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그램제작기 KBS 일요스페셜 <사하라에서의 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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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탈출 원했던 시청자 호응 대단

|contsmark0|사하라에서 돌아오는 길에 런던에서 심한 폭음을 했다. 그 곳의 아는 선배 한 분이 그 간의 어려움을 다 털고 돌아가라면서 평소에 싫어하던 폭탄주를 권했다. 그 열흘 전 사하라로 들어가기 직전 내 얼굴에 드리워 졌던 어두운 표정을 이 선배가 유심히 봤던 모양이다. 주는 대로 너댓잔을 모두 들여 마시고는 비행기 탑승을 거부당할 뻔했던 기억이 새롭다.
|contsmark1|정말 힘든 프로그램이었다. 처음 이 프로그램의 기획은 팀내의 조인석 차장이 했다. 프로그램의 주인공은 조 차장과 오랜 친구 사이. 조 차장은 이 친구의 사하라행 결심을 썸씽스페셜로 받아들였던 모양이다. 내가 이 아이템을 연출하게 된 계기는 나도 예전에 가끔씩 육체적인 모험을 해서 튀었다(?)는 얘기를 조 차장이 어디선가 들었었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contsmark2|일교차가 40~50 도까지 되고 열흘간을 사막에서 야영해야 하기 때문에 내가 일단은 육체적 어려움을 견딜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 모양이다. 사하라 사막이 주는 묘한 매력. 처음엔 왠지 괜찮았다. 그러나, 고민이 시작된 것은 이틀도 지나지 않아서부터였다. 이 사막마라톤에 관해 주최측에서 제작한 프로그램을 보고는 실망감을 감출 수 없었다.
|contsmark3|예상과 달리 그 속에 긴장과 치열함이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아마 그 프로그램은 대회 홍보용이어서 힘든 장면은 별로 포함시키지 않았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그리고, 보통의 평범한 사람을 주인공으로 해서 60분을 끌어간다는 것이 과연 가능할까하는 의문이었다.
|contsmark4|<일요스페셜>의 기존 이미지와 중량감을 채우기에 이 주인공이 적합할까? 게다가 내가 아직은 40대 중반까지는 안 돼서 그런지 주인공의 심리가 잘 이해가 안 갔다. 6,7백 만원을 들여서 일주일간이나 사막에서 뛰러 간다니. 20대까지만 해도 여건이 됐다면 나도 그랬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40대 중반이 돼서도 왜 저러나? 주위의 동료 pd 여러 명에게 자문을 구했지만 절반 이상이 고개를 갸우뚱하면서 “<일요스페셜> 아이템이 될 수 있을까?”하고 반응했다.
|contsmark5|특히 결재 라인 상의 간부들의 반응도 회의적이었다. 해외 출장 프로그램이어서 표준제작비까지 오버였다. 부장은 너무 걱정하지 말라면서 나를 신뢰하는 모습을 보여줬지만 나는 이 아이템을 잘못 손대서 망신당할 것 같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contsmark6|“기획자가 직접 연출하시지요”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 왔지만 차마 못 했다. -나중에 들어보니 조차장도 사하라에 가고 싶은 생각이 간절했었다고 한다.- 육체적 어려움을 겁낸다는 인상을 줄 것 같아서였다. 그래서, 텐트 야영 경험이 없어 은근히 사막에서의 야영에 대한 어려움도 예상됐지만 그 문제는 걱정 축에 끼지도 못 했다.
|contsmark7|그러나, 막상 사하라 사막에 도착해 하룻밤을 야영하고 나니 그 간의 걱정은 밀려났다. 각각의 참가 동기를 가지고 세계 각국에서 온 600명의 참가자들. 그들이 펼치는 이벤트는 카메라 한 대가 다 담기에는 역부족일 정도로 드라마였다.
|contsmark8|그리고, 군사작전을 방불케할 정도로 멋지게 대회를 운영하는 주최측 프랑스인들에게도 신뢰가 갔다.물론 프로그램에서 중심은 40 대 중반의 평범한 은행원이 왜 이 이상하고 힘든 경기를 하게 됐고 이를 통해 그에게 어떤 변화가 일어나는가 하는 것이었다.
|contsmark9|그러나, 역시 표현이 힘든 주제였다. 그는 자기가 왜 이 미친(?) 짓을 하는지 자기도 확실히 모르겠다고 했었다. “사하라에 가면 그 답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요?”하는 식이었다.
|contsmark10|두 아들(고1, 중1)을 둔 40대 중반의 가장. 가족들은 그의 사하라행을 시큰둥해 했다. 한 은행의 지점장이기도 한 주인공이 왜 가족들의 만류를 무릅쓰고 그 고행길을 택했을까? 먹고 살만하니까? 장기 근속의 대가로 얻은 휴가를 가족을 위해 쓰지 않다니 무책임한 가장이 아닌가?
|contsmark11|경기에 참가한 여러 나라 사람들을 인터뷰했다. 그중 호주에서 온 50대의 남자는 “임종을 맞이했을 때 내가 이 지구상에 살아있었다는 것을 느끼기 위해 참가했다”는 그럴 듯 한 대답을 했다. 그러나, 주인공은 거기서도 여전히 그럴듯한 이유를 못 찾겠다고 했다.
|contsmark12|그는 경기를 모두 끝내고 나서는 단지 “이번에 안 왔으면 다음 번에라도 꼭 와야할 것 같아 왔다”라는 모호한 답변을 할뿐이었다.돌아와 편집과정에서 많은 지적을 받고 몇 번 보완을 했으나 미진한 부분이 여전히 몇 군데 남아 있었다.
|contsmark13|다행히 프로그램이 방송되고 의외로 반응이 좋았던 것 같다. <일요스페셜>의 주시청층이 그 날 한국과 호주의 컨페더레이션 축구를 볼 것으로 예상했었다. 예상 시청률을 5%이하로 잡았으나 빗나갔다.
|contsmark14|<일요스페셜> 홈페이지를 통해 많은 시청자들이 이 프로그램과 주인공을 통해 대리체험을 하고 힘을 얻었다는 글을 올렸다. 억눌렸던 일상을 탈출해 보고 싶은 사람들이 그만큼 많았다는 얘기일까? 이 아이템이 과연 프로그램이 될까 걱정했다는 것은 이 시대를 사는 평균 한국인의 심리와 정서를 내가 잘 모르고 있었다는 얘기인가?
|contsmark15|힘든 프로그램이었지만 결과적으로 많은 것을 생각해 볼 계기를 만들어 준 프로그램이었던 것 같다. 안이한 태도에서 벗어나 좀 더 시청자들의 need에 다가서려는 노력을 해야겠다는 생각도 한 번 더 해본다.
|contsmark16|끝으로 이 지면을 빌려 개인적으로 귀한 경험을 할 수 있게 기회를 준 선배에게 감사하고, 또 50도의 열사와 먼지 속에서 무거운 카메라를 메고 뛰느라 몸살이 나고 입술이 부르터서도 끝까지 열정을 보여줬던 두 카메라맨(이경직, 문창수)에게 다시 한번 고마움을 전하고 싶다.
|contsmark17|양승동 kbs 대전 pd|contsmark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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