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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D의 눈] 이동유 대구CBS PD

초여름 무더위와 함께 시작한 라디오 특집 다큐 프로그램의 1차 편집을 마무리 했다. 이번 프로그램은 대한민국을 살아가는 평범한 맞벌이 부모의 한 사람으로서 이제 곧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아이가 학교를 마치고 돌아 왔을 때, ‘학원을 전전하지 않고 안전하게 지낼 수 있는 방과 후 돌봄, 배움의 공간이 없을까?’라는 지극히 개인적인 고민에서 시작됐다. 그리고 비슷한 문제의식을 갖고 앞서 현실을 헤쳐 나가고 있는 ‘마을 공부방’ 사람들을 만나면서 화학 반응을 일으켰다.

부모가 돈이 많거나 적거나 상관없이 아이들은 아이들일 뿐이다, 아이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존재 그 자체로 사랑해줄 수 있는 어른들이 내 아이, 네 아이 구분 없이 서로 돌보며 배움의 공동체를 만들어 가고 있는 곳, 과연 그런 곳이 있을까, 한국사회에서 누구도 비껴갈 수 없는 대학 입시경쟁은 또 어쩌고 아이들을 자유롭게 놓아 키운단 말인가, 그래 봐야 결국은 강고한 경쟁사회, 승자독식사회에서 잠시 한 눈을 팔 뿐 냉혹한 정글을 무슨 수로 벗어날 수 있으랴. 이런 의문을 잔뜩 품고 시작한 취재는 그러나 곧 부모가 자신의 삶의 태도, 마음가짐을 바꾸면 아이들에게 현실은 더 이상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대답으로 한 순간 맥이 풀려 버렸다.

왁자지껄 시끄럽고 웃음소리, 고함소리가 끊이지 않는 어찌 보면 무질서해 보이는 공간, 그 속에서 아이들은 형, 누나, 동생들, 그리고 마을학교 선생님들과 너무나 스스럼없이 지낸다. 또 자신들이 살고 있는 마을을 삶의 배움터 삼아 틈만 나면 마을 뒷산을 오르고, 오늘 접한 바위와 꽃, 나무들의 모양이 내일 어떻게 달라지는지 관찰하며 자란다. 그리고 지역사회의 어른들이 선생님이 돼 이런 아이들과 연극놀이, 음악수업, 바느질, 요리 교실, 책읽기 수업을 진행한다.

사라진 옛 마을의 모습을 회색빛 아파트가 점령한 현대 도시에서 되살리는 일은 사회학이나 생태학적으로 접근하면 너무나 거창하다. 하지만 내 아이를 더 안전하고 행복하게 키울 수 있는 공간으로 마을을 되살리려는 이들의 삶은 더없이 평온하고 즐거워 보였다. 세상을 바꾸는 일은 늘 실패로 돌아가지만 내가 바뀌고 이웃이 바뀌고 마을이 바뀌는 것은 그렇게 거창한 이론이나 혁신적인 시스템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서구 사회가 200~300년에 걸쳐 이룩한 근대 교육시스템을 우리가 아무리 좋다고 수입해도 결국 새로운 문제를 야기하듯이 그 속에서 꿈틀거리는 사람이 바뀌지 않는 한 교육 개혁은 요원하다.

▲ 이동유 대구CBS PD

취재를 하면서 만나 평범한 초등학교 4, 5, 6학년들의 삶은 참으로 비참했다. 학교를 마치고 돌아오면 간식을 먹고 곧장 학원으로 향하는 아이들, 그리고 밤 7시, 8시까지 학원을 전전하다 겨우 집으로 돌아오면 내일까지 해가야 할 학교, 학원 숙제가 기다리고 있다. 그렇게 시작된 학원과의 인연은 대학 입시가 끝나도 끊어질 줄 모르고, 취업을 위한 스펙 쌓기로 하염없이 이어진다. 미래에 대한 불안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선택했던 삶이 요즘 아이들에게는 스스로 그런 경쟁적 삶을 내면화하고 동기화하는 수준에 이르렀다. 어떻게 하면 이 끔찍한 대물림을 끊을 수 있을까? 취재를 하면서 만난 마을 공부방의 사람들은 표내지 않으면서도 너무나 씩씩하고 담담하게 그 일을 해나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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