낚느냐 낚이느냐, 후크송의 인기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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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진의 언니가 간다]

▲ 김현진/ 에세이스트
후크송과 걸그룹을 생각하며 지난 글에서 동물성에 대해서 썼는데, 혼자 걷거나 달릴 때 지겨워서 작년 하반기의 인기 가요들을 들어 보니 동물성의 혐의는 걸그룹에 있는 게 아니었다. 작년에 인기 있던 노래, 올해 인기 있는 노래의 가사에 귀 기울여 보니 죄다 일정한 경향이 있었다. 물론 차이고 징징 짜는 발라드곡은 시대를 불문하고 내용이 같으니 제외하고, 젊은 층에게 한참 있기 있는 젊은 층의 노래 가사는 짜고 쓰기라도 한 듯 내용이 같다. 첫째는 이 정도면 나도 괜찮은 여자(남자)라면서 우쭐대는 것이요, 둘째는 너 때문에 신세 망했다는 것이다.

첫째로 말할 것 같으면 나는 누구보다 핫이슈, 내 핸드폰은 늘 불이 나도록 울리고 내가 지나가면 어디서 스포트라이트가 켜지고 플래시가 연달아 터지며 내가 신는 신발이나 내가 바르는 립스틱을 따라하지 못해 안달 난 애들이 그득한 나는 스타일도 좋고 다리도 잘 빠졌고 당연히 몸매 역시 끝내준다.

이런 나를 자랑하는 여자들이 과연 이런 나를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겠냐, 그러니까 나를 감동시켜 보라고 노래하면 남자들도 그에 못지않게 자신만만하다. 이쯤 되면 나도 괜찮은 배드 보이, 해치지 않으니까 이리 와봐라, 나도 꽤 멋진 놈이니 넌 내게 빠져 버릴 거라고 수컷스러운 매력을 잔뜩 뽐낸다. 말하자면 이건 구애의 노래들이다. 좀 더 노골적으로 말하자면, 봄날을 맞아 출전을 앞두고 깃털을 다듬는 새들에게 틀어 주면 전의가 충만하여 그날 몹시 분발할 것 같은 전형적인 ‘짝짓기’의 노래다.

둘째는 이 ‘짝짓기’에서 탈락한 이들을 위한 노래다. 벌써 몇 년이 지났는데 너를 못 잊고, 잘 빠지고 예쁘고 멋진 나를 버린 너를 아직도 못 잊는 내가 바보 같고 친구들도 모두 나를 말리고 심지어 너 때문에 친구를 다 잃기까지 했지만 그래도 전화해주고 문자라도 보내주고 화 좀 내지 말라고 보핍보핍, 자신만만하게 짝짓기 노래를 부르던 때의 기세는 온데간데없다.

네가 싫고 미친 듯이 네가 밉지만 그래도 기다린다. 기다리다 미쳐도 기다린다. 이를테면 유혹의 노래를 부르는 나름대로 괜찮은 배드 걸, 배드 보이들에게 차인 애들이 벌써 몇 년이 지나도 너를 못 잊고 끊임없이 귀에 들려오는 그, 혹은 그녀 목소리에 괴로워하고 있는 셈이다.

▲ 2PM ⓒJYP엔터테인먼트

첫 번째 그룹에 속하는 남녀에게 차인 남녀가 두 번째 그룹이 되어 울먹인다. 중간 지대는 없다. 역할은 단 두 가지 뿐, 잘 빠진 날씬한 몸매나 남자다운 멋진 몸을 뽐내며 이런 나를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겠냐고 자랑하거나 그런 사람을 사랑했다가 신세 망쳤지만 그래도 못 잊는다며 괴로워하거나. 낚느냐 낚이느냐의 문제다. 낚는 무리들과 낚이는 무리들이 있을 뿐, 중간은 없다.

머물러 있는 청춘인줄 알았는데 또 하루 멀어져간다고 혼잣말을 하거나 마른 꽃 걸린 창가에 앉아 외로움을 마시는 따위의 어정쩡한 사람들은 이 첨예한 대립에 발 붙일 곳이 없다. 쭈뼛대고 머뭇거리며 여러 가지를 중얼중얼 노래하고 있을 틈이 없는 것이다. 낚는 사람이 될 것이냐, 낚인 사람이 될 것이냐 제 역할을 확실히 정해야 한다.

요즘 젊은이들이 계산속에 너무 밝고 사랑에도 잇속을 차린다고 한탄하는 어르신들은 이 친구들이 야멸치고 셈이 빠르다는 것은 알지만 모든 일에 있어 낚는 자 혹은 낚이는 자, 그 두 가지 관계만을 보고 자라면서 그래야 살아남을 수 있겠다고 저도 모르는 사이 훈련된 것은 모르고 있다. 낚느냐 낚이느냐, 이것밖에 없는 세상을 살고 있기 때문에 당연히 후크송이 인기 있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렇게 세상이 오늘도 속삭인다. 너 낚는 사람 될래 낚이는 사람 될래? 자꾸 그러다간 평생 낚인다. 정신 똑바로 차려,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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