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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석훈의 세상읽기]

▲ 우석훈 연세대 문화인류학과 강사 (88만원 세대 저자)
1989년 움베르트 에코는 ‘포르노 영화를 식별하는 방법’이라는 칼럼을 쓴 적이 있다. 우리는 이 오래된 칼럼을 〈세상의 바보들에게 웃으면서 화내는 방법〉이라는 이름으로 출간된 그의 칼럼 모음집에서 볼 수 있다. 참고로 이 책과 역시 에코의 〈글쓰기의 유혹〉이라는 두 권의 책이 내가 시시껄렁한 글들을 칼럼이라는 형태로 써보겠다고 용기를 내게 만든 책이었다.

다나라고 불리는 도넬라 메도우 여사의 정확하면서도 간결하고 또한 우아한 칼럼들만 보았다면, 도저히 나는 칼럼이라는 형식의 글을 쓸 수 있을 것이라는 용기를 내지는 못했을 것이다. 하여간 5년 전에 서울신문에 첫 칼럼을 쓰면서 가능하면 나는 시시껄렁하게 칼럼을 써보겠다고 생각했지만, 지금까지 별로 그렇게 쓰지는 못한 것 같다. 아무래도 나는 에코가 아니니까, 내가 쓴 칼럼을 지키지 못하고, 또한 그렇게 내가 지키지 못할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처음부터 지킬 수 있는 칼럼을 쓰게 된다. 짤리거나 고쳐달라고 할 것을 알고 있고, 그 앞에서 내가 부당하다고 말할 수 없는 게 뻔한데도 일부러 그렇게 쓴다면, 바보이거나 만용이거나 그럴 것이다.

그러나 이제부터 칼럼은 가능하면 시시껄렁하게 써야겠다고 얼마 전에 마음을 먹었고, 또 가능하면 일간지나 점잖은 그런 매체가 아니라 패션지, 골프전문 잡지, 아니면 태권도 전문지, 그런 곳에 쓰도록 하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PD저널〉은 시시껄렁한 칼럼을 실어주는 곳은 아니지만, 역시 이곳에도 시시껄렁하게 쓰는 게 좋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이렇게 마음을 먹은 것은 에코의 표현을 빌리자면, 어느 포르노의 위력이다. 자, 우리 같이 한 번 포르노라는 것을 어떻게 정의할 수 있는지 생각해보자.

“요약하자면 이렇다. 영화관으로 들어가라. 만일 배우들이 A지점에서 B지점으로 이동하면서 여러분이 원하는 것 이상으로 늑장을 부린다면, 당신이 보고 있는 것은 포르노 영화이다.” (에코)

대체적으로 포르노성(?)의 기준을 세 가지 정도 세울 수 있을 것이다. 도입부가 본 내용과는 아무 상관이 없는 것, 특정 장면이 아주 길게 나오는 것, 결론을 이미 알고 있거나 알 필요가 없는 것. 이 기준대로라면 아주 유사한 채널은 스타크래프트 리그를 끊임없이 재방송해주는 게임방송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약간의 차이점은 그 결론을 미리 알지는 못한다는 점이다. 끊임없이 전개되는 유사한 작전과 유사한 플레이임에도 불구하고 저그의 이재동이나 마재윤도 늘 이기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결국 끝까지 보게 된다. 그렇다면 한국에서 포르노 방송은 무엇일까?

요즘의 KBS 방송도 조금만 노력하면 거의 포르노(?)까지 될 수는 있지만, 때때로 크게 결심한 어느 작가나 초짜 PD가 국장과 사장의 독수리 같은 눈초리를 피해서 얘기치 않은 멘트 하나를 살짝 끼워넣거나 해석이 어려운 난해한 장면을 하나 삽입함으로써, 전체의 결론을 모호한 지경으로 만든다. 그러니까 이거 이명박 지지하라는 거야, 지지하지 말라는 거야?

▲ ⓒKTV 홈페이지
그러나 KTV는 포르노성(?)에서 KBS와 MBC를 가볍게 제친다. 참고로 KTV는 정부가 직접 운용하는, 그래서 요즘 청와대에서 무슨 생각을 하고 있나 살펴보기 위해서 내가 최근 가장 많은 시간을 들여서 보고 있는 방송이다. 모든 포르노들이 그렇듯이, 역겹지만 결국 끝까지 보게 된다. 보고 나면 역시 허무해진다. KTV의 본방송은 5분 때때로 10분씩 계속되는 4대강 홍보, FTA 홍보 등 각종 정책 홍보물이다.

많은 포르노가 그렇듯이 화려하고 아름답고, 때때로 주인공을 집중 클로즈업하면서 아름다움과 선정성을 최대로 부각시킨다. 프로그램은 이 광고프로만 보면 시청자가 지겹기 때문에 왜 우리가 이 광고방송을 보아야 하는지, 즉 ‘이동하는 장면’이다. 계속해서 정책홍보만 보다보면, 정부의 선의가 ‘지겨움’으로 왜곡될 수 있기 때문에, 대국굴기 같은 한물간 다큐멘터리를 틀어준다. 이명박 대통령이 요즘 무슨 생각하는지, KTV를 보시라. 정부가 무슨 마음으로 4대강을 밀어붙이는지 알고 싶다면, KTV를 보시라. 포르노성 농후한 정책 방송이라는 신 장르를 볼 수 있으리라.

그러나 KTV는 절대로 포르노는 아니다. 포르노는 숨어서, 돈 내고 보는 것이지, 국민 세금으로 만드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게다가 19금이 아닌 포르노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니까 KTV는 포르노는 절대 아니다. 포르노의 특성과 가장 유사하지만, 우리들의 세금으로 만드는 이 노골적이고 직접적인 방송, 이것을 어떻게 개선해야 진정한 공영방송으로 진화하게 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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