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가진 KBS 견제할 수단, 수신료 외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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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인터뷰]‘수신료 인상 반대’ 선언한 민언련 정연우 대표

수신료가 새해 언론관련 최대 쟁점 중 하나로 떠올랐다. 박원순 변호사가 먼저 수신료 납부 거부 선언으로 이목을 집중시켰고, 다른 유명인들과 네티즌들도 잇따라 수신료 거부에 동참하고 있다. 시민사회에선 민주언론시민연합(공동대표 정연우·박석운·정연구, 이하 민언련)이 선제적으로 수신료 인상 반대에 나섰다. 민언련은 “‘나팔수 KBS’, ‘조중동 종편’을 위한 수신료 인상 반대”를 선언하며, ‘제2의 시청료 거부 운동’도 불사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공영방송의 안정적 재원 확보를 위해 수신료 인상은 필수라는 원론적 차원의 반박도 만만치 않다.  또한 2007년 수신료 인상을 지지했던 민언련이 정권이 바뀌자 갑자기 반대로 돌아섰다며 ‘정파적 운동’으로 보는 시선들이 보수 세력은 물론, 시민사회 진영에서도 일부 존재하는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 〈PD저널〉은 정연우 민언련 대표를 만나 수신료 인상 반대 운동의 목적이 무엇인지, 그리고 어떤 한계와 딜레마를 갖고 있는지 따져 물었다.

“KBS가 공영방송 역할 못하는 게 재원 부족 탓인가”

정연우 대표는 수신료 인상 반대 운동이 KBS를 바로잡으려는 절박한 문제의식과 네티즌들의 자발적인 움직임에서 비롯됐다고 밝혔다.

 

▲ 정연우 민주언론시민연합 공동대표 ⓒPD저널 자료사진
“KBS가 정권 홍보방송으로 전락했다는 얘기는 막연히 떠돌았지만, 구체적으로 어떤 이슈에 대해 KBS가 여론을 왜곡하고 공영방송 역할을 못했는지 다른 단체들은 피부로 못 느낀 측면이 있다. 민언련은 계속 KBS를 모니터 해왔기 때문에 어느 정도 엉망이 돼 가고 있는지 잘 알고 있었다. 공영방송으로서 최소한의 역할도 하지 않는 KBS를 견제할 마땅한 수단이 현재로선 수신료 외에는 없다고 판단했다.”

 

그는 “원론적 차원에서 수신료는 공영방송의 중요한 재원”이라고 전제한 뒤 “현재 KBS가 공영방송 역할을 못하는 게 재원이 부족해서인가. 만일 그렇다면 민언련은 앞장서서 인상을 주장할 것”이라면서 “그러나 지금의 KBS는 대통령 특보 출신 낙하산 사장이 와서 어떻게 하면 대통령에 우호적인 사회 분위기를 만들지 고민하고 있다. 이를 해결하지 못한다면 인상된 수신료를 가지고 더 국영방송으로 전락할 위험이 있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불과 3년 전만 해도 민언련은 수신료 인상을 적극 지지하는 편에 있었다. 당시 수신료 인상을 강하게 반대하다가 이제 와 인상의 당위성을 주장하는 보수진영과 입장이 뒤바뀐 셈이다. 때문에 민언련이 정권이 교체되자 말을 바꿨다며 수신료 인상 반대를 ‘정파적 의도’로 해석하는 시각도 존재한다. 이에 대해 정 대표는 “KBS가 국민의 신뢰를 얼마나 얻느냐가 관건이지 정권이 바뀌고 말고는 상관없다”고 잘라 말하며 “나중에 민주정권이 들어서서도 KBS가 정권 홍보방송으로 전락한다면 수신료 인상은 반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2007년만 해도 부동의 1위였던 KBS의 신뢰도가 지금 현저히 떨어져 공영방송으로서 불신을 받고 있다. 우리는 수신료 인상을 언제나 지지하거나 지지하지 않는 것이 아니다. 수신료를 인상해서 공영방송 역할을 한다면 당연히 지지할 것이다. 하지만 수신료 인상이 여론을 왜곡하고 민주주의를 파괴하는 도구 역할을 한다면 못하도록 막아야 한다.”

