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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D의 눈] 이채훈 MBC PD

“마음이 없는 천재라는 것은 넌센스다. 천재란 위대한 지성이나 탁월한 상상력, 심지어 이 두 가지를 합쳐서도 이뤄지지 않는다. 천재를 만드는 것은 오직 사랑, 사랑, 사랑 뿐이다.” 
- 1787. 4. 11 친구 야크빈이 모차르트 방명록에 남긴 말

다큐멘터리를 만들 때도, 책을 쓸 때도 이 말의 뜻을 충분히 알지 못했음을 고백한다. 다른 모든 위대한 작곡가들의 음악에도 사랑은 담겨 있다. 그런데, 왜 하필 모차르트인가? ‘집착 없는’ 이란 수식어를 붙일 때 모차르트의 참모습이 드러난다. 모차르트가 5살 때 작곡을 시작했고, 35년 동안 베끼지도 못할 만큼 많은 작품을 썼고, 한곡 한곡이 모두 완벽하다는 점은 잘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이것으로 그의 천재성을 충분히 설명할 수 없다. ‘집착 없는’ 사랑이 바로 이 위대한 천재의 본질임을 최근에야 깨달았다.      

영화 <아웃 오브 아프리카>에 나오는 클라리넷 협주곡의 선율을 기억하실 것이다. 사랑하는 세상과 헤어지는 슬픔을 가득 머금고 있지만, 엉엉 울거나 소동을 피우지 않는다. 투명한 아름다움 속에 조용히 노래할 뿐이다. 모차르트를 숭배했던 차이코프스키가 마지막 작품인 <비창> 교향곡에서 탄식하며 울부짖었음을 기억하면 그 차이가 분명히 드러난다.

모차르트도 사람인지라 죽기 전날 친구들 앞에서 잠시 눈물을 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곧 맑은 미소를 되찾았다. 이 미소가 바로 클라리넷 협주곡 아다지오가 노래한 ‘집착 없는’ 사랑인 것이다. 그는 처제 조피에게 아내 콘스탄체를 잘 돌봐 달라고 했다. 그것이 마지막 말이었다. 

“죽음이란 것은 우리 삶의 마지막 목적지이고, 저 역시 최근 몇 년 동안 가장 좋은, 참된 벗인 죽음과 이미 친숙해졌기 때문에 죽는다는 생각이 두렵기는커녕 반대로 위안과 안도감을 느낍니다. 저는 아직 젊지만 잘 때마다 ‘오늘밤에 잠들면 다시 일어나지 못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지 않는 날이 없습니다. 하지만 이 생각 때문에 제가 침울해 보인다거나 슬퍼 보인다고 얘기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지요.”
- 1787년 4월 4일 아버지에게 보낸 편지 

모차르트는 35년의 짧은 생애에서 6번 가족의 죽음을 겪었다. 22살 때 어머니, 31살 때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6명의 아이를 낳았는데, 이 중 4명이 죽었다. 민감한 그는 늘 죽음을 생각했고, 인생의 덧없음을 느꼈다. 그러니 그의 마음 어디에 ‘집착’이 발붙일 자리가 있었겠는가.

당연한 귀결로 그는 살아있는 날의 소중함과 경이로움을 잘 알고 있었고, 아름답고 착한 마음을 나누는 게 유한한 인간들의 가장 큰 축복이라는 점을 체득하고 있었다. “삶의 비극적 의미를 잘 아는 사람이 진정 즐거운 사람”이라는 말은 모차르트에게 완벽히 적용된다.

