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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세옥의 헛헛한 미디어]

지난 23일은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1주기였다. 주관적이긴 하지만, 노 전 대통령 서거 1주기 당일이었던 지난 23일 저녁 ‘뭔가 예상보다 조용히 지나간 것 같은데’라는 인상을 지울 수 없었다. 요란한 ‘무언가’를 기대(?)했던 것도 아닌데 그랬다.

저녁 뉴스를 보며 이유를 생각했다. 화면 안에서 답을 찾았다. 너무 조용했던 것이다. 물론 노 전 대통령 서거 1주기와 관련한 보도가 없진 않았다. 노 전 대통령이 생과 사의 마지막을 보낸 봉하마을을 비롯해 전국 곳곳에서의 추모 열기가 화면 속에 있었다. 지방선거를 앞두고 북풍(北風)을 부채질하는 여당과 노풍(盧風)을 풀무질하는 야당의 구도도 더해졌다.

그러나 정작 노 전 대통령 서거 1주기를 맞아 우리 사회의 곳곳에서 던져지고 있는 질문은 없었다. 지난 1년 동안 출판계가 노 전 대통령 관련 서적을 쏟아내고, 학자들은 토론회를 통해 논의했으며, 노 전 대통령 서거 1주기를 앞두고 각종 신문과 시사주간지 등에선 특별기획을 통해 제기한 질문 말이다. “지금 이 시기, 우리 사회는 왜 노무현을 말할까.”

▲ 한 시민이 노무현 전 대통령의 영정사진과 함께 서울광장을 찾았다. ⓒPD저널
사석에서 만난 지상파 방송사의 한 관계자는 지방선거를 열흘 남짓 앞둔 시점이었던 만큼 ‘형평’의 차원에서 신중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동의하기 어렵다. 지난 주말 동안 천안함 관련 프로그램을 연속으로 편성했던 KBS의 사례는 차치하더라도 지방선거 국면 속, 넓게는 지난 1년 동안 정부·여당이 차단하려 애쓰고 있고 사회 곳곳에서 토론하고 있는 ‘노무현’이라는 열쇳말에 대한 의미를 짚는 것이 언론의 할 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다행인 것은 짧게라도 “지금 왜 노무현인지”에 대해 질문한 방송이 있었다는 점이다. 지난 23일 밤 MBC <시사매거진2580>은 ‘바보 대통령 노무현, 서거 그 후 1년’에서 노 전 대통령의 비서실장이었던 문재인 변호사와 홍준표 전 한나라당 원내대표 등을 인터뷰하며 정파를 막론하고 사회 각계가 인정한 노 전 대통령이 제시한 분권, 균형발전, 특권 없는 사회 등의 가치를 짚으면서, 우리 사회가 왜 이들 가치에 주목해야 하는지를 살폈다.

‘노무현’이라는 열쇳말의 의미를 유독 MBC만 짚을 수 있었던 까닭은 뭘까. 특별해서? 그건 아닐 것이다.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방송가 내부엔 정권에 비판적이기에 앞서 우호적이지 않다는 이유만으로도 불이익을 감수해야 할 것 같은 분위기가 형성됐다. 집권 2년차 이 대통령의 정치적 동지들이 수장으로 안착하면서 이런 분위기는 더욱 강화되고 있다. 이에 저항하는 방송인들은 명확하지 않은 이유로 좌천되거나 회사 밖으로 쫓겨났고, 동료와 선·후배의 이 같은 모습을 보며 남은 자들은 알게 모르게 위축되고 있다.

노 전 대통령 서거 1주기를 앞두고 <딴지일보>에는 노 전 대통령이 생전 ‘동지’로 칭했던 안희정 민주당 최고위원의 인터뷰가 실렸다. 이 인터뷰에 따르면 안 최고위원은 90년대 초반 노 전 대통령에게 민주화 운동을 하던 이들의 정치공학적 행태에 대한 실망감을 토로한 일이 있었는데 당시 노 전 대통령이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희정씨. 그거 참 어려운 주제인데, 그게 그런 거 같다.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고 사람은 안 변하는 것 같아. 개체로서의 인간은 안 바뀐다는 거야. 그런데도 인류는 진보한 게 신기한 게 아니냐.”

인간에 대해 실망한 후 적당히 체념하며 속한 현실에 적응해서 사는 게 사회화라는 과정인데도, 그렇게 사회화된 인간들이 이루는 역사는 진보의 방향으로 간다는 얘기다.

더 이상 방송을, 언론을 믿기 어렵다는 말이 들린다. 언론인들 스스로도 어느 순간 그저 하루하루의 ‘밥벌이’에만 신경쓰는 존재가 되어가고 있다고 자조한다.

하지만 노 전 대통령의 말마따나 당장의 상황, 사람 하나하나에 실망할 필요는 없지 않을까. 지금도 우리 주변엔 ‘권주(權主)언론’의 길을 걷지 않기 위해 한 달 이상 파업도 불사한 언론인, 해고에 굴복하지 않고 2년 가까이 싸우고 있는 언론인, 새로운 노조로 꿈틀대는 언론인이 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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