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등끼리 만나는 더러운 세상’이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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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성윤의 연예계 엎어컷] ‘김혜수-유해진’ 커플을 보는 시각

새해 벽두부터 연예계를 뒤흔들어 놓은 열애 소식. 바로 지난 4일 연인 사이임을 공개한 김혜수와 유해진 커플 이야기다. ‘연예인 커플 중 최고의 반전’이라는 누리꾼들의 농담 섞인 댓글마저도 주목을 받을 정도로 화제가 되고 있다. 한국의 브란젤리나 커플이라며 인터넷을 뜨겁게 달구던 장동건-고소영 커플 소식은 벌써 잊혀진 듯하다.

지난 겨울, KBS <미녀들의 수다>에서 한 여대생이 180cm 이하의 남자를 ‘루저’라고 지목하자 기름에 물을 부은 듯 들끓었다. 신체조건에 대한 ‘스펙’을 직접적으로 거론해서일까. MBC <후플러스>(7일 방송)는 “고용불안과 저임금에 시달리는 남성들의 현실적 불만이 배어있다”고 이런 논란의 배경을 분석했다. 최악의 취업난을 겪고 있는 대한민국의 20대, 요즘 그들의 가장 큰 고민은 바로 ‘외모’라는 것이다.

외모로 사람을 차별하고, 차별받는 게 우리사회의 현주소다. 그래서 사람들은 ‘루저’라는 한 마디에 그토록 화가 났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대중은 이율배반적이다. 장동건-고소영을 두고 ‘1등끼리 만나는 더러운 세상’이라는 소리를 하면서도 이들에게는 박수와 찬사를, 김혜수-유해진에 대해서는 자꾸만 이유를 들이댄다.

언론들은 이런 관심에 부응하듯 김혜수와 유해진의 열애 이유를 부지런히 써내렸다. 유해진이 문학·클래식·순수미술 등 다방면으로 예술적 감각이 뛰어나고, 각 분야의 전문지식 그리고 운동으로 다져진 몸매까지 소유하고 있다는 게 대체적인 분석이었다. ‘왜’라는 반응이 쏟아지는 당혹스러움 속에서 김혜수가 멋지다며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는 분위기로 정리되는 듯 했다. 이만하면 김혜수의 ‘엣지남’으로 간택 받을만한 조건이 아니냐는 것이다.

▲ [일간스포츠] 올해 연애 트렌드 '미녀와 야수'-기타 19면-20100105
‘아!’하고 무릎을 쳐야할까. 김혜수의 전 매니저 박성혜 씨는 “김혜수 열애에 대한 대중의 찬사는 선입견”이라며 세간의 관심에 일침을 놓았다. 엔터테인먼트 그룹 싸이더스HQ의 본부장을 지냈던 박씨는 <문화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네티즌의 격려와 찬사를 “기뻐해야 할 일인지 잘 모르겠다”면서 “모든 여배우가 출세 지향적으로 파트너를 원할 것이라는 건 편견이다. 그렇지 않은 여배우가 더 많다”고 설명했다.

그렇다. 편견이다. 20년 넘게 연예계 톱스타로서 화려한 이미지를 쌓아온 김혜수와 소박한 이미지의 유해진이 어떻게 연인으로 발전하게 됐는지에 대해 주목하는 대중의 심리. 김동인의 <발가락이 닮았다> 마냥 기어이 취향의 공유로 유사성을 찾으려는, 이 ‘믿어지지, 아니 믿고 싶지 않은’ 현상을 분석하려는 세간의 말과 글이 난 못마땅하다. 어쩌면 유해진이 가진 것을 ‘스펙’이라며 또 다른 능력으로 추켜세울 지도 모를 일이다.

두 사람 인연의 시작은 애완동물도, 영화도, 미술도, 아니라고 한다. 1998년 유해진이 주연을 맡은 연극 <새들은 횡단보도로 건너지 않는다>로 거슬러 올라간다. 극단 목화 소속이었던 유해진은 98년 이 연극에서 ‘재호’ 역을 맡았는데 관객이었던 김혜수가 유해진의 연기에 큰 감동을 받고 동료 배우로서 그를 주목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이후 영화 <신라의 달밤>(2001) 첫 작품을 시작으로, <타짜>(2006)에 함께 출연하면서 3년 가까이 사랑을 키워 온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둘의 사랑은 그렇게 오래 전부터 시작됐는지도 모를 일이다.

김혜수가 유해진을 만나러가면서 썼던 선 캡을 보면서 언론과 대중의 관심이 얼마나 무서워했는지, 웃음 보다는 안쓰러움이 앞섰다. 그걸 굳이 또 찍어서 장사를 했던 모 언론도 유감스럽다. 부디 ‘조건도 더럽게 따지는’ 이 사회에서 두 사람의 앞길에 ‘조건 없는 사랑’으로 충만한 꽃이 만개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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