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좋은 프로 하고 PD 생활 끝내야 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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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D저널 22돌, ‘22살’에게 묻다]장영주 KBS 교양제작국 PD

〈PD저널〉이 올해로 22세가 되었다. 지난 시간 〈PD저널〉이 걸어온 길은 민주화에 대한 강한 열망과 실천의 궤적과도 닮아 있다. 22주년을 맞이하면서 〈PD저널〉은 지나온 시간을 되돌아보는 동시에 앞으로의 시간을 고민하고 있다. 그래서 올해로 22년차가 되는 PD와 22세 PD 지망생과의 인터뷰를 통해 2010년 현재 ‘우리’가 가진 고민의 접점을 찾아보고자 한다. /편집자주

장영주 PD는 1989년 2월 KBS에 입사했다. 그의 ‘PD 나이’ 이제 22세에 접어든 것이다.

민주화 항쟁 직후였던 89년, 당시로선 KBS에 입사하는 게 그리 자랑스러운 일만은 아니었다. KBS가 ‘땡전뉴스’나 보도하던, 권력의 나팔수에 지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KBS에 합격했다고 하자 친구들이 ‘변절자’라며 비아냥거렸다”고 그는 회상한다.

그렇게 ‘KBS맨’이 됐지만, 적응은 역시 쉽지 않았다. 입사 직후 부산KBS에서 어린이 프로그램을 제작한 탓에 직접 마찰을 겪은 일은 별로 없었지만 주위에서 시사프로그램들이 불방되는 사태를 심심치 않게 목격해야 했다.

그리고 입사 2년차가 되던 해, 90년 4월 방송 민주화 투쟁을 경험했다. 서기원 사장이 정권의 낙하산으로 내려오면서 촉발된 투쟁은 공권력이 투입되고 수많은 노조원들이 구속되는 상처를 냈으나, 그만큼 민주화에 대한 염원도 강해지는 결과가 됐다.

그런데 20세기와 함께 막을 내렸을 것으로 생각했던 일들은 21세기에도 버젓이 벌어졌다. 2008년, 정연주 당시 사장을 끌어내리기 위해 90년 4월 투쟁 이후 18년 만에 KBS에 공권력이 투입됐고, 이병순 사장을 거쳐 대통령 특보 출신인 김인규 사장이 낙하산 논란 속에 취임했다.

“최근 KBS가 여러 가지 면에서 정권과 보조를 맞추는 경향이 눈에 띕니다. 그런데 지금은 다들 지쳐서 그런지 동력이랄까, 거부하고 배척하는 힘이 많이 떨어진 것 같기도 합니다. 민주화운동 이후 KBS에서 권위주의적인 분위기가 많이 사라졌다가 최근 다시 돌아가려는 경향이 있는데, 그에 대한 반발이 예전만 못해요.”

▲ 장영주 KBS 교양제작국 PD ⓒPD저널
그는 “노조의 경우도 예전 같으면 안 나올 목소리들, 보수적인 목소리도 많다”며 “김인규 사장 거부 파업 찬반투표가 부결된 상황만 봐도 90년대엔 상상도 못하던 일”이라고 말했다.

그런 분위기는 사회 전반에서도 마찬가지다. 이른바 ‘진보정권’ 10년을 겪었지만, 기대와 달리 많은 부분이 제자리걸음을 걷거나 오히려 후퇴했고, 보수화는 가속화된 측면이 있다. 그 이유를 장 PD는 “개혁 피로증” 혹은 “보수와 진보가 대립하며 변증법적으로 발전해가는 과정”으로 설명했다.

지난 20여 년 동안 방송의 경향도 크게 바뀌었다. 방송의 사회적 의제 설정 기능은 이전보다 약화됐고, 시청자들 또한 노동이나 양극화 따위의 주제에 크게 관심을 두지 않는다. “예전에는 〈심야토론〉 같은 프로그램의 시청률이 높았어요. 사회 변화에 대해 시청자들이 민감하게 여긴 거죠. 그런데 지금은 시청자들조차 관심이 적어졌다고 봐야 합니다.”

환경과 문명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는 것도 눈에 띄는 변화다. 장 PD 역시 3월에 방송될 HD다큐 〈고선지루트를 가다〉 제작에 한창이다. 요즘 “편집실에만 처박혀 있다”는 그가 입사 이후 가장 달라졌다고 꼽는 것은 편집. 바로 1대1편집에서 NLE(비선형편집)로의 변화다. 그는 “NLE를 해본 사람이라면 누구도 옛날로 돌아가지 못할 것”이라고 확신했다.

그는 “NLE가 프로그램 구성 방식까지도 바꾼다”고 말했다. “1대1편집 때는 처음부터 완벽한 콘티를 짜놓아야 했다. 지금은 러프하게 모아놓고 편집하면서 수시로 재구성이 가능하다. 구성도 정교해지고 있다.”

뒤늦게 NLE의 ‘신비’를 경험하고 있는 장 PD. 이제 그에겐 PD로서 지내온 시간보다 남은 시간이 더 짧다. 그런 그의 가장 큰 고민은 “남은 시간 동안 진짜 괜찮은 프로그램을 만들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질까”하는 것이다.

“정말 좋은 프로그램 하나 하고 PD 생활 끝내야 하는데, 고민이에요. 언젠간 해야 하는데 뭘 해야 하나 고민하고 있습니다.”

그에게 ‘좋은 프로그램’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그는 “방송은 서비스니까, 시청률도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면서 “시청률도 높은데 퀄리티까지 좋으면 비로소 좋은 프로그램일 것”이라고 말했다. 모든 PD들의 공통된 ‘좋은 프로그램’에 대한 고민. ‘PD 나이’로는 아직 청년에 불과한 그가 언제 어떤 방식으로 그 고민에 대한 해답을 보여줄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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