모차르트는 아버지의 죽음을 전후한 시기에 이별의 느낌을 담고 있는 노래 <라우라에게 보내는 저녁 상념>, 아리아 <너를 떠나는 지금, 내 딸이여> 같은 작품을 썼다. 그러나 같은 시기에 <아이네 클라이네 나흐트무직>이나 <음악의 유머>처럼 즐거운 작품도 썼다는 점은 내게 오랫동안 미스테리로 남아 있었다. 잘 알다시피 아버지 레오폴트는 모차르트의 최대 스승이자, 매니저이자, 보호자였다. 하늘같은 아버지가 돌아가시는 마당에 어떻게 그런 곡을 썼을까? 결론은 모차르트가 아버지의 죽음조차 음악으로 승화해 냈다는 것이다. 그의 존재 자체가 음악이었고, 모든 ‘집착’이 부질없다는 점을 잘 알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는 마지막 오페라 <마술피리>에서 “우리는 음악의 힘으로 죽음의 어두움을 기꺼이 헤쳐 나가리”라고 노래했다. 마술피리를 불면 사나운 짐승들이 춤을 추고, 악당들이 착한 사람으로 변한다. 모차르트는 이 장면을 보며 어린애처럼 즐거워했으리라. 나는 이러한 음악의 마술이 어느 정도 사실일 거라고 믿는다. 마술처럼 한 순간에 이런 변화가 일어나지는 않겠지만, 그의 음악에 담긴 ‘집착 없는’ 사랑이 사람들의 마음에 자리 잡고 널리 확산된다면 이 세상은 점점 더 아름다운 곳이 되리라고 확신한다.   

불어권에서 가장 인기 있는 작가 에릭 엠마뉴엘 슈미트는 사춘기 시절 자살을 생각했다.  “열다섯 살 때였습니다. 제 친구들, 학업, 진로 등 모든 것이 덧없어 보였습니다. ‘모든 것이 죽어갈 뿐’이라는 생각에 사로잡혔습니다. 저는 심각한 우울증에 빠졌고, 급기야 자살을 생각하게 됐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우연히 오페라 공연을 보러 가게 됐어요.” 그는 <피가로의 결혼>에 나오는 백작부인의 아리아 ‘아름다운 날은 가고’를 듣는 순간 삶을 긍정하게 됐다. 

달콤했던 행복의 순간들은 모두 어디로 갔나?
거짓 입술로 속삭인 엄숙한 맹세들은 다 어디로 갔나?
모든 것이 눈물과 아픔으로 변해 버린 지금,
왜 나는 축복의 그 순간들을 떠올리는 걸까?

이 무정한 사람이 바뀔 수 있다는 희망은
모든 고통을 이겨 낸 나의 사랑,
오직 나의 변함없는 믿음에서 나올 뿐.

이 노랫말은 백작을 비난하지도 않는다. 질투와 분노와 증오의 흔적도 없다. 오직 자신의 마음에 대한 고결한 확신이 있고, 삶을 긍정하는 강철 같은 의지가 있을 뿐이다. ‘집착 없는’ 사랑은 결코 허약하지 않은 것이다. 그날 밤, 에릭은 모차르트에게 편지를 썼다.

“문득 시간이 멈춰버렸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한 여자가 부르는 노래에 매혹된 채 나는 꼼짝도 할 수 없었습니다. 음악을 통해 우리는 사랑을 나눴습니다. 힘이 솟아 올랐습니다. 삶의 기쁨이 되살아났습니다. 당신이 내 목숨을 구해 준 것입니다. 이 세상이 그토록 아름다운 음악을 들을 수 있는 곳인 이상, 절대로 떠나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을테니까요.”

에릭은 모차르트 음악이 음악 이상의 것, 곧 삶의 지혜를 준다고 말한다. 그가 모차르트라고 부르는 것은 ‘모차르트 뿐 아니라 사랑, 즐거운 것, 아름다운 것, 삶을 소중하게 만들어 주는 그 모든 것’을 뜻한다고 한다. 이런 의미에서 모차르트 음악은 불교와 통하는 바가 있다고 한 피아니스트 시프리앙 카차리스의 지적은 참으로 적절하다.

▲ 이채훈 MBC 〈W〉 PD
‘배고픈 사람에게 먹을 것을 주고, 병든 사람에게 약을 주라’는 부처의 가르침은, 음악을 듣고 싶어 하는 사람에게 몇 시간이고 연주를 해 준 모차르트의 소탈함을 닮았다. ‘모든 인간이 똑같이 존엄하다’는 부처의 가르침은, 황제 요제프2세부터 고아원 어린이까지 모두 동등한 친구로 대한 모차르트의 열린 마음을 닮았다.

세상이 험악한 요즘, 모차르트가 더욱 간절하다. 모차르트, 그 ‘집착 없는’ 사랑이 그립다.

이채훈 (MBC '세계와 나 W' 연출 / <내가 사랑하는 모차르트>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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