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8만원 세대의 우정과 환대의 공간 만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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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헨드릭스의 책읽기] (28) 혁명은 이렇게 조용히 (2009)

88만원 세대, 새로운 프레임의 출현

▲ <혁명은 이렇게 조용히> (우석훈, 레디앙, 2009)
‘이태백’이라는 말이 나오기 시작하던 순간부터 살며시 뭔가 잡힐 듯 잡히지 않는 문제가 있었다. ‘청년실업’의 문제가 슬몃슬몃 기어 나오고 있었다. 하지만 그 의미에 대해서 전통적인 사회과학의 저자들은 그것들을 정확하게 어떠한 개념으로 던지지 못했다. 우석훈은 2007년 박권일과의 공저 〈88만원 세대〉를 통해 그 이야기를 한다. 20대의 평균임금 세전 금액 88만원. 우석훈은 ‘공포 경제학자’ 혹은 ‘호러 경제학’을 하는 경제학자로 불리게 된다.

새로운 프레임이 생겼다. 때 아닌 ‘세대론’ 논쟁이 붙기 시작했다. 40대인 386과, 20대의 세대 문제로 환원해버린 프레임에서 싸움이 벌어지기도 했고, 20대의 ‘속성’을 가지고 이러쿵저러쿵 논쟁이 벌어지기도 했다. 하지만 논쟁의 흐름과 상관없이 ‘88만원 세대’라는 말은 더 확고하게 각인이 되었다. 모두 ‘세대론’ 프레임과 ‘88만원 세대’ 프레임을 벗어나지 못했다. 욕하거나 반박하거나 동의하거나 찬양하거나. 아무 상관없이 계속 상승효과가 났다.

결자해지

우석훈이 〈혁명은 이렇게 조용히〉를 출간한다고 했을 때 난 ‘결자해지’를 떠올렸다. 뭔가 뾰족한 ‘수’라도 기대했다. 나 역시 ‘88만원 세대’의 복판에 걸려있기 때문이다. 어떻게 해도 길이 잘 보이지 않는다. 어쩌란 말인가. 그냥 각자 가고 있다. ‘각개약진’을 꿈꾼다.
 
하지만 각개약진이 온전히 모두에게 가능하지 않을 거라는 것도 모두 안다. “부자 되세요!” 앞에 빠져있는 ‘주어’가 우리 모두가 아니라는 것도 다 안다. 그 말을 하면서 오히려 서로 부자가 아닌 사실을 환기시키고 있는 것이다(p.47). 신자유주의적 질서가 강요하는 경쟁이 살아남는 일부만을 남겨둔다는 것도 잘 알고 있다.

그러면서도 자기 최면을 통해서 이겨내려 한다. 〈시크릿〉이나 〈행복한 이기주의자〉, 〈부자아빠 가난한 아빠〉를 읽고 〈이기는 습관〉을 익히려 한다. 이기지 못할 확률이 높다는 것도 사실 잘 안다. 그러면서도 읽는 건 불안해서다. 외로워서다. 요약하자면 “내 몸은 신자유주의에요”(p.53).

〈88만원 세대〉가 그 불안의 경제적 구조에 대해 말했다면, 〈혁명은 이렇게 조용히〉는 조금 더 20대의 곁에 다가가 그들을 관찰한 모습들을 보여준다. 각자는 “너무 힘들어요” 혹은 “죽겠어요”라고 말하는데, 집단으로의 20대는 “우린 괜찮아요. 전 정말 열심히 공부할 수 있어요, 믿어 주세요!”라고 말한다. 실질적으로 정책 수요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정책 요구는 없는, 일종의 딜레마 상황이다(p.152).

진 짜기 - 20대의 공간 확보

우석훈은 ‘진’을 짜자고 한다. 개개인의 ‘각개약진’은 언제나 사회적인 권력과 부를 장악하고 있는 명박과 그의 동맹군에 의해서 ‘각개격파’ 당하기 일쑤다(p.85). 홀몸으로 한 명 한 명 조자룡처럼 싸우기에는 힘이 부치다. 게다가 ‘매니저 맘’에 의해서 자라온 20대, 5지 선다 ‘시나공’(시험에 나오는 공부법) 말고는 다른 대응법을 모르는 20대는 홀로 싸울 수 없다.

그리고 그 대응법조차 모르는 이들은 더욱 더 파편화되어 사회 음지에 있다. 이런 20대들을 우석훈은 ‘난쟁이들’이라고 한다. 이 난쟁이들의 ‘연대’를 어떻게 끌어낼 것인가. 그게 바로 ‘진’이다. 20대들을 묶어내려 해도 어느새 강남의 20대들은 강남과 비강남을 분리하여 사고하곤 한다(p.104).

