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노조가 엄기영 사장의 ‘눈치 보기’를 강하게 비판하고 나섰다. 방송문화진흥회(이사장 김우룡, 이하 방문진)로부터 ‘MBC 개혁’을 조건으로 유임을 약속받은 엄기영 사장이 정권과 방문진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성급하게 개혁을 추진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엄기영 사장은 지난 23일 방문진 임시이사회에 참석해 “단체협약 개정 내용에 대하여 9월말경까지 원칙적 합의를 하려고 한다”고 밝혔다. 또 이날 발행된 사보 ‘주간MBC’ 1면에는 ‘노사협의회, MBC 미래위원회 구성 합의’와 ‘분과별 명단 및 중점 논의 사항’이라는 기사를 실었다. 이에 대해 MBC노조는 “사측이 일방적 희망 사항을 마치 ‘합의사항’인 양 발표한 것은 사내외의 눈치를 보며 생색을 내기 위한 것으로 해석할 수밖에 없다”고 비판했다.
노조의 표현대로 최근 엄기영 사장의 행보는 방문진을 지나치게 의식한다는 인상을 풍긴다. 엄 사장이 “정도를 가겠다”며 ‘뉴 MBC 플랜’을 선언한 것이 지난달 31일. 그런데 불과 열흘도 지나지 않아 엄 사장은 ‘9월 중순 노사추진협의회 구성, 9월 말까지 단체협약 개정과 본부장 책임제 원칙적 합의’와 같은 구체적인 일정표를 방문진에 내놓았다. 단체협약 개정, 구조조정 등 방문진이 업무보고 과정에서 질책하고 요구한 것들이 대부분이다. 또 MBC노조에 따르면 엄 사장은 최홍재 이사 등이 요구하고 있는 〈PD수첩〉 재조사에 응하고, 보수단체들이 문제 삼은 일부 프로그램 진행자를 교체하겠다는 의사를 표명했다고 한다.
물론 엄 사장으로선 조바심이 날만도 하다. 방문진은 엄 사장의 ‘MBC 개혁’ 성과에 따라 재신임 여부를 결정하겠다는 방침이다. 엄 사장의 임기는 원래 2011년 2월까지이지만, 이르면 내년 2월이 될 수도 있다. 엄 사장이 올해까지 ‘뉴 MBC 플랜’ 추진 일정 대부분을 완료하겠다고 한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을 터다. 말로는 “자리에 연연하지 않겠다”고 했지만, 방문진의 요구에 적당히 타협해 남은 임기를 지키려는 듯한 태도는 실망감을 안겨준다.
정권의 KBS 장악에 따라 해임당한 정연주 전 사장은 최근 엄 사장에게 공개편지를 띄우고, “해볼 만한 싸움”이라며 엄 사장에 대한 MBC노조의 지지를 그 이유로 들었다. MBC는 물론 엄 사장 자신을 위해서도 노사간 신뢰 회복이 시급한 이유다. 엄 사장의 재신임을 물어야 할 곳은 방문진이 아니라 MBC 구성원들과 국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