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ntsmark0|102라는 숫자를 보았다. 이 숫자에 어떤 의미가 있을까? 동서양의 전통을 아무리 뒤져도 102라는 숫자가 갖는 철학적, 종교적, 상징적 의미는 존재하지 않는다. |contsmark1| |contsmark2| |contsmark3|혹시 이 숫자의 내면에 뭔가 무서운 음모가 감추어져 있는 것이 아닌가? 그래서 이 숫자를 쪼개보기로 했다. 먼저 짝수니까 2로 나누면 51, 이를 다시 3으로 나누면 17. 인수분해를 해도 별 특이한 점이 눈에 띄지는 않는다. |contsmark4| |contsmark5| |contsmark6|102=2∙3∙17 |contsmark7|그런데 왜 이 숫자가 특별한 기념의 대상이 되어야하는 걸까? 알 수가 없다. 어쨌든 며칠 전 하이예크라는 사람이 태어난 지 102주년 되는 날이라고 한다. 아무리 위대한 사람이라도 그렇지 100주년도 아니고, 102주년을 기념하다니. |contsmark8| |contsmark9| |contsmark10|하이예크 탄생 102주년을 맞아 자유기업원의 민병균이라는 분이 우익궐기를 외치고 나섰다.‘우익’이라는 말이 칭찬으로 사용되는 나라도 많지 않을 것이다. |contsmark11| |contsmark12| |contsmark13|서구나 일본에서‘우익’이라고 하면 사람들은‘또라이’를 연상한다. 거기에‘보수’라는 말까지 덧붙여‘보수우익’이라고 하면? |contsmark14| |contsmark15| |contsmark16|“나는‘또라이’중에서도 꼴보수, 즉 앞뒤 콱콱 막힌 또라이입니다”라고 고백하는 꼴이 될 것이다. 가까운 나라 일본을 보라. 그 보수적인 나라에서도‘우익’이라고 하면 역사교과서 왜곡질이나 하는 대책 안 서는 막가파들을 가리킨다. |contsmark17| |contsmark18| |contsmark19|그런데 우리 나라에서는 아직‘우익’들이 또라이 취급을 안 받고 있다. |contsmark20| |contsmark21| |contsmark22|그만큼 사회가 우경화되어 있다는 증거이리라. 오른쪽으로 고개가 기울어진 사람들이니 세상을 온통 삐딱하게 볼 수밖에. |contsmark23| |contsmark24| |contsmark25|그리하여 오른쪽으로 쏠린 이들의 가재미 눈에는 참여연대의 소액주주운동마저 체제를 전복하는 운동, 사회주의 변혁운동으로 보이는 것이다. 그럼 소액주주들은 프롤레타리아? |contsmark26| |contsmark27| |contsmark28|내가 자유기업원 원장이라면 다 망한 재벌체제의 기쁨조나 하던 과거의 어리석음을 겸허히 반성이나 하겠다. 그리고 자본주의 시장경제질서를 바로잡으려는 참여연대의 활동에 감사를 보내겠다. |contsmark29| |contsmark30| |contsmark31|생각을 해 보라. 한국 부르주아들이 얼마나 미련하고 한심하면 시장경제질서를 바로잡는 것까지 좌파가 떠맡아서 해야겠는가? 하이예크가 잘 나서 그거 추종하던 여러분이 기껏 나라 경제를 홀딱 다 말아먹었던 걸까? |contsmark32| |contsmark33| |contsmark34|그리고 그게 좌파 때문이라고? 신한국당이 언제 좌파였던가? 김영삼 경제팀이 사회주의자들이었던가? 아니면 대한민국 재벌회사의 경영진이 빨갱이들이었던가? 경제 말아먹은 주제에 이제 와서 외치기를 “우익이여, 깨어나라.” |contsmark35| |contsmark36| |contsmark37|말 한번 잘 했다. 대한민국 우익 여러분, 민원장님 말씀 들었지? 이제 그 무지몽매에서 좀 깨어나셔. 궐기 좀 해 보셔. 궐기해서 교양 없이 동료시민에게 “빨갱이다아아아아!!!” 하고 고래고래 소리만 지르지 말고, 그 미련한 머리들을 맞대고 직렬접속들 하셔. 그리고 여러분 두뇌에 어디가 고장났는지 거국적으로 고민들 좀 해 보셔. |contsmark38|내 참, 살다 보니 별 꼴을 다 본다. |contsmark39||contsmark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