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검찰에 내 양심은 체포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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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능희PD, 항소심 결심공판 최후진술…검찰, 징역 2~3년 구형

“국가권력을 국민으로부터 위임받아 행사하는 공직자들은 정책의 호불호에 따라 국민들로부터 다른 소리를 들을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비판 언론을 상대로 권력을 이용해 강제수사를 하는 것은 〈PD수첩〉 사건이 마지막이었으면 합니다.”

MBC 〈PD수첩〉 사건 항소심 결심 공판이 열린 28일 서울중앙지방법원 421호 법정. 조능희 전 〈PD수첩〉 책임PD는 지난해 12월 1심 결심 공판에서 밝혔던 최후 진술의 일부를 거듭 반복했다. 함께 피고인석에 앉아 조능희 PD의 최후 진술을 경청하던 김보슬 PD와 김은희 작가는 연신 눈물을 훔쳤다.

검찰 “반정권·반미 감정 갖고 방송 제작…죄질 불량”

▲ ‘광우병’을 제작했던 조능희 전 CP, 송일준 MC, 김보슬 PD(왼쪽부터) ⓒPD저널
〈PD수첩〉 ‘미국산 쇠고기, 과연 광우병에서 안전한가’편 제작진의 명예훼손 및 업무방해 사건에 관한 항소심이 이제 판결만을 남겨두고 있다. 검찰은 28일 결심 공판에서 1심에 이어 제작진 5명에게 징역 2~3년을 구형했다. 조능희 PD와 김보슬 PD, 김은희 작가는 3년, 당시 〈PD수첩〉 진행을 맡았던 송일준 PD와 이춘근 PD에게는 징역 2년이 구형됐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항소9부(이상훈 부장판사)는 5주 뒤인 12월 2일 선고 공판을 예고했다.

검찰은 이날 “피고인들은 한미 쇠고기 협상 대표단이 무능하고 태만하며 범죄에 가까운 직무유기를 했다는 식으로 치욕스러운 불명예를 안겼다. 또한 총선 결과에 대한 적개심으로 자신의 목적을 위해 공중파를 이용, 대국민 사기극을 벌여 국민을 공포에 몰아넣는 등 죄질이 매우 불량하며, 범행 이후에도 전혀 반성하지 않고 있다”면서 “사안의 피해가 중하고 죄질이 불량하므로 중한 형이 선고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검찰은 〈PD수첩〉 제작진이 정권과 한미 FTA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가지고 악의적 왜곡을 저질렀다고 주장했다. “정권과 한미 FTA 반대라는 기획의도를 충족하기 위해선 동물학대 동영상은 광우병 동영상이, 아레사 빈슨은 미국 내에서 인간광우병으로 사망한 최초의 미국인이 되어야 했으며, 협상 대표단은 법절차를 지키지 않고 국민생명을 미국에 팔아넘긴 매국노로 결론 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변호인은 “방송의 목적은 보도에 드러나 있는 것이지 개인의 이메일을 뒤져서 정권을 비방할 목적이었다는 등 숨은 의도를 갖고 얘기하는 것은 법적으로도 적절치 않다”고 지적했다.

변호인 “협상 문제제기 않는 것이 언론의 직무유기”

변호인은 최종 변론을 통해 “본 사건의 내용은 매우 간단하다. 첫째 미국 도축 시스템에 문제가 있고, 협상 당시 마침 미국에서 인간광우병 의심 진단을 받은 아레사 빈슨이란 여성이 죽었고, 셋째 이 같은 정황을 우리 정부가 반영해서 협상에 임했는가”라며 “우리 국민의 건강을 위해 어떤 태도를 취하는 것이 옳은가 하는 문제제기는 방송이 할 일이며, 하지 않는 것이 직무유기”라고 말했다.

이어 “공직자가 국가기관으로 수행한 업무를 비판하는 것은 국가 행위에 대한 비판에 해당한다”며 “얼마 전 박원순 희망제작소 상임이사에 대한 국정원의 손배소 사건 기각 판결에서 보듯이 국가는 명예훼손 대상이 아니며 명예훼손이 성립할 수도 없다”고 강조했다.

변호인은 또한 이번 사건의 공소제기 자체가 문제라고 거듭 주장했다. 변호인은 “본 사건을 처음 맡으며 든 생각은 당연히 기소 안 될 거란 것이었다. 그런데 항소심까지 왔고, 400페이지짜리 변론요지서를 작성하면서 자괴감마저 들었다”고 운을 뗀 뒤 “시간이 지나면 이번 수사와 재판이 아이러니하게 기억될 것이다. 이게 과연 재판까지 와서 수많은 노고를 들일만한 것인가. 검역주권에 대해 문제제기한 것은 오히려 상 받아 마땅한 일”이라고 밝혔다.

