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산 참사’ 상처 어루만지는 연극공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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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 날 낳으시고’ 공연한 부산 극단 ‘새벽’

차갑고 서늘한 기운은 아직까지 용산을 휘감고 있었다. ‘사고건물의 접근을 금합니다’라는 하얀 플래카드가 지난날 끔찍했던 겨울의 참사를 비정하게 설명해주고 있는 듯 했다. 부서진 망루는 검게 그을린 건물 옥상 위에 아직도 흉물스러운 기세로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다. “여기 사람 있었다”고 타는 절규를 전하듯이.

242일째다(지난 18일 기준). 하지만 정부는 ‘묵묵부답’이다. 용산재판은 다음달 29일 법원의 심리가 끝난다. 형사소송법상 구속 피고인의 재판은 6개월 내에 끝내도록 정해져 있어 지난 15일부터 재판은 일주일에 두 차례씩 열리며 속도를 내고 있다. 

사람들에게 잘 알려지진 않았지만, 용산4구역에는 매일 저녁 천주교사제단의 추모미사를 비롯해 가수, 화가, 연극인 등 예술인들의 노래와 그림, 공연이 이어진다. 유가족들의 슬픔을 어루만져 주기 위해서다. 지난 18일 저녁, 이곳에서 부산지역의 극단 ‘새벽’의 1인극 ‘어머니 날 낳으시고’의 공연이 열렸다. ‘아직 끝나지 않은 연극’이라는 이름 하에 지난 3월부터 매주 금요일 저녁, 용산 레아호프 앞에서 진행되고 있는 공연의 일환이다. 이날 공연한 ‘어머니 날 낳으시고’는 일란성 쌍웅이 영란, 정란의 삶과 어머니를 통해 돌아본 1970~80년대의 달동네와 철거민 이야기를 다룬 작품이다.

▲ 극단 '새벽'이 지난 18일 저녁 서울 용산4구역 레아호프 앞에서 '어머니 날 낳으시고' 공연을 하고 있다. ⓒPD저널
1인칭 화자의 시점으로 다른 역을 연기하는 기존의 1인극과 달리, 배우 변현주가 극 중 쌍둥이 자매인 영란, 정란을 각각 일인칭 관점으로 교차시켜가며 9명의 인물을 연기하는 ‘인칭 교차극’ 형태를 보이고 있는 게 특징이다. 1996년에 초연됐던 작품으로 1세대 배우인 故 윤명숙 씨가 연기를 맡아 부산 국제신문에서 주는 ‘올해의 좋은 연극상’을 수상하는 등 높은 작품성과 연기력을 평가 받은 작품이다.

극본·연출을 맡은 이성민 감독은 “부산·경남 지역에서 주로 공연을 해오다 서울 극단 ‘오늘’과 소극장네트워크 운동(인디씨어터)의 문제의식을 공유하기 위해 서울에서 처음 선보이게 됐다”며 “다음달 8일부터 시작되는 대학로 공연을 앞두고 용산참사 현장을 먼저 찾게 됐다”고 말했다. 소극장네트워크 운동은 최근 연극 공연이 스타배우 위주의 프로젝트 작품에 치우치고 있다고 비판하면서 극단 위주의 창작 공동체 회복을 기치로 내걸고 있다.

1시간20분 공연에서 1인9역의 맡은 배우 변현주 씨는 “아들을 낳으려고 작은 부인을 얻은 아버지, 이 바람에 뒷전으로 밀려나며 겪는 어머니의 수모, 결국 뒤늦게 쌍둥이 자매를 낳았지만 아들을 못 낳았다는 이유로 소박을 맞게 되는 어머니를 그린 작품”이라며 “지금도 적잖은 여성이 유사한 경험 속에 있다”고 말했다.

그는 “용산 참사 이후 과정들이 뭐라고 표현할 수 없을 만큼 갑갑해 ‘저도 함께 하고 있습니다’는 마음을 나누고 싶었다”며 “예술 노동자들의 이런 움직임을 통해 철거민 유가족들이 고통 받는 날이 길어지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공연소감을 밝혔다.

극단 ‘새벽’ 연기연출팀의 유미희 씨는 “서울 공연 입장 수입의 20%는 용산철거민대책위원회 기금으로 기부하고, 대책위 기금 조성을 위한 관람권도 별도로 만들어 배포해 도울 예정”이라고 말했다.

▲ '용산 살인철거 희생자·열사 합동 분양소'가 참사발생 240여일이 지났지만 그대로 열려있다. ⓒPD저널

▲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의 시국선인 및 기도회 역시 이날 같은 장소에서 열렸다. ⓒPD저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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