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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D의 눈]

홍세화씨의 신작 ‘생각의 좌표’를 읽다가 문득 서글퍼졌다. 답답하고 슬프고 안타까운 감정이 교차 편집되면서 지난 2년여의 시간이 플래시백 되는 느낌이라고 할까. 내 생각과 짐작이 틀렸을 수도 있지만 홍세화씨는 이제 필사적인(?) 투쟁의 단계로 접어든 것처럼 보인다. 

현학적인 수사도 버리고 에세이의 묘미도 돌아보지 않고 오로지 필사적인 대국민 설득과 소통에 천착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허세나 꾸밈을 모두 던지고 알기 쉽고 단도직입적인 끈질긴 설득의 화법을 구사한다. 마치 어느 고등학교 수업 시간의 선생님처럼 혹은 동생과 자식들에게 친절하지만 진지한 얼굴로 세상을 가르치는 형과 아버지처럼.

‘이제 레토릭도 사치의 영역’이라고 선언하는 텍스트처럼 읽히는 이 책을 저자가 구상하게 된 배경은 무엇이었을까? 저자는 끊임없이 질문한다. 나는 내 생각의 주인인가? 내가 주인이 아닌 내 생각들은 어디에서 비롯된 것인가? 내가 주체적으로 걸러내지 못한 기득권 사회의 통념이 내 생각의 자리에 대신 똬리를 틀고 들어서 있는 것은 아닌가? MB정부 2년의 세월이 그에게 던진 화두일 것이다.

‘생각’을 ‘방송’으로 바꾸고 ‘나’를 ‘국민’으로 바꿔서 이 질문을 우리들에게 다시 던져본다. 국민은 ‘방송’의 주인인가? 국민이 주인이 아닌 ‘방송’들은 어디에서 비롯된 것인가? 국민이 주체적으로 걸러내지 못한 기득권 사회의 통념이 ‘방송’의 자리에 대신 들어서 있는 것은 아닌가? 얼굴이 화끈거려온다. 방송을 국민의 품에 돌려드리지 못한 자책감과 주인 아닌 자들이 주인 행세를 하는 꼴을 뻔히 지켜보기만 해야 하는 무력감도 내 부끄러움의 한 원인이지만, 그보다 더 부끄러운 사실은 조·중·동만도 못한 방송인들의 용기 때문이다.

국민도 권력도 무서워하지 않는다는 조·중·동 기자들. 하지만 신문사의 사주가 내 기사를 보고 있다는 사실 앞에서는 한없이 용기백배하는 기자들. 섬뜩하지만 한편 부러운 것도 사실이다. 물론 그 주인이 역사와 도덕 앞에 당당할 수 없는 거짓 주인임은 새삼 재론의 여지가 없을 테지만, 주인을 위해서 앞뒤를 돌아보지 않는 견마지로의 자세를 보면서 우리는 부끄러워해야 한다.  

하늘 같이 높고 당당한 국민을 주인으로 모시면서 그 주인을 위해서 우리가 한 것이 무엇이 있는지 자문해봐야 한다. 우리는 무엇이 두려워 국민을 버리고 거짓 주인에게 고개를 조아리는 것일까? 조·중·동 만큼만 하자. 제발!  

▲ 김욱한 포항MBC 제작팀장

방송의 좌표는 바로 국민들의 품속에 위치하고 있음을 알아야한다. 좌표를 잃어버리면 앞으로 나아가지도 못하고 뒤로 돌아가지도 못한다. 지금 방송이 국민의 품에서 떠나와 있다면 우리가 얼마만큼 떠밀려왔는지부터 자각하자. 그리고 파도를 넘고 바람을 헤치며 국민을 향해 멈출 수 없는 노를 저어가야 한다. 그게 우리가 갈 길이다.  
‘이러다간 오래 못 가지 / 이러다간 끝내 못 가지’ 라고 박노해가 절규를 뱉었던 그 시절처럼 우린 정말 이대로 가도 되는 것일까? 다시 국민의 품으로 돌아 갈 수 있을까? 이렇게 흘러 가다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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