조능희 PD도 피고인 대표로 한 최후 진술에서 “〈PD수첩〉은 공직자 개인을 비난하거나 평가한 적이 없다. 예상외로 개방된 한미 쇠고기 협상 타결 문제를 발견하고자 한 것이다. 이후 이명박 대통령이 두 번 대국민 사과를 하고 추가 협상을 통해 문제의 일부를 해결했다. 우리는 단지 언론의 역할을 한 것 뿐”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그는 “시간을 되돌려도 또 다시 방송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조 PD는 2008년 4월 방송 이후 2년 이상 진행돼 온 검찰 수사에 대해서도 강한 불만을 쏟아냈다. 그는 “일개 명예훼손 사건에 5명의 검사가 투입돼 장시간 공판을 하는 것 자체가 이 사건의 본질”이라며 “이 사건이 공안사건인가, 큰 범죄 조직단을 수사하는 것인가”라고 일갈했다. 그는 “나는 정치검찰의 체포와 수사, 석방 모두 인정할 수 없다. 정치검찰에 내 양심은 체포된 적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조 PD가 ‘정치검찰’ ‘거짓말’ 같은 강도 높은 표현을 써가며 검찰을 비판하자, 검찰이 발끈하며 거듭 문제를 제기, 재판부가 나서서 쌍방 다툼을 제지하기도 했다.

진술거부권 두고 검찰-변호인·제작진 팽팽한 ‘신경전’

검찰과 변호인, 제작진 간의 팽팽한 신경전은 이날 오후 2시부터 약 4시간 30분간의 공판 내내 계속 됐다. 〈PD수첩〉 ‘미국산 쇠고기, 과연 광우병에서 안전한가’편 영상 검증과 피고인 신문, 검찰 논고와 최후 진술 등으로 이어진 공판에서 검찰의 신문권과 피고인의 진술거부권을 두고 양보 없는 논쟁을 벌였다.

제작진은 재판에 앞서 검찰의 신문에 응하지 않고 전체 진술 거부권을 행사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럼에도 재판부가 “피고인의 진술거부권과 마찬가지로 검찰의 신문권도 존중해야 한다”며 피고인 신문 절차를 진행시키자 변호인은 “전체 진술 거부권을 행사하는데 계속해서 캐물으면 진술거부권 행사에 장애가 생긴다”며 “법리적으로도 인정되지 않고 필요성도 없는데 계속해서 신문을 하는 것이 무슨 실익이 있냐”며 이의를 신청했다.

그러나 재판장은 “변호인의 주장은 충분히 경청할만하나, 이의 신청은 받아들일 수 없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다만 증인석이 아닌 피고인석에 그대로 앉아 신문을 받게 해달라는 제작진의 요구는 수용했다. 결국 이날 피고인 신문은 검찰이 70여분 동안 일방적으로 묻고 제작진은 답변하지 않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검찰은 또 이날 영상 검증과 관련, 방송에서 사용한 표현이나 인터뷰 분량 등을 일일이 문제 삼기도 했다. 검찰은 “출연자 분량을 보면 피고측 주장을 대변하는 게 24분 38초, 농림수산식품부 관계자가 4분 29초로 6배 차이가 난다”거나 “통상 ‘국민의 건강’이라고 표현하는 것을 ‘국민의 생명’이라고 말하는 등 인간광우병이란 의미를 강조했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조능희 PD는 최후 진술에서 “검사가 프로그램을 분석하며 인터뷰 분량이나 표현, 뉘앙스까지 검열한다는 것이 꿈인지 현실인지 믿어지지 않는다”며 “이런 식의 수사와 기소는 참으로 부당하다”고 말했다. 변호인도 “건강, 생명과 같은 표현을 쓰는 일까지 법정에서 문제가 된다면 우리 신문과 방송은 일체 보도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한편 농수산식품부가 정운천 전 장관과 민동석 전 정책관의 개인 명예훼손 소송에 변호사 수임료로 억대의 예산까지 편성하는 등 소송비용을 부담한 사실이 밝혀져 논란이 일고 있는 가운데, 변호인은 이날 관련 언론 보도를 증거물로 제출했다.

〈PD수첩〉 사건 항소심 선고 공판은 12월 2일 오후 2시 서울중앙지법 421호 법정에서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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