그는 수신료 거부 운동의 목표를 “낙하산 김인규가 물러나고, 정치적으로 독립된 사장이 와서 공영방송을 원상회복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김인규 사장이 스스로 물러날 가능성은 현재로선 낮다. 정 대표는 “본격적으로 수신료 납부를 거부할 사람들의 수치가 얼마나 될지는 모르지만, 임계점이란 게 있다. 예를 들어 20% 정도가 넘으면 판은 끝난다”면서 “그러면 김인규도 견디지 못할 테고, 누구도 낙하산을 내리지 못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궁극적으로 김인규를 반대하고 정권을 공격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공영방송 정상화를 위한 운동의 수단으로 수신료 납부를 거부하는 것이다. 결국은 공영방송 살리기 운동이다.”

그러면서 그는 미디어행동이 최근 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과 김인규 사장에게 수신료 인상에 관한 공개질의서를 띄운 것을 두고 “수신료 인상을 위한 면죄부를 주는 듯하다”며 “자칫 공영방송에 대한 시민사회의 요구를 흐리게 할 수 있다”고 우려를 나타냈다.

“민언련의 방식이 옳다는 게 아니라 여러 우려들을 경계해야 한다. 우리는 김인규가 낙하산으로 내려온 자체가 공영방송의 근본적 파괴라고 본다. 권력으로부터 독립을 위해선 김인규가 물러나야 한다. 낙하산 김인규가 있는 한 KBS는 MB를 위한 방송이 될 수밖에 없다.”

“‘낙하산’ 김인규 있는 한 수신료 인상 안 된다”

수신료 인상 반대 불씨는 이미 지펴졌다. 민언련은 주도적으로 수신료 거부 운동을 이끌어가기보다 네티즌과 시민들의 제안을 적극 지원하는 역할을 할 방침이다. 그러나 이와 관계없이 거대여당인 한나라당이 마음만 먹으면 수신료 인상안을 처리할 수도 있다. 정 대표는 “그렇기 때문에 인상하더라도 불복종운동을 하겠다는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합법적으로 수신료를 거부할 방법은 거의 없다. 그래서 정연주 전 사장 재임 시절, 보수단체들은 수신료를 내지 않는 편법적인 방법들을 홍보하기도 했다. 그러나 정 대표는 “목적이 옳은 만큼 수단도 정당해야 한다”며 이 같은 방식에 대해선 고개를 저었다.

“법적 자문이 필요하겠지만, 수신료를 빼고 전기료만 공탁하는 방법도 고민 중인 것 같다. 이를테면 1000명 정도가 KBS에 대한 분노로 수신료를 내지 않다가 단전이 되면 이슈 파이팅이 될 것이다. 수신료만 빼고 전기료는 내려고 했는데 한전에서 받아주지 않았다고 하면 도덕적 우위에 설 수도 있다. 수신료 연체료는 연 5% 정도밖에 되지 않아 KBS를 반드시 바로 세우겠다는 열망이 높은 사람들은 해볼 만할 수 있다.”

하지만 고민이 없는 것도 아니다. “인터넷 게임 같은 걸 보면 처음에 회원 수를 늘리기 위해 공짜로 운영하다가 나중에 요금을 조금만 올려도 저항이 일어난다. 지금은 KBS가 공영방송으로서 최소한의 역할을 못해 수신료 납부를 거부하지만 어느 시점에서 공영방송의 정체성을 세웠을 때도 사람들이 안 내는데 익숙해지면 어떻게 하나 하는 딜레마가 있다.”

그는 또 “수신료가 KBS만의 것도 아니고, 원래 전파 수신료이기 때문에 KBS와 EBS를 안 본다고 해서 내지 않아도 되나 하는 고민도 있다”면서 “어찌 됐든 중요한 건 수신료를 안 내는 차원이 아니라 공영방송 바로 세우기에 있다. 그 수단이 수신료일 뿐이다. KBS를 국민의 품으로 되찾기 위해서라면 수신료 인상보다 더 한 것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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