이것은 신자유주의 체제가 강요하는 ‘몸’의 완성이기도 하지만 20대 사이의 신뢰의 붕괴라고도 볼 수 있는 거다. 그 이유를 우석훈은 ‘공포’와 ‘불안’이라고 지적한다. “이것은 어쩌면 지난 10년간 우리가 한 발만 옆으로 가도 죽을 수 있다고 교육한 결과인지 모른다.”(p.105).

두 가지의 ‘진’의 경로가 제시된다. 시민운동을 활용하는 법과 정당(정치)을 활용하는 방법. 기존의 ‘대리인’ 운동으로 진행되어왔던 시민운동 안에 20대의 여지는 그리 넓지 않다고 한다. 오히려 자신들의 ‘당사자 운동’으로서의 시민운동이 제기된다. “매달 1만 원 정도 후원할 수 있는 1만 명의 20대”를 확보하자고 한다(p.121).

노동권, 주거권, 보건권, 교육권 - 어떤 이슈를 던질 건가

20대들이 어떤 이슈를 던져야 유의미한 지점들을 얻어낼 수 있을까? 우석훈의 전작 〈한미FTA 폭주를 멈춰라〉에서 백미는 미국과 래칫(역진 금지)나 최혜국 조항을 포함할 거면 차라리 거기다가 이민 조항을 포함하여 ‘노동권’을 넣자고 했던 구절이다. 협상가로써 생활했던 경력들은 구체적으로 당장 명확해지는 핵심들을 짚어내는 장점을 이번에도 보여준다.

네 가지의 권리를 이야기한다. 먼저 노동권이다. 노동 ‘형태’는 유연적으로 하되 고용에 관한 보장을 해야 한다. 그리고 사회임금체계를 좀 더 강화해야 한다고 말한다. 두 번째는 주거권이다. 부동산 거품이 문제가 되던 순간들에 선진국의 대도시들은 ‘사회적 주거’ 라는 개념을 도입하여 미분양된 공간들을 ‘기숙사’와 ‘학생 아파트’로 활용했다(p.157).

현재 지방에서의 많은 아파트들이 미분양 사태를 맞고 있는데 그에 대한 대안과 동시에 20대의 ‘주거권’을 같이 이슈로 던지는 거다. 세 번째는 복지권이다. 프랑스는 1인당 GDP 5천 불 시대에 ‘문화 복지’ 개념을 공공복지의 개념에 넣었다. 또한 무상 의료의 개념이 잡혀있다. 우파의 15년 집권기에도 이러한 틀은 크게 변하지 않았는데 이 이슈 역시 20대를 위해 시급하다 말한다.

마지막으로는 교육권이다. “지자체에 더 많은 예산을 배정하고, 일종의 ‘교육 쿠폰’ 같은 것들을 통해서 20대를 중심에 놓고 평생 교육 체계를 대폭 강화하면, 20대들의 경제적 삶을 실제로 지원하는 효과가 있을뿐더러, 지금까지 말로만 외치던 지식경제의 기반도 강화할 수 있을 것”이라 한다(p.160).

▲ 헨드릭스/ 블로거
마지막으로 우석훈이 20대와 ‘함께’ 만들고 싶은 세계가 인상적이다. “내가 한국 20대들과 만들고 싶은 세계는 소설책도, 영화도 많이 볼 수 있고, 마음껏 꿈꾸며, 그것을 실현해 먹고살 수 있는 곳, 누구도 누구 위에 올라서거나 누구를 불행하게 하지 않으면서 자연과 어우러져 소박하게 살 수 있는 곳이다. 최소한 20대들이 창문이라도 달린 방에서 살고 지하나 반지하방에서 지상으로 올라와 살게 해 주고 싶다. 그리고 전 세대들처럼 인상 구기면서 살지 않고, 명랑하게 웃으면서 늘 재밌는 일들만 하면서 살아가게 해 주고 싶다. 배고프지 않고, 외롭지 않고, 잔인하지 않고, 그러면서도 사람들과 충분히 마음을 나누며 사는 삶. 이 정도의 소박한 꿈도 혁명 없이 가능하지 않단 말인가?”(p.176)

우석훈의 조커 카드 한 장이 20대에게 넘어갔다. 이제 20대는 그 카드로 무엇을 할 것인가, 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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