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글로벌] 독일=서명준 통신원

디지털 자본주의가 형성한 네트워크 경제는 인간의 욕망 생산을 통해 사회적 부분체계를 더욱 세분화시키고 있다. 근대가 해체되는 경계에서 대형 TV방송사들은 오늘 미세한 일상의 흐름을 포착하기에 너무 큰 몸집을 갖고 있는지 모른다. 디지털 미디어사회에 적응하기 위한 최근 독일 공·민영 방송사들의 변신은 다각화된 시청자의 욕망을 따라잡으려는 현상인  것 같다.

제2공영방송 체트데에프(ZDF)는 최근 디지털 다큐멘터리전문채널인 ZDF다큐를 자연·역사르포와 다큐소프, 미국 드라마 등 혼합 장르를 송출하는 디지털 ZDF네오(neo)로 전환시켰다. 오전 편성시간에 텔레노벨라(Telenovela)가 재방송되고 아쉽게도 교육적 프로그램이 다소 감소했다는 점을 제외하면 좋은 프로그램들이 많이 편성된다. 다큐소프들은 대부분 비판적인 논점보다 정보제공에 치중한 편이고 탐사보도보다 차라리 한편의 에세이를 연상시킨다. 미드는 미국에서 크게 인기를 얻은 작품들이겠지만 다소 보수적인 시청성향의 독일 국민으로서는 지나치게 전문적인 내용들이다. 독일 경제활동을 주도하는 세대이자 주요 시청 타겟인 3~40대들에게는 오히려 시트콤 <프렌즈>나 <세인펠트>, <마이애미 바이스> 같은 다소 단순한 형태의 시리즈가 더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것으로 보인다.

디지털 네트워크나 DVD의 세계로 이동하는 디지털 유목민들이 점증하는 추세에 방송사들은 전문채널 설립이라는 대응전략도 내놓고 있는데, 거대 민영방송 프로지벤자트아인스(ProSiebenSat.1)가 유료 전문채널 설립을 주도하고 있다. 물론 아직 근대가 종말을 고하지 않은 시점에서 종합편성채널의 종말을 고하기에는-TV의 종말을 고하기에는-이르다.

하지만 ‘종편의 시간’이 마지막에 접어들고 있다. 그리고 미디어의 미래는 편성 다양성과 함께 개인의 취향을 존중하는 데 달려있다. 이른바 고전매체 가운데 일간신문보다 TV가 이것을 다소 쉽게 해낼 수 있는데, TV는 사실 스위치를 누르는 매우 간단한 행동만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TV의 약점도 있다. 종이신문이나 온라인신문은 구독자나 방문자수를 비교적 자세히 판별하고 취향 파악도 용이하다. 반면 선별된 시청가구 표본을 대상으로 조사되는 TV시청률은 전체적으로 감소추세일 뿐 아니라, 시청가구에 선정된 가족구성원은 시청 중에도 자신이 일종의 관찰대상이라는 점을 이미 인식하고 있어서 실질적인 취향 파악도 다소 어렵다. 

▲ 독일=서명준 통신원/독일 베를린자유대 언론학 박사

그럼에도 근대적 의미의 ‘대중’이 디지털 인터넷이 주도하고 있는 사회적 부분체계로 빠르게 분화되어 ‘개인’으로 분열되고 있는 현실에서, 독일의 방송사들은 여러 대응방안을 내놓고 있다. 그들의 전략이 성공한다면 적어도 TV라는 형식은 일간신문보다 오래 유지될지 모른다. 물론 그것 역시 영원하지는 않을 테지만.

 

저작권자 © PD저널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