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영화제 좌파공세, 제 살 깎아먹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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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원성윤 기자

“싱가포르에서는 TV·라디오가 정부에 의해 통제됩니다. 이렇게 미디어가 제한되기 때문에 가장 독립적인 방식인 영화를 통해 은유적으로 표현합니다.”

올해 부산국제영화제에 초청받은 영화 〈블루맨션〉을 연출한 글렌 고에이 감독은 관객과의 대화(GV섹션)에서 이 같이 밝혔다. 첫 번째 작품 〈영원한 열정〉을 통해 1999년 선댄스 영화제에서 최우수상을 수상한 이후 10년 만에 내놓은 작품에 대한 소회치고는 다소 의미심장해보였다. 〈블루맨션〉은 아시아의 기본적 정서인 가부장제 하에서 벌어진 한 재벌집안의 회장의 죽음을 통해 돌아보게 되는 가족의 이야기를 블랙 코미디로 풀어낸 작품이다.

하지만 영화 가운데서 정사장면이 통째로 잘려나가고, 누드부분은 모자이크 처리 되는 등의 검열을 겪은 글렌 고에이 감독은 “싱가포르 인구가 감소하고 있어서, 이런 장면은 허용해줄 법도 한데…”라며 씁쓸한 한 웃음을 지었다.

“미디어에 대한 통제가 심하다”는 글렌 고에이 감독의 이야기를 허투루 들을 수 없었다. KBS, MBC, YTN 등한국을 대표하는 미디어들이 이명박 정권 출범 직후부터 현재까지 2년도 지나지 않은 시간 동안 정치적 독립성, 중립성에 대한 위협을 끊임없이 받고 있고, 영화계의 상황도 이와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올해 부산영화제에는 ‘좌파’ 공세가 어느 해보다 드셌다. 영화제 집행부 구성을 비롯해 출품작에 이념 공세를 퍼부었고, 부산국제영화제에 대항마로 서울충무로국제영화제를 내세우고 있다는 소문이 영화계에 파다하게 퍼져있다. 서울 중구청이 맡고 있는 영화제를 서울시가 맡아 부산을 넘어서는 국제영화제로 만들겠다는 것이었다. 이름은 ‘충무로’를 걷어내고 서울영화제로, 집행위원장을 보수적인 영화배우 이덕화 씨를 선임한 것도, 그런 수순을 밟기 위한 전철이라는 것이었다.

▲ 김동호 부산국제영화제 집행위원장 ⓒPiff
올해를 끝으로 자리에서 물러나려 했던 김동호 부산영화제 공동집행위원장은 “좌파영화제라는 공세에 대처하기 위해서는 누가 봐도 좌파가 아닌 내가 이 과도기를 버텨주는 게 좋겠다는 판단이 들었다”고 내년까지 자리를 지키겠다는 의지를 피력하기도 했다.

이런 공세는 출품작들에도 계속 됐다. 노근리 학살 다룬 〈작은 연못〉은 한국전쟁에 대해 알지 못했던 우매한 주인공들이 희생당하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비언소〉, 〈늘근 도둑 이야기〉 등으로 사회 비판 의식이 투철한 연극을 선보였던 이상용 감독의 첫 영화 데뷔작인 〈작은 연못〉은 특정 이데올로기 입장에서 다루기보다는 삶의 공동체를 이루고 있는 주민들을 집단적인 형태로 다루고 있는 작품이었다.

이 밖에도 정치·사회적 비판을 한 영화에 대해 배급사를 통해 직·간접적으로 내용수정을 가하는 일까지 벌어지는 상식 밖의 ‘검열’이 벌어지기도 해 해당 감독들이 분통을 터뜨리기도 했다. 하지만 영화사 관계자는 배급 전의 작품에 행여나 불이익이 올까 해당 내용이 알려지는 것을 극도로 꺼려했다.

최근 한국영화의 평균제작비는 2~3년에 30억원 비해 3분의 1 수준인 10억 원으로 감소했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가장 먼저 줄이게 되는 비용은 스태프 인건비라 게 업계의 전언이다. 크랭크인을 해놓고도 영화를 결국 완성하지 못하는, 소위 ‘엎어지는 작품’들은 70%를 상회한다고. 이런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1000만 관객의 〈해운대〉를 비롯해 해외에서 인정받는 한국영화는 더욱 늘어나고 있다.

올해 14번째를 맞이한 부산영화제 역시 역대 최대 규모의 예산과 작품 수, 게스트 수준에서 도쿄영화제, 상하이영화제를 제치고 아시아최고영화제로 자리매김했다. 국제영화제의 수준을 가늠할 수 있는 월드 프리미어(세계 최초상영)도 과거보다 괄목할 만한 수준으로 많이 늘어났다.

KBS가 신뢰도·영향력 1위 등의 성과들에도 불구하고 이념공세에 시달리다 사장 교체이후 저널리즘의 급격한 저하로 이어진 것처럼 부산영화제가 자칫 이 같은 전철을 밟게 되는 것은 아닐까 걱정이 앞선다. 제살 깎아먹는 우를 범하지 말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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