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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BS가 필요한 이유

|contsmark0|프로그램에서 손을 뗀 지 여덟 달이 지났다. 제법 긴 시간이다.
|contsmark1|지금부터 여덟 달 전에, 나는 하루하루 허덕이면서 <시사자키 오늘과 내일>을 만들고 있었다. <시사자키>는 매일 두 시간 동안 방송되는 시사 프로그램이다. 방송 시간도 길고 출연자도 많다. 어떤 날은 하루에 일곱, 여덟 개의 아이템을 다루기도 한다. 작가도 없이 세 명의 pd가 아이템 잡고 섭외하고 방송 원고까지 다 쓰는 체제다.
|contsmark2|당일 섭외가 안 돼서 입술이 타 들어가고, 그 타들어가는 입술로 생방송 시간 30초 전에야 원고를 끝내는 경우도 비일비재했다. pd들 사이에서 <시사자키>가 최악의 3d 업종으로 꼽힌 것도 당연한 일이다.
|contsmark3|어쩌다 보니 엄청난 고초를 겪으면서 방송을 해 온 것처럼 써 버렸는데, 3d 업종에도 좋은 점은 있다. 말 뿐이긴 하지만 ‘간판 프로그램’을 한다는 생각도 없지는 않았고, 우리 사회 각 부문의 여러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는 것도 좋은 점이었다. ‘우리 사회에 꼭 필요한’ 프로그램이라는 찬사를, 가끔은 청취자와 언론 관계자들로부터 듣게 되는 점도 빼놓을 수 없을 것 같고.
|contsmark4|‘우리 사회에 꼭 필요’하다는 이야기는 그 만큼 다른 프로그램, 다른 방송과는 다르다는 뜻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다른 방송에서 다루지 않는 아이템을 다루고 다른 방송에선 만날 수 없는 출연자를 만날 수 있다는 것, 이것이 <시사자키>의 가장 확실한 차별성이며 특징인 것이다.
|contsmark5|실제로 <시사자키>의 스튜디오에는 노동, 인권, 여성, 환경, 교육 등 여러 분야의 현장에 서 있는 많은 사람들이 직접 출연했는데, 놀라운 것은 이들 대다수가 방송 출연이 처음(이면서 동시에 마지막)이었다는 사실이다. <시사자키>가 없었다면 이들의 생생한 목소리는 우리에게 영영 전해지지 못했을 것이다.
|contsmark6|롯데호텔의 여성 노동자들과 상문고 선생님들, 부산 미군부대의 여성 군무원과 레미콘 운전기사들, 동성애 인권운동가들과 미군 피해 유가족들까지, 우리 사회의 힘없는 그 수많은 사람들은 <시사자키>를 <시사자키>답게, 그리고 cbs를 cbs답게 만들어 준 주역들이었다.
|contsmark7|그리고 파업 여덟 달. 중앙 언론사가 240일이 넘게 전면 파업을 벌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일반 시민들은 놀라울 만큼 cbs 사태에 대해 모른다. 당연하다. 대부분의 언론사들이 의도적으로 cbs 사태를 보도하지 않기 때문이다.
|contsmark8|<시사자키>와 cbs가 필요한 이유는 여기서도 다시 확인된다. 이런 사태가 다른 언론사에서 벌어지고 있다면, 그리고 우리가 <시사자키>를 만들고 있다면, 이 파업 사태는 틀림없이 생방송으로 적어도 너댓 번은 다뤄졌을 것이다. 노조위원장의 초대석도 마련됐을 것이다.
|contsmark9|그래서 이 언론사의 문제가 무엇인지, 힘없는 노조원들이 왜 밥을 굶어가며 파업을 계속하고 있는지가 명확히 알려졌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우리는 파업중이다.
|contsmark10|현장에서 어렵게 싸우고 있는 분들을 방송에 출연시키면서, 돌이켜보면 참 어줍잖은 만족감 같은 걸 느꼈었다. 자신들의 문제를 다뤄줘서 고맙다는 출연자의 인사를 받으며, 속으로는 “사실 고마워할 만도 한 일이지요” 생각했던 건 아닌지.
|contsmark11|세상을 다시 보게 되고, 바른 언론으로서 cbs가 할 일을 새롭게 확인했다는 점에서도 이번 파업은 의미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세상에 공짜는 없는 것이다.
|contsmark12|지 웅cbs 편성제작국 pd|contsmark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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