 연좌제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또 패킷감청은 실제 범죄사실과 연관성 없는 개인의 사생활을 유추하고 구성할 수 있는 무서움이 있다. 어떤 사이트를 방문하며, 어떤 뉴스를 보았고, 무슨 음악을 듣고, 글을 어디에 쓰는지를 확인하여 대상자를 유리에 갇힌 사람과 같이 볼 수 있다.

▲ 한겨레 9월5일자 22면.
감시공포와 자기검열

이제 인터넷은 더 이상 사적공간이 아니다. 국가정보원만이 아니라 경찰에서도 인터넷에서의 글쓰기와 관련된 정보를 수 시간 안에 ID와 주민등록번호, 주소 등을 확인할 수 있다. 심지어는 군 기관인 기무사마저 개인 블로그에 올린 글에 대한 감시를 하고 있다고 하니 그야말로 인터넷 공안정국에 다름 아니다.

그러나 더욱 무서운 것은 자기검열이다. 인터넷 감청 사건이 공개되면서 선량한 네티즌들은 글쓰기를 두려워하고 결국 입을 닫아버릴 것이다. 그럴 경우 헌법재판소가 제시한 “가장 참여촉진적인 매체” 인터넷은 감시와 프라이버시 침해의 공간이 되어 버릴 것이다.

정보사회학자인 카스텔(Castells)은 인터넷의 장점을 권력에 대한 투명성과 시민감시를 위한 도구로 평가했다. 하지만 반면에 개인이 국가나 타인에 의해 오히려 감시당할 수도 있음을 경고한다. 그래서 인터넷의 역사를 자유주의 기술과 감시기술의 투쟁의 과정이었다고 보았다. 어쩌면 그의 통찰은 한국의 현실에 너무 적합한 것으로 보인다.

한국의 통신비밀 관련법은 정치사건과 궤가 닿아 있다. 지난 1992년 대선 때 ‘부산 초원복집’ 사건을 계기로 <통신비밀보호법>이 제정되었고 법의 핵심 목표는 도청의 폐해를 막자는 정치권의 합의로 만들어진 것이다. 그런데 오히려 이 법은 법률적 요건만 갖추면 어떠한 기술적 감청도 가능하고 포괄적인 감청이 가능한 수단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사법부의 엄격한 법 적용과 법 개정 필요성

정보인권에서 감청의 문제점은 굳이 이야기 하지 않아도 심각하다. 따라서 통신비밀보호법 안에서만 논의할 문제가 아니라, 이를 개인의 사생활 등과 관련한 인권 문제로 보아야 할 것이다. 무엇보다 헌법재판소가 2002년 명시한 국가기밀 유출과 아동 포르노, 명예훼손, 저작권 침해에 관한 사안이 아닌 경우 보다 엄격한 법적용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사법부의 인터넷 기술에 대한 이해와 엄격한 법리 판단이 필요하다. 특히 인터넷 기술에 대한 이해부족이 우려된다. 인터넷은 전화와 달리 컴퓨터를 통해 모든 통신정보가 기록된다. 그래서 이번 패킷감청과 같이 잘못하면 피의자 이외의 다른 많은 사람들이 피해를 볼 소지가 다분하다. 반드시 필수 불가결할 때만 감청을 허용하되 그것도 대상과 범위, 시간 등을 제한해야 한다.

▲ 송경재 경희대 학술연구교수

그러나 궁극적으로는 법률 정비가 필요하다. 예를 들어 관련 없는 통신이 감청될 경우 감청을 끊고, 이를 사후에 법원에 증거로 제출하는 방식도 필요하다. 현재 일본 등에서 시행되고 있다고 한다. 따라서 한국의 <통신비밀보호법>도 인권침해 논란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관련 법규의 개정이 시급하다. 그래야만 한 개인이 단지 아는 사람과 인터넷을 했다는 이유만으로 수사기관에서 정보를 열람할 수 있는 현 제도의 문제점을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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