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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이동연 한국예술종합학교 한국예술학과 교수

지난 6월 말에 미국 캘리포니아 얼바인 대학의 초청으로 한국대중문화 워크숍에 참석했다. 50여명의 한국학 전공 교수들과 대학원생들이 모여서 이틀 동안 최근 한국대중문화의 현황과 문제점들을 진단하는 열띤 토론을 벌였다.

대부분 미국 대학에서 한국학으로 학생들을 가르치는 한국계 교수들이 모였지만, 최근 미국 내에서 달라진 한국학의 위상을 공감할 수 있었던 자리이기도 했다. 발표를 맡은 한국학 전공 교수들은 10년 전만해도 한국학 관련 수업들은 주로 정치, 역사, 외교, 문학 위주의 내용들이었고, 수강하는 학생들도 10여명이 채 되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나 지금 한국학의 커리큘럼은 영화, 대중음악, 엔터테인먼트, 라이프스타일과 같은 대중문화로 확대되었고, 한국학 관련 수업을 수강하는 학생들도 50여명이 훌쩍 넘어 뒤늦게 수강신청 한 학생들을 돌려보내야 할 정도로 인기가 있다고 한다.

▲ 동아일보 6월30일자 25면.
미국의 경제위기로 주립 대학의 지원이 줄어들고 전공 간 치열한 생존경쟁이 있는 상황에서 ‘한국학’의 선전은 분명 눈여겨 볼만한 대목이 아닐 수 없다. 미국 서부 캘리포니아 계열 주립대학에는 거의 모두 동아시아 언어문화 학부 안에 한국학 전공이 독자적으로 개설되어 있다.

한국학의 붐의 이유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의문의 여지없이 꼽고 있는 것이 한국의 국제적 위상의 상승인데, 흥미로운 것은 이것이 비단 경제성장만이 아닌 ‘한류’의 인기 여파에 따른 것이라는 점이다. ‘한류’의 인기는 비단 동아시아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이곳 미국에서도 문화세계화의 흐름을 타고 나름 인기를 구가하고 있어 보인다.

특히 미국에 거주하고 있는 다수의 아시아인들에 의해서 미국에서의 한류가 절찬리에 소비되고 있는데, 그 영향력은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이 되었다. 박찬욱, 김기덕, 이창동, 홍상수와 같은 작가주의 감독뿐 아니라 강우석, 봉준호, 최동훈과 같은 흥행 감독들에 대한 관심도 높아 미국 내 ‘비디오 숍’의 대여수도 높은 편이고, 대학의 영화관련 학과에서는 한국영화를 연구하려는 대학원생들도 늘어나고 있다.

또한 글로벌 스타로 성장한 ‘비’에 대한 아시아계 미국시민들의 반응도 폭발적이고 ‘원더걸스’를 비롯해 한국 아이돌 그룹들에 대한 관심도 높은 편이다. 이밖에 한국 드라마의 소비층도 늘어나고 한국 게임과 엔터테인먼트에 대한 소비 트랜드도 각광을 받고 있어 비록 확정적이지는 않지만, 미국 내 아시아 문화의 전파에서 일본의 제이팝(J-pop)과 홍콩의 광동팝(Canto-pop)을 대체하는 독특한 국지적 문화로 형성되고 있다.

한류의 붐이 국경을 넘어 탈국적화된 대중문화 소비를 낳았고, 이제는 그것이 외국에서의 한국학에 영향을 미칠 정도가 되었으니, 한류는 단지 떠도는 유령만은 아닌 듯하다. 이런 것을 두고 포스트-한류의 파급효과로 볼 수도 있지 않을까 싶다. 미국에서 한국학을 가르치는 한국계 학자들은 이런 한류의 국제적 붐을 잘 활용하여 한국학의 지평을 넓히려는 기획을 가지고 있다. 한국의 대중문화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는 교육과정을 개설하거나 적합한 교재를 개발하려는 계획을 서두르고 있고, 일본학과 중국학에 비해 상대적으로 열악한 연구 환경을 개선하려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 이동연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그러나 한류의 붐에서 촉발된 한국학의 붐이 가야할 방향은 꼭 대중문화연구에만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오히려 대중문화에 관심이 많은 시기일수록, 한국의 문화와 역사의 근원이 될 수 있는 사상과 철학, 그리고 역사에 대한 심도 깊은 연구도 함께 병행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한국의 동시대 문화에 대한 깊이 있고 적합한 정보를 얻기 위해서는 한국에 거주하는 학자들과의 지속적인 교류도 필요하다. 한류를 알기 전에 한국의 전통예술과 문화의 원류에 대해 가르치는 것이 선행되어야 한다.

한국학이 국제적인 학문의 장에서 정체성을 찾아나기는 지금 이 시점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한류’의 이면에 담긴 한국적인 힘과 정서구조에 대한 탐구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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