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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D의 눈] 4차 동북아 전쟁은 없어야 한다!

아마 나를 포함한 대다수 국민들은 ‘경술국치 100년’이라는 표현을 최근 들어 언론들이 사용하기 전까지 모르고 있었을 것이다. 해방, 건국, 전쟁… 등등의 기념 특집 기획물이 가지는 미덕 중에 하나가 바로 이런 새로운 환기 혹은 자각의 기능을 담당한다는 사실이다. 그런 면에서 지난 몇 주간 지상파 방송들이 쏟아낸 특집 프로그램들은 충분히 제 역할을 수행했다고 볼 수 있겠다.

비단 방송 매체뿐만 아니라 신문과 잡지 매체들과 학계의 출판물도 많은 담론들을 쏟아 냈다. 그 중 나의 관심을 가장 솔깃하게 한 내용은 ‘조선전쟁’의 개념이었다. 한일의 역사학자들이 새롭게 제시한 개념 중에 하나가 한반도를 둘러싼 ‘조선전쟁’이 아직까지도 현재진행형이라는 주장이었다. 임진왜란이 1차 조선전쟁이고, 청일전쟁부터 러일전쟁을 거쳐 한일 합방까지 이어지는 과정이 2차 조선전쟁의 과정이고, 한국전쟁은 3차 조선전쟁이라는 다소 거칠지만 솔깃한 해석이었다.

단순한 일본 제국주의의 침략 과정으로 치환되지 않는 복잡한 한반도 주변의 정세가 작용한 결과가 경술국치, 곧 한일 합방이었다는 해석은 분명 새로운 동북아의 전망까지 담보할 수 있는 장점을 가지고 있는 듯하다. 이런 측면에서 볼 때 한국방송(KBS)이 제작한 〈국권침탈 100주년 특별기획, 한국과 일본〉은 한일 관계를 새롭게 해석하고 전망과 대안을 제시한 프로그램이었다.

그러나 이 다큐가 대결과 증오의 원인을 파고들고, 또 이를 넘어설 수 있는 이해와 소통의 필요성을 제기한 심도 있는 역작이었음을 인정하면서도 가슴 한 구석에 아쉬움이 남는 것은 한일의 관계만 너무 깊게 파고들었다는 역설적인 사실이다.

이런 문제 제기는 한일 합방이 오롯이 일본의 야욕 때문이라는 주장과, 한국의 독립이 순전히 민족 독립 투쟁의 결과물이라는 해석에 선뜻 동의할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유이다. 앞에서 이야기했던 ‘조선전쟁’의 개념을 좀 더 확대해보면 (물론 개인적인 의견이다) ‘동북아 전쟁’이라는 더 크고 의미심장한 역사 분석의 틀을 끄집어 낼 수도 있다.

한반도를 둘러싼 열강들의 각축과 타협과 투쟁의 산물이 바로 동북아 전쟁이라는 비극적 결과였다. 1차 동북아 전쟁인 임진왜란의 결과는 명의 몰락과 일본의 재편을 가져왔고, 2차 동북아 전쟁의 결말은 청의 몰락과 러시아의 혁명을 촉발시킴과 동시에 조선 왕조의 멸망과 일본 군국주의의 확장으로 나타났다. 3차 동북아 전쟁인 한국전쟁은 미국의 패권 확립과 일본의 자본력 구축을 공고히 하는 동시에 남북한의 분단 고착을 가져왔다. 그 3차 동북아 전쟁의 연장선위에서 북·중·러의 대륙 세력과 한·미·일의 해양 세력이 팽팽히 맞서는 일촉즉발의 전선이 바로 휴전선인 것이다.    

▲ 김욱한 포항MBC 제작팀장

경술국치 100년이자 한국전쟁 60주년인 지금, 또다시 동북아전쟁의 절망적인 그림자가 덮쳐오는 듯한 두려움을 가지는 것은 나의 어설픈 기우일까? 동북아 전쟁의 전쟁터는 늘 한반도였음을 잊지 말자. 4차 동북아 전쟁을 꼭 막아야하는 이유다. 가끔 꿈을 꾼다. 나와 내 가족들이 전쟁의 참화에 굴러 떨어지는 식은 땀나는 악몽이다. 꿈에서 깨면 또 악몽 같은 현실이다. 모든 것을 양보하더라도 전쟁만은 막아야한다는 게 나의 신념이다. 그리고 전쟁을 막는 힘은 민주주의만 담보할 수 있다는 것도 나의 신념이다. 경술국치 100년을 맞은 나만의 작은 깨달음은 이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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