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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박천기 한국PD연합회 정책주간

문득 기득권을 영어로는 뭐라 할까? 하는 뜬금없는 궁금증이 발동해 한영(韓英)사전을 뒤적여 보았다. “vested right"라고 나온다. 민법이나 상법에서 쓰는 법률적 개념이 강한 표현으로, 흔히 우리가 사회학적 개념으로 사용하는 의미와는 조금 차이가 있는 듯 싶어 미국에서 박사 과정에 있는 친구에게 안부를 가장한 도움의 메일을 보냈다.

다음 날 답신이 왔는데, 너무나 짧고 간단했다. Establishment?!

물음표를 쓴 모양새를 봐서는 본인도 자신이 없다는 의미인 것 같고, 느낌표를 쓴 모양새를 봐서는 나름의 해석에 본인도 꽤 감탄한 모양이다. 아무튼 나도 고개를 크게 끄덕였으니까.

확고함 혹은 견고함. 기득권이 갖는 본질을 가장 직접적으로 표현한 단어들이 아닐까 싶다. 아니 원래 기득권의 본질이 견고한 것이 아니라 기득권을 둘러싼 기득권자들의 저항과 그를 지탱해 주는 이데올로기들이 견고한 것이리라.

대한민국 사회에서 이런 기득권의 대변자를 자처하고 나선 이들이 바로 조중동이라고 하는 언론 집단이다. 이들의 판단 기준이 Fact나 정의가 아니라 ‘사주의 이익’과 ‘기득권자들의 이익’이란 점에서 본다면 이들에게 ‘언론’이란 타이틀을 붙이기조차 민망하다. 

재벌의 편법과 불법을 이야기하면 그것은 곧 ‘반기업정서’가 되고, 악취 나는 종교단체의 비리를 고발하면 그것은 쓸데없는 ‘사회적 갈등’이 되며, 무상급식과 같은 이야기가 나오면 ‘포퓰리즘’이라는 딱지가 어김없이 붙게 된다. 매우 교묘하고 악의적인 기득권자들의 궤변이자 발악이다.

이들이 ‘나눔의 아름다움’을 그럴싸하게 포장하면서도 ‘분배의 구조’를 언급하지 않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최근 사법부의 판결을 두고 벌이는 이들 신문의 광적이고 파상적인 공세 또한 일종의 히스테리 현상으로 기득권의 밥그릇을 건드리면 가만두지 않겠다는 사실상의 저질 협박극에 불과하다. 국가보안법이 그랬고, 사학법이 그랬으며, 재벌과 부동산 관련 법안들이 그러하지 않았는가!

프랑스의 소설가 프랑소와 사강(Francoise Sagan)은 좌파와 우파를 구분하는 특별한 가이드 라인을 제시한다.

“불의에 반응하는 자세 : 우파는 ‘그럴 수도 있다’라고 한다. 그러나 좌파는 분노한다.”

오해하지 마시라. 그대의 이념의 좌표가 어떠하든 불의에 분노하지 않는 지성은 더 이상 지성(知性)이 아니므로.

다음은 리영희 선생의 <전환시대의 논리> 제 5부에 실린 글 가운데 한 대목이다.

“어제 수습기자로서 선배 기자들의 무력과 타락과 민중에 대한 배반을 소리 높이 규탄하던 사람이 내일은 벌써 ‘골프는 사치가 아니야. 건전한 국민 오락이야’라는 말을 하기 시작한다 … 여기서부터 그의 의식구조와 가치관은 지배계급의 그것으로의 동화과정을 걷는다. 모든 것이 ‘가진 자’의 취미와 입장에서 취재되고 기사화된다. ‘지배하는 자’의 이해와 취미에서 신문은 꾸며진다.”

위 글이 처음 나온 것은 40년 전인 1971년이다. 그러나 세월이 흘러도 변한 것은 없는 것 같다. 스스로를 언론인이라고 하는 자들, 특히 보수를 참칭(僭稱)하여 기득권의 파수꾼 노릇을 자임하는 者들에게 묻고 고한다.

“그대는 왜 분노하지 않는가?” 
“너희들 그러다 한 번에 훅 가는 수가 있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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