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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석]‘공영성’ 지워낸 개편…종편·상업방송과 경쟁하겠다?

‘공영방송 MBC’에 빨간 불이 켜졌다. MBC를 ‘공영방송 MBC’이게 했던 공영성과 공공성의 가치가 후퇴하고, 그 자리를 ‘시청률=수익’이라는 상업방송의 최우선 가치가 대신하기 시작했다. 이제 MBC는 KBS와 함께 공영방송의 한 축을 이루며 지상파 방송의 공공성을 지키는 ‘바람직한 공영방송 모델’이 아니라, 상업방송, 나아가 종합편성채널과 무한 경쟁해야 하는 ‘방송채널사용사업자’의 하나로 전락할 위기에 놓였다.

종편·상업방송과 경쟁하겠다는 MBC

최근 MBC가 발표한 개편안은 이 같은 위기감을 키우고 있다. MBC는 오는 11월 1일 시사프로그램 〈김혜수의 W〉, 〈후 플러스〉 등을 폐지하고 〈스타오디션-위대한 탄생〉 등을 신설하는 개편을 실시한다고 밝혔다. 이로써 MBC의 시사프로그램 〈PD수첩〉과 〈시사매거진 2580〉 단 두 편만이 남게 됐고, MBC의 평일 프라임타임대(오후 7시~자정)의 오락프로그램 편성비율은 53%에서 57.6%로 수직상승해 SBS의 56.3%보다 높아졌다.

이번 개편안을 두고 “공영성 포기”라는 비판이 일자 MBC측은 “특정 형태 프로그램의 시간이 축소된 것을 가지고 공영성이 축소되었다고 비난하는 것은 정량 분석의 전형적인 오류”라고 반박했다.

▲ 11월 개편에서 폐지될 '김혜수의 W'(왼쪽)와 '후 플러스' ⓒMBC
물론 시사프로그램 편수와 방송시간이 줄어들었다고 해서 무조건 공영성이 후퇴했다고 비판할 수는 없다. 그러나 MBC측의 논리대로라면 보도 기능 강화에 대한 어떤 구체적인 계획도 없이 평일 저녁 6시 30분 방송되는 뉴스 시간을 30분 더 늘렸다고 해서 ‘보도의 공영성 강화’라고 대대적인 홍보를 하는 것 또한 어불성설이다.

무엇보다 MBC 경영진은 이번 개편에 대해 “공영성보다 경쟁력을 따르는 개편”이라는 점을 숨기지 않았다. ‘프로그램 경쟁력 강화’라는 이번 개편의 모토는 실상 ‘경쟁력=시청률=수익’의 관점을 드러낸다. 때문에 국내 유일의 국제시사프로그램 〈김혜수의 W〉와 탐사보도프로 〈후 플러스〉도 “적자가 상당하다”, “광고가 취약하다”는 이유로 무릎을 꿇어야 했다.

이번 개편 논의 과정에서 김재철 사장 등 MBC 경영진은 ‘공영방송 MBC’에 대해 상당히 위험 수준의 인식을 보였다는 지적이다. MBC노조는 “그동안 MBC 개편은 공영성 강화와 경쟁력 제고라는 양 축에 따라 이뤄졌는데, 이번 개편에서 공영성은 처음부터 고려 대상조차 아니었다”고 비판했다.

실제로 김재철 사장은 지난달 20일과 27일 열린 노사 공정방송협의회에서 “‘곳간에서 인심난다’는 말처럼 시청률부터 올리고 난 뒤에 공영성을 생각해야 하지 않겠느냐”라고 말했다. 또 “돈이 있어야 더 좋은 프로그램을 만들 수 있는 거다. 지금 시대가 그렇다. 그 돈으로 드라마 작가도 잡고, 특종상도 더 주고 그런 거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경영본부장은 “돈은 땅 파서 안 나온다”며 김 사장을 거들었다.

노조는 “언론사의 시사교양 프로그램이 과연 돈을 벌려고 만드는 프로그램인가”라고 항변했지만, 김재철 사장은 “의미만 갖고 살 순 없다”며 이를 일축했다.

물론 의미나 명분만을 가지고 방송사를 경영할 순 없다. 수익도 나야 더 좋은 프로그램을 만들 수 있다는 말도 틀린 것은 아니다. 특히 MBC와 같이 ‘공영방송’이면서 100% 광고 수익에 의존해야 하는 경우는 더욱 그렇다. 중요한 것은 ‘균형’이다. 공영성과 공공성, 그리고 경쟁률(=수익)이란 가치가 어느 한쪽으로 지나치게 쏠리지 않도록 무게중심을 잡아야 한다.

▲ 11월 개편에서 신설되는 예능프로그램의 하나인 '여우의 집사'(가제) ⓒMBC
그러나 이번 개편에서 이 같은 ‘균형감’은 찾아볼 수 없다. 오히려 케이블TV나 민영방송 SBS와 시청률 경쟁을 하겠다는 의도가 분명하게 드러난다. “우리는 왜 〈슈퍼스타K〉 같은 프로를 못 만드냐”는 김재철 사장의 한 마디에 케이블 엠넷의 스타 발굴 프로그램 〈슈퍼스타K〉를 본뜬 〈스타오디션-위대한 탄생〉을 서둘러 신설하고, 주말 〈뉴스데스크〉 시간대를 앞당기고 SBS와 같이 드라마를 연속 편성한 것이 단적인 예다. ‘시청률 경쟁’을 위해 40여년 만에 메인뉴스의 시간대를 바꾸는 “위험한 도박”도 아랑곳하지 않은 것이다.

위기의 MBC, ‘앞으로’가 더 문제다

MBC 경영진은 이번 개편 과정에서 “종편 출범을 앞두고 경쟁력을 높이자는 차원”이란 점을 거듭 강조했다. 안광한 편성본부장은 지난달 27일 공방협에서 “만년 3위에 머물고 있는 MBC의 경쟁력을 올리지 않으면 종편 체제에서 꼴찌 채널을 면치 못한다”고 말했다.

‘종편 체제’라는 미래의 상황은 MBC에게서 공영방송의 색채를 지워내는데 그럴듯한 명분이 되었다. 주목할 것은 향후 종편이 출범하고 ‘미디어 무한경쟁 시대’가 도래하면 MBC의 공영성은 더욱 위태로워질 것이란 점이다. 수익성이 낮은 시사프로그램의 입지는 좁아지고, 보도의 연성화와 비판 저널리즘의 후퇴가 가속화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때문에 〈김혜수의 W〉와 〈후 플러스〉가 폐지 대상에 올랐을 때 MBC의 한 기자는 “시사프로그램을 간단히 없앨 수 있다는 전례를 남겨서는 안 된다”며 강도 높은 투쟁을 제안하기도 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폐지의 길은 피할 수 없었다. MBC 내부에선 “다음은 〈PD수첩〉 차례인가”라는 우려도 나온다.

물론 〈PD수첩〉을 없애는 것은 간단한 일이 아니다. 〈PD수첩〉 폐지를 시도할 경우, 〈김혜수의 W〉나 〈후 플러스〉 때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MBC 안팎의 엄청난 저항을 부를 것이다. 하지만 이번 개편이 중요한 것은 그런 〈PD수첩〉 또한 얼마든지 ‘시청률’로 재단돼 희생될 수 있는 여지를 남겼다는 점이다. MBC 시사교양국의 한 PD는 “이제 시사프로그램을 만들 때도 시청률과 광고를 신경 써야 하나”라며 자조적으로 말하기도 했다.

바로 그래서 MBC의 이번 개편안은 의미심장하다. MBC의 현재를 위기로 진단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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