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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중일 프로듀서 포럼 둘째 날. 김종우 PD의 <아무도 묻지 않은 죽음> 작품 감상이 끝나자마자 일본의 미츠시마 히로아키 PD가 김 PD를 찾아왔다. 히로아키 PD는 이번 프로듀서 포럼 출품작 가운데 하나인 <인터넷 카페 난민>의 제작자. <인터넷 카페 난민>은 일본 도시 빈민들이 모이는 ‘인터넷 카페’에서 생활하는 18살 소녀의 이야기를 담은 작품이다.
<아무도 묻지 않은 죽음>은 서울 도심 한복판 고시원에서 어렵게 생활하다 이른바 ‘묻지마 범죄’의 희생자가 된 이들의 이야기다. 두 작품 모두 이번 한중일 PD포럼의 주제인 ‘도시와 인간’의 어두운 부분을 조명했다. 두 PD 사이에 자연스레 공감대가 형성됐다.
김 PD는 “히로아키 PD는 빈곤 문제에 대해 계속 관심을 갖고 제작해온 PD”라며 “PD 본인의 의지가 없으면 그러한 작업을 하기 힘든데 비슷한 생각을 갖고 제작하고 있는 사람을 만나게 돼 반가웠다”고 말했다. <아무도 묻지 않은 죽음>은 중국 제작자들의 관심도 끌었다. 작품 감상이 끝난 후 한 중국 PD는 “이러한 사건이 한국뿐 아니라 다른 나라에서도 발생가능해 보는 내내 눈물을 참을 수 없었다”고 평했다.
그곳에는 아들 수술비를 모으려 밥도 사먹지 못하며 일하던 엄마, 학비를 마련하려 아르바이트를 하던 딸 등 도심에서 고단한 삶을 꾸려가던 이들이 있었다. 왜 그런 끔찍한 사건이 발생했는지에 대한 사회 구조적인 분석이 아니라 한 사람 한 사람의 ‘이야기’가 생생하게 담겼다. 가끔 재연이 들어갔고, 다닥다닥 붙은 고시원의 좁은 방을 표현하기 위해 세트를 지어 위에서 내려다보는 카메라 샷을 쓰기도 했다.
김 PD는 “범행 동기, 사회 구조 분석은 어떻게 하더라도 미흡한 느낌이 들었다”며 “유가족을 만나며 느낀 ‘감정’ 위주로 만든 프로그램”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또 “제일 중요한 건 고시원이란 공간이었다”며 “범인이 바로 옆에 살고 있었다는 느낌을 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희생자들의 이야기가 끝나고 마지막 장면에선 사건이 발생한 논현동 먹자골목의 화려한 네온사인이 켜진 거리가 등장한다. 김 PD는 “그 거리는 도시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곳이자 소비하는 공간”이라며 “그런데 그 화려한 거리에서 노동하는 사람들은 드러나지 않는다. 희생자들의 이야기를 들은 뒤 그 거리의 풍경을 다시 봤을 때 부여되는 ‘비극성’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 풍경이 확장되면 서울이란 도시 전체가 된다. 김 PD는 “그런 느낌 역시 함께 주고 싶었다”고 덧붙였다.
“내가 술 마시러 간 저 자리에서, 내가 사는 서울에서 그런 끔찍한 일이 있었다는 것을 감정적으로 공유했으면 했다. 죄책감까지 가질 필요는 없지만 시청자들이 이 다큐를 보고 뭔가 불편한 감정을 가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평범한 사람들이 느낄 수 있는 ‘불편한 감정’, 그것이 이번 다큐 제작의 목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