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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석훈의 세상읽기]

▲ 우석훈 2.1 연구소 소장 (88만원 세대 저자)
우리는 공화국 즉 ‘리퍼블릭’이라는 매우 특별한 사회체계를 우리의 손으로 직접 쟁취한 것은 아니다. 대체적으로 서구의 역사는 신이 통치하는 신권의 시대, 신으로부터 벗어나서 왕이 스스로 권한을 행사하던 왕정의 시대 그리고 시민이 권리를 가지고 있는 리퍼블릭이라는 이름의 공화국 체계의 순서로 걸어왔다. 우리는 이 마지막 단계의 공화국을 우리의 손으로 만든 것이 아니라 2차 세계대전이 끝나면서 독립한 여러 제3세계의 독립국들과 같이, 그냥 공화국이라는 체계가 주어진 셈이다. 일본의 패망 그리고 미군정, 이게 우리의 공화국의 출발점이다.

별 문제는 없지만, 사소한 문제점이 하나 있다면, 공화국의 주체인 시민이라는, 국민과는 기계적으로 등치하는 바로 그 주체가 우리에게는 없었다는 점이다. 국민이라고 할 때의 의미는 국가가 헌법을 통해서 개개인에게 ‘국민’이라는 격을 부여한 것이고, 시민이라는 존재는 바로 그 국가가 성립될 수 있도록 ‘민족국가(Etat-Nation)’에게 정당성을 부여했다. 우리에게는 헌법이라는 것이 우리가 합의하는 최종적 심급이지만, 프랑스의 경우에는 혁명의 선언문인 인권선언이 헌법보다 더 상위에 있는 포괄적인 정신을 규정한다.

도대체 이 시민이 무엇이냐? 투표권을 가지고 있는 사람? 애매하다. 근대국가가 형성된 이후에도 부르주아가 아닌 사람들은 투표권이 없었고, 남성 노동자들은 19세기 중후반에 차티스트 운동을 거치면서 투표권을 가지게 되었다. 여성들은 20세기 초반부터 투표권을 가지기 시작했고, 지금 우리가 선진국이라고 우러러 보는 스위스는 1971년에야 여성들이 투표권을 가지게 되었다. 우리에게는 없는 문제이지만, 호주의 경우는 호주 원주민들에게 1967년 투표권을 부여하게 된다. 물론 우리는 제헌의회부터 모든 국민들은 투표권을 가지고 있었고, 이론적으로는 스위스나 호주보다 훨씬 진보적인 헌법과 국민의 격을 가지고 있었던 셈이다.

그러나 우리의 이런 권리는 우리가 찾거나 만든 것이 아니라서 정말로 우리에게 그런 권한이 있는 것인지, 우리 스스로도 잘 생각해보지 못한 것 같다. 우리나라의 모든 권력과 권한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이 당연한 사실, 그러나 정치인들이나 대통령은 종종 무시하는 것 같다. 대의제 민주주의라고 말하지만, 그 권력의 원천이 국민들에게 있는 것이라는 점을, 대리인들이 종종 무시한다. 대통령도 왕의 권한처럼 신에게 직접 권한을 받은 것이 아니라 국민들이 가지고 있는 권한을 대리하는 대리인일 뿐이다. 너무 당연한 얘기지만, 그 기본 중의 기본이 우리에게는 때때로 흔들린다.

▲ 3월 1일 경향신문 6면

‘국민투표’는 우리말로는 일반 선거와 마찬가지로 똑같이 ‘투표’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지만, 영어로는 ‘레퍼렌덤(referendum)’이라는, 전혀 다른 이름을 가지고 있다. 국민들에게 물어봐야 한다, 그 간단한 사실을 잊지 않는 사람들이다. EU 통합이나 화폐통합과 같은 것들이 주로 레퍼렌덤을 거친 것들이고, 스위스는 이라크 파병 때 국민투표에서 부결이 되면서 이것을 국민투표에 부칠 것을 주장한 극우파 정당이 약진을 한 적이 있다. 농업을 지켜내자는 농업 지원에 관한 것들도 국가의 재정 흐름에 변화를 주기 때문에 레퍼렌덤 대상이 된다.

지난 10년간 우리에게 주요 레퍼렌덤 논의는 3번 있었는데, 노무현 시대의 수도분할 문제, 한미 FTA, 그리고 세종시 문제가 그렇다. 내가 레퍼렌덤을 지지하는 이유는, 국민들에게 주어진 투표권과 함께 시민으로서 공화국을 세운 바로 그 ‘시민적 주체’가 역사 속에서 소환되는 경험이 바로 레퍼렌덤에 있기 때문이다. 대의제 민주주의에서 대리인들의 지나친 권한은 바로 그 권력을 부여한 주체인 시민들에 의해서 때때로 환기될 필요가 있는데, 우리는 그런 경험 자체가 없었다.

전면적인 직접 민주주의를 시행할 수 없어서 우리는 대의제 민주주의를 사용하지만, 레퍼렌덤을 통해서 때때로 직접 그 권한을 환기하면서 현대라는 시대가 작동하는 것이다. 87년 개정헌법은 이 국민투표 부의권을 대통령에게만 배타적으로 부여하고 있고, 지금까지 어떠한 대리자도 자신에게 권한을 부여한 국민들에게 직접 물어보는 일을 하지 않았다.

국회 일부에서 레퍼렌덤은 국회의 권한을 약화시킨다는 이유로 세종시 문제를 국민투표에 부의하는 것에 대해서 반대한다고 알고 있다. 물론 반대의 이유는 여러 가지 있을 수 있지만, 이것은 말이 안 되는 일이다. 국민이 강력할 때 국회도 강력해지는 것이고, 행정부의 수반인 대통령과 정부의 독주를 제어할 힘이 생기는 것이다. 국민은 약하고, 시민사회는 무기력한데 국회 혼자서 강해지는 일은 생길 수가 없다. 레퍼렌덤은 국민들에게 자신들이 바로 공화국의 권한의 주체인 시민이라는 것을 집단 학습하는 순간이다. 정치적인, 정책적인 판단을 뛰어넘어 바로 국가의 근간에 관한 질문이 바로 레퍼렌덤이다. 그래서 나는 국민투표를 지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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