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선의 반성은 사퇴”…사면초가 최시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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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일 방통위 출범 2년 앞두고 방송장악·종편 ‘자승자박’

지난 2월 10일 교육·사회·문화 분야에 대한 국회 대정부질문에서 이종걸 민주당 의원은 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에게 물었다. “최 위원장을 가리켜 시중에서 ‘방송통제위원장’이라고 부르는 걸 알고 있습니까.” 잠시의 정적. 쓴웃음을 머금은 최 위원장이 답했다. “들어본 적 있습니다.”

■2년 내내 방송장악 뜀박질= 최 위원장도 들어본 적 있다는 ‘방송통제위원장’이라는 호칭은 사실 지난 2008년 3월 26일 방송통신위원회(이하 방통위) 출범 직후부터 공공연히 시중에 떠돌던 것이다.

취임 첫 날부터 김금수 당시 KBS 이사장을 만나 현 정권이 야당 시절부터 ‘눈엣가시’로 여겼던 정연주 KBS 사장의 해임을 종용하는 것을 시작으로, 갖가지 수단을 동원해 한 치의 쉴 틈도 없이 YTN·KBS·MBC 등 정권의 ‘방송사 접수’를 위해 뜀박질을 해 온 때문이다.

그 덕분일까. 불과 한 달 전까지만 해도 방통위의 ‘위세’는 대단했다. 검찰·감사원 등과 손발을 맞춰 ‘위법’의 굴레를 씌워 몰아냈던 인사들에 대해 법원이 ‘무죄’ 판단을 내려주긴 했지만 원직 복직까진 명하지 않아 대통령 특보 출신 등 현 정권과 친밀한 인사들이 KBS·MBC 그리고 이들 방송의 이사회에 무사 안착했다. 이들은 얼마 지나지 않아 보도를 비롯한 프로그램 곳곳에서 방송민주화 이전의 기억을 어렵지 않게 ‘데자뷔’ 할 수 있도록 했다.

▲ 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 ⓒ방통위
지난 1월 방통위 출입기자단과의 신년하례회에서 “종합편성채널 도입과 KBS 수신료 인상 문제 모두를 연내에 마무리해야 한다”며 KBS 수신료 인상으로 시장에 남게 되는 2TV 광고를 언급, 세간에 떠돌던 ‘수신료 인상=종편 광고시장 만들기’ 등식을 확인하는 바람에 KBS 안팎의 볼멘소리를 듣기도 했지만, 그래도 나쁘지 않았다. 정부·여당 안에서도 공공연하게 “이제 방송이 제자리를 찾은 것 같다”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종편 힘겨루기…‘위세’ 꺾인 실세위원장= 하지만 2월 중반이 넘어가면서 상황 변화의 조짐이 보이기 시작했다. 2년 동안의 뜀박질 끝에 방송은 정부·여당이 보기에 “좋은” 모습이 됐지만, 그간 우호적이었던 언론, 굳이 특정하자면 조선·중앙·동아의 태도가 조금씩 달라진 것이다.

실례로 정부·여당이 사활을 걸고 있는 4대강 사업과 관련해 조선은 지난 22일 김대중 고문의 기명 칼럼을 통해 “한 곳만 먼저 하자”고 주장했다. 사실상 말이 한 곳이지 사업의 전면 재검토를 말한 것과 다름없다는 게 언론계와 정치권 안팎의 해석이다. 또 같은 날 신문 사설에서도 세종시·4대강 사업의 ‘일방통행’을 비판했다.

<동아일보> 계열의 <신동아>는 보다 직접적인 공세 태세다. 지난 2월호에선 정부의 세종시 관련 문건을 폭로하고 3월호에선 권태신 국무총리실장 과다 부동산 논란을 보도하더니 지난 17일 발매된 4월호에선 MBC 인사에 ‘큰집’이 개입했다는 내용의 김우룡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장의 인터뷰를 게재했다. 이 인터뷰는 결국 김 이사장의 낙마를 불렀고 그간 방송계 주변에서 ‘설’로만 떠돌던 정권의 방송장악 시나리오의 실체를 드러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정권에 우호적이었던 이들 언론의 변화한 모습은 지난해 여당이 ‘위법’을 감수하고 강행한 언론관계법 처리 직후만 해도 금방이라도 추진할 것처럼 굴었던 종편 관련 정책이 벌써 8개월째 표류하고 있는 데 대한 ‘경고’라는 게 언론계 안팎의 대체적인 평가다.

지상파 방송사의 한 PD는 “현재 김우룡 사태라는 변수가 생기긴 했지만, 계획된 일정대로 방송을 손에 넣은 정권은 ‘종편’이란 목줄을 들고 힘의 논리에 따라 여기 붙었다 저기 붙었다 하던 조선·중앙·동아 등을 최대한 이용해 먹으려고 했을 것”이라며 “그런 와중에 ‘틈’을 보여 되레 덫에 걸린 격이 된 것”이라고 냉소했다.

■“최선의 반성은 사퇴”= 아니나 다를까. 최 위원장은 김우룡 전 이사장의 <신동아> 인터뷰 파문이 발생한 지난 18일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세미나에서 종편 일정 지연에 대한 잇단 항의성 질문에 “언론계 선배로서 이래서 되는가 싶다”며 결국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불과 20여일 전 업무보고를 위해 국회에 출석한 자리에서 야당 의원들의 같은 질책에 “몰라서 묻나. 3월 언론사들의 주주총회 이후에야 사업자 선정이 가능하다”고 맞받았던 것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다.

최 위원장은 결국 이날 “연내 종편 사업자 선정 작업을 마무리 짓겠다”며 “자격을 갖춘 사업자 모두 허가해주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 방통위 종편사업자선정 태스크포스(TF)에서 이달 말께 종편사업자 선정을 위한 기본계획을 확정, 발표하겠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이처럼 ‘위세’를 꺾는 것으로 모든 문제가 해결되긴 어렵다는 게 언론계 안팎의 중론이다. 당장 김우룡 전 이사장의 <신동아> 인터뷰 파문의 당사자인 MBC를 비롯한 언론·시민단체들이 방문진 이사장 임명에 책임이 있는 최시중 위원장의 책임을 묻고 있다.

민주당과 민주노동당, 창조한국당, 진보신당 등 야당들도 지방선거를 앞두고 이번 사태에 대한 정권의 책임을 끝까지 물을 태세다. 당장 이들 야당은 3~4월 국회가 열리는 동안 MBC청문회와 국회 차원의 진상조사를 계속해서 압박하고 있다.

민주당의 한 관계자는 “방송·종교·문화 등 너무 많은 곳에서 정권의 ‘무리수’가 동시에 터지고 있다. 선거를 앞두고 머리(청와대)를 살리기 위해 손발은 자를 수 있다는 게 김우룡 전 이사장 등의 사례에서도 드러나지 않았나. 결국 여권 스스로도 알 수밖에 없게 될 것이다. 정권이 보일 수 있는 최선의 반성은 정권의 방송 관련 총책임자인 최 위원장의 사퇴뿐이라는 점을 깨닫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당장 언론·시민단체 연합체인 미디어행동은 24일 오후 2시 방통위 앞에서 최시중 위원장의 사퇴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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