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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석훈의 세상읽기]

▲ 우석훈 연세대 문화인류학과 강사 (88만원 세대 저자)
문화라는 말은 이제 사람들이 아주 많이 쓰는 말이 되었다. 무엇인가를 키운다는 단어를 어원으로 가지고 있는 ‘culture’라는 말은 전가의 보도처럼 사용되지만, 구조와 개인 사이를 연결시켜주는 다리라는, 생각보다는 아주 어려운 얘기이기도 하다. 우리는 문화를 통해 조직을 배우고 구조를 배운다. 숨어있고 은폐되어 있는 사회의 구조가 그 자체로 자신의 모습을 보여주는 일은 없다.

설령 그 구조로 모두가 동의하는 것이라도 정말로 사회 구조가 사람들의 상식과 일치한다는 보장은 없다. 그런 점에서 문화는 언어와 같은 것이다. 한 사회에 태어난 이상 영어가 더 실용적이라고 영어를 선택하거나, 프랑스어가 더 멋지다고 프랑스어를 선택할 수는 없다. 만약 그런 개인이 존재한다면, 그 개인의 사회화는 불가능할 것이다. 언어가 선택이 아닌 것처럼 문화도 많은 경우 개인의 선택이 아니다.

특히 계층문화 혹은 또래문화와 같은 것들은 선택이 아닌 경우가 많다. 그러나 문화는 역시 개인의 문제이다. 그 자체로는 구조가 아닐 뿐더러 상품과 같이 개인에게 선택되는 것이다. 자신에게 주어진 문화를 반드시 받아들여야 하는 것은 아니다. 만약 21세기에 헌법이 만들어진다면, 아마도 헌법에 사상의 자유가 국민의 기본권에 들어가는 것처럼 문화의 자유도 국민의 기본권에 들어가게 될 것이다. 주류 문화가 있듯이 하위문화라는 것도 존재하지만, 그 각각의 문화 내에도 수많은 변이가 존재할 수 있다. 물론 극단적인 문화주의의 시각이라면 어떤 문화도 다른 문화에 대해서 우월성을 주장해서는 안 된다고 말하기도 한다.

문화가 경제에 미치는 영향 중 경제학자들이 가장 많이 주장하는 얘기는 근면한 문화가 있고, 근면하지 않은 문화가 있다는 점이다. 그러나 문화는 변하는 것이고, 경제와 밀접한 영향을 가지고 있어서, 경제가 문화를 만드는 경향보다는 오히려 문화가 경제를 만들어내는 경향이 더 많을 수 있다. 불과 2세기 전만 해도 독일인은 프랑스나 영국인들에게 게으르다는 평가를 받았고, 심지어 서양인들은 2세기 전의 일본인에 대해서 너무 게으른 국민들이라서 경제가 어렵다고 지적을 했다고 한다.

▲ http://www.arte.tv
문화로부터 경제 현상을 직접 분석하려는 경제성장주의의 문제점에 대해서는 장하준이 〈나쁜 사마리아인〉에서 아주 재밌게 지적한 바가 있다. 문화와 경제의 관계는 생각보다는 복잡하고, 특히 21세기로 넘어오면서 때로는 심층적이고 때로는 표피적인 관계들을 만들어내는 것 같다. 나는 생태가 목적이고, 수단이 문화라는 문장 하나로 생태경제학과 문화경제학의 관계를 설정해놓고 연구를 하는 중이다. 만약 우리가 국민경제의 생태적 대전환을 만들어내고자 한다면, 이 때 중요한 수단 중의 하나가 문화를 경제의 중요한 요소로 활용해야 할 것이다. 문화는 언어이며, 생활이기도 하고, 어떤 사람에게는 존재 그 자체이기도 하다.

우리가 보는 지긋지긋한 이 “부자 되세요”의 경제 근본주의는, “배가 고파도 문화와 함께 하겠다”는 수많은 문화생산자들의 등장과 함께 극복될 수 있을 것이라는 게 내가 가진 신념 중의 하나이다. 이런 것을 전제로 볼 때, TV는 한국만이 아니라 대부분의 나라에서 문화의 중추신경이며, 때때로 문화 그 자체이기도 하다. 많은 국민들에게 TV에 나오지 않는 것은 문화가 아니며, TV를 통해서 문화를 재생산하게 된다. 프랑스와 독일 정부가 합작으로 만들어내는 ‘아르떼(Arte)’라는 방송은 아방가르드 문화 자체를 TV에서 구현하려고 하는 시도에서 생긴 방송이라고 볼 수 있다.

TV를 통해서 전체 문화를 고양시키겠다는 유럽의 시도는 눈물겹다. 한국의 40~50대 주류 남자 중에는 TV는 안본다고 하는 사람들도 종종 있지만, 오히려 그래서 세상 돌아가는 일에 ‘아줌마’ 보다도 무식한 지식인들이 존재하기도 한다. 이명박 정부의 ‘방송 장악’을 언론의 측면에서, 그리고 보도의 공정성 측면에서만 보려고 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그 궁극적 의도는 언론장악이라는 협의의 개념이 아니라 문화장악이라고 보인다. 한나라당의 문화로 방송을 개편하는 것, 그것이 궁극의 목표 아닌가?

그러나 이러한 문화의 획일화는 그 자체로 문화의 경제적 속성을 죽이는 일이기도 하다. 고분고분해지고 획일화된 문화에서 등장하는 문화적 요소들은 매력도 없을 뿐더러, 경쟁력도 없다. 문화는 그 자체로 반항적인 것이고, 반물질적인 것이 아니었던가? 매일매일의 TV는 문화의 전선이기도 하지만, 경제의 전선이기도 하다. 그래서 지금의 방송 장악은, 반 언론적이기도 하지만 반경제적이기도 하다. 문화는 다양성 그리고 이질성을 먹고 자라는 악동이다. 길들지 않아야 강한 문화인데, 이걸 길들이겠다는 문화정책과 방송정책은, 그야말로 소탐대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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