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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민우의 음악한담]

▲ 최민우 대중음악웹진 weiv 편집장
요즘은 잘 안 오지만, 몇 년 전만 해도 전화를 받자마자 “축하합니다 고객님!” 하는 외침과 함께 “고객님께서는 저희회사 우수고객으로 선정되어 회사 창립 5주년을 맞아 벌이는 설악산 콘도 3박 4일 무료 쿠폰 이벤트에 당첨되셨는데 이 이벤트에 참여하시려면 이것저것(대개는 개인정보나 신용카드 번호)이 필요하기 때문에 다음과 같은 약정에 동의하시면……” 운운하는 전화가 꽤 있었다.

물론 알고 있다. 대개 “축하합니다 고객……”에서 전화를 끊는다는 건. 이 자리에서 텔레마케터의 엄청난 감정노동을 폄하할 생각은 조금도 없다. 내가 텔레마케터의 권유를 끝까지 들을 만큼 착하다고 주장하려는 것도 아니다. 다만 얼마 전 한 인터넷 기사에서 가수 백지영이 “10년 동안 가수라는 직업을 해오면서 연말에 받는 상이 중요하게 생각되지 않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라고 했다는 걸 읽고, 이제는 가수들 본인들에게도 상이라는 것이 그런 이벤트 당첨(을 빙자한 광고)전화 정도의 가치를 갖게 된 건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어서 해 본 소리다.

사실 생각해보면 그렇지 않은가. 언제부턴가 상이라는 것이, 특히 대중음악 분야의 많은 상이 일종의 공로상으로 둔갑했다는 느낌이 드는 것이 나 혼자뿐인가. 그게 아니라고 강변하는 사람이 의심스러운 것도 혼자뿐인가. 상을 주관하는 주최측의 행사에 열심히 참여한 대가로 주어지는 것이 혹여 상이란 것이 아닌가.

이런 문제점을 느끼는 이들이 종종 이르는 결론은 상의 공정성이 보장되어야 한다는 것이다(백지영의 발언도 한 온라인 음원 업체가 ‘공정하게’ 열겠다는 시상식 기자간담회에서 나온 이야기다). 허나 개인적으로는 생각이 좀 다르다.

▲ 2009 Mnet Asian Music Awards ⓒMnet
상이란 애초에 공정한 게 아니다. 상은 ‘편파적’이다. 그리고 그래야 한다. 공정한 걸 원하면 수능시험장에 앉아 있으면 된다. 공정성을 보편성과 혼동하면 안 된다. 공정성은 절차의 문제고, 보편성은 상이 포괄하는 대상과 관련된 문제다. 상이 가져야 하는 건 보편성이 아니라 개성 혹은 ‘취향’이다. 이를테면 그래미상과 아메리칸 뮤직 어워드는 상의 취향 자체가 다르다. 전자는 좀 ‘있어 보이는’ 음악을, 후자는 ‘많이 사랑받는’ 음악을 택한다.

그 취향에 따라 수상자 선정 방식도 달라진다. 전자는 ‘있어 보이는’ 심사위원, 후자는 팬들의 투표. 따라서 자기 취향이 분명한 시상식은 자연스레 공정해진다. 왜? 자기들 상에 어울리는 음악을 그에 어울리는 절차에 맞춰 뽑으면 그게 공정한 거니까. 공정성은 그 절차에 빈틈이 없다는 것을 뜻하는 것이지 애초에 어떤 방식으로 선정하건 상을 줄 생각도 없는 후보자를, 그래서 그걸 미리 알고 참여하지 않겠다는 후보자를 ‘공정성을 위해’ 억지로 목록에 올려놓는 걸 말하는 게 아니다.

이런 언급이 최근 있었던 어떤 특정한 시상식을 연상시킬 수도 있다(그리고 실은 그렇다. 안 그러면 왜 갑자기 여기서 이러겠나). 그러나 당연하게도, 이게 단지 그 특정 시상식만의 문제는 아니다. 나는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공정한 척 하는 편파적인 시상식이 아니라 공정하게 편파적인 시상식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근본적으로, 그것이 결국에는 그 상을 받는 아티스트의 미래에도 근본적으로 도움이 될 것이다. 상이란 게 마일리지 적립은 아니지 않은가. 이런 불평이 누군가에게는 텔레마케터의 홍보멘트처럼 들릴 수도 있겠지만, 그래서 “요즘의 시상식이란……”하는 순간 끊어버릴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누군가는 귀를 기울여 주지 않을까. 내가 가끔 착하게 그러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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