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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영국=장정훈 통신원

‘스피드테스트’(Speedtest.net)에 따르면 대한민국의 인터넷 속도는 초당 다운로드 36메가, 업로드 20.32메가로 전세계 1위다. 영국은 다운로드 9.29메가로 32위, 업로드 1.52메가로 54위다. 인터넷 속도만을 놓고 보면 영국인은 쥐구멍을 찾아 들어가도 시원치 않을 판이다.

점심시간, 가방에서 샌드위치를 꺼낸다. 자판기에서 뽑아온 커피를 마시며 인터넷에 접속한다. 지난 밤에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과 한 잔하느라 즐겨보던 자동차 전문 프로그램을 놓쳤다. 클릭 한번으로 컴퓨터 화면에 화려한 자동차 쇼가 펼쳐진다. 끊김도 없다. 화질도 HD다.

퇴근 후 TV를 켠다. 이리저리 채널을 돌려 보지만 별로 볼만한 프로그램이 없다. TV 리모콘에서 빨간색 버튼을 누른다. 며칠전 피곤에 절어 졸다가 잠이 들어 다 보지 못한 프로그램을 찾는다. 이미 보았거나 재미 없는 부분은 빨리 넘기고, 흥미로운 부분에서 플레이 버튼을 누른다. DVD를 보듯 그렇게 자유자재로 TV를 본다. 언제든, 원하는 프로그램을 찾아, 원하는 부분으로 자유롭게 이동하면서 말이다.

이런 TV는 X BOX 같은 게임기를 통해서도, 스마트 폰을 통해서도 볼 수 있다. 다운로드를 받아서 볼 수도 있고, 프로그램을 보면서 트위터 같은 네트웍에 연결해 다른 사람들과 소통도 가능하다. 시청료를 내는 영국인 이라면 누구나 누릴 수 있는 방송 서비스다. 나는 지금 BBC 아이플레이어 (iPlyer)이야기를 하고 있는 중이다.

사실, 오래전부터 꿈꾸어 왔고, 머지 않아 현실이 될거라고 믿었던 세상이다. 그러니 그리 놀라운 일은 아니다. 그런데 누가 그런 세상을 먼저 맞이한 걸까 한국일까? 영국일까? 인터넷 속도로만 보면 당연히 한국이어야 한다. 인터넷 속도 30위권에도 못드는 영국에서 인터넷으로, 끊김 없는 영상을 그것도 HD로 감상할 수 있다는건 상상하기 힘들다. 하지만 인정할건 인정하자 사실이니까.

‘다시보기’ 한 번 하려면 개인정보 등록하고, 아이디며 패스워드 넣어야 하고, 엑티브 엑스니 하는 말도 안되는 프로그램을 깔고, 그러고 겨우 프로그램 찾아 들어가 보면 접속자수가 많으니 나중에 다시 플레이를 하라하고, 플레이가 되도 HD는 커녕 조금만 확대해서보면 화질이 깨져서 보기 힘들고, 화질 조금 좋게 볼라하면 돈내라 하는 우리네 방송국의 인터넷 서비스는 서비스가 아니라 <소비자 고발> 프로그램의 소재로 딱 적합한 시청자 기만이다.

그나마 TV로는 ‘다시보기’서비스도 안되지 않나! 일반 시청자는 물론이고 방송국 직원들 조차 합법이 의심스러운 싸이트 들로부터 프로그램을 다운로드 받아보는 지경이니 더 말해 뭘할까?

누구도 의심하지 않는다. 방송과 통신이 융합하는 시대를 말이다. TV가 곧 컴퓨터고, 컴퓨터가 곧 TV다. 휴대폰은 이미 컴퓨터가 되었다.

BBC는 혈세를 낭비한다는 비난을 감수하면서도 지난 4년간 570만 파운드를 아이플레이어의 개발에 투자했다. 내년까지 480만 파운드의 개발비를 더 사용할 예정이다. 아이플레이어를 운용하는데는 한해 400만 파운드 (약 72억)의 비용이 들어간다.

▲ 영국=장정훈 통신원 / KBNe-UK 대표
부가 서비스에 그렇게 많은 돈을 쓰냐고 할 수 있다. 하지만 BBC에게 인터넷은 더이상 부가 서비스가 아니다. 방송의 ‘미래’였다가 ‘현재’가 되어 버린, 진화된 매체다. BBC 온라인엔 매주 2700만명이 접속한다. 그리고 평균 1800만명 이상이 아이플레이어를 통해 BBC 프로그램을 시청한다. 앞으로 그 숫자는 크게 늘어날것이 분명하다.

매년 대한민국의 수많은 방송사 관계자들이 BBC를 성지순례하듯 찾는다. 이제 순례를 멈추고 실천을 할때다. 안그러면 성지가 아니라 쥐구멍을 찾아야 할 날이 올 수도 있다. ‘세계 최강의 IT선진국’, ‘세계 1위의 인터넷 속도’가 허울로 비춰지지 않기를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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