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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연의 영화이야기]

▲ MBC FM <이주연의 영화음악> 진행자, 이주연 아나운서
윤여정, 이미숙, 고현정, 최지우, 김민희, 김옥빈 여섯 명의 여배우들이 나오는, 제목도 심플하게 〈여배우들〉인 영화에서 최지우는 말한다. “힘들게 일 끝내고 나면 어우, 너무 고생했어. 당분간 일하지 말아야지 하면서도 다른 여배우들이 방송이나 영화에 나오는 걸 보면, 저거 내가 했어야 되는데. 내가 할 걸. 하는 욕심이 딱 생길 때. 아, 역시 나는 배우구나. 뭐 그런 것?” 음…. 여배우가 할 법한 생각이구나. 그럼 이미숙의 이 말은? “내가 원래 쥐띤데 그때는 돼지띠여야만 했어. 내가 출생의 비밀이 있잖아.”

여섯 명의 여배우들이 모여 화보를 찍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에피소드. 그리고 그들의 입을 통해 그들 자신의 이야기를 한다는 것은 주목을 끌기에 쉽지만 어쩌면 안이해 보일 수도 있는 발상이었다. 하지만 영화를 만든 이재용 감독은 곁에서 지켜본 여배우들의 매력을 자기 혼자 알고 있기에는 너무 아까워 영화로 만들고 싶었다고 말했다. 게다가 공동각본가에 나란히 이름을 올린 여섯 명의 여배우들. 그들의 입에서 나온 말들이 그들의 진짜 이야기라는 뜻일까. 그렇다면 과연 얼마나?

홍보자료에는 감독도 배우들 본인도 과연 어디까지가 실제이고 어디서부터가 연기인지 구분할 수 없다고 미끌미끌 빠져나갔지만 영화를 보며 ‘과연 저 말은 진짜일까’ ‘저 배우의 저 성격은 정말인가?’ 추측해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역사적 이야기나 실존 인물에 상상력을 덧붙인 장르 팩션(faction). 하지만 이 영화의 경우 사실과 허구를 뒤섞은 모양새가 꽤 재미있는 것이 동시대에 생존해 있는 여배우들의 입에서 나오는 이야기들이 꽤나 진실하고 그럴 듯 하게 들려서 내가 모르는 저들의 세계는 정말 저렇지 않을까 싶은 것이다. 사극에서 불거지는 역사 왜곡의 의심도 할 필요 없이, 마치 이 시대 유행하는 리얼리티 쇼와도 같이.

▲ 영화 <여배우들>
보다 보면 실제 이야기 아닌가 싶은 다큐멘터리의 친구는 또한 팩션 외에 페이크 다큐(fake documentary)라는 장르가 있다. 가짜 다큐라는 이름대로 이 영화는 일단 다큐멘터리의 형식을 빌어 촬영하는데, 다큐멘터리가 사실을 촬영한 장르라는 것이 각인된 점을 이용해 관객의 몰입도를 높이는 것이다. 흡사 다큐멘터리처럼 인터뷰가 나온다든지 내레이션이 흐른다든지 극영화의 모양새가 아닌 옷을 입고 있어 자칫 헷갈릴 수 있다.

〈블레어 윗치〉, 〈REC〉 같은 영화가 이런 페이크 다큐인데 요즘은 유사물도 많아져서 예를 들어 〈클로버 필드〉 같이 홈 비디오로 찍은 형식을 취해 괴수물의 현장감을 높이는가하면 〈디스트릭스9〉 같이 대표적인 뉴스채널의 보도물 형식을 삽입하기도 한다. 외계인의 우주선이 남아프리카 공화국에 착륙해 상주하는데 그들과 인간과의 마찰을 뉴스의 형식으로 보도하는 것이다. 극영화라는 것을 뻔히 알지만 체감되는 현실감은 높아질 수밖에 없다.

흔히 ‘영화 같다‘는 표현은 ‘꿈과 같다‘ 혹은 ‘비현실적이다’와 같은 뜻으로 쓰인다. 그래서 사람들은 일상에 지쳐 현실에서 도피하고 싶을 때 스크린 앞에 앉는다. 하지만 꿈과 같은 영화들이 사랑받는 한편으로는 이렇게 현실보다 더 현실적인 영화가 만들어지고 있다. 다큐멘터리가 아니면서 다큐인 척하는 영화들, 사실이 아니면서 사실인 척하는 영화들. 어쩌면 사람들이 속이고 싶어 하는 혹은 속고 싶어 하는 욕망은 영화라는 장르를 통해서 영민하게 지속 확대되어 온건 아닐까. ‘현실보다 더 현실적인’이라는 말에 담긴 함정을 읽으면서도 우리가 계속 영화를 보는 이유, 영화의 존재 지점이 바로 거기에 있다. 현실과 꿈 사이 어딘가 우리의 영혼이 머무는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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