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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설]

11월의 방송은 ‘G20 정상회의’로 뒤덮였다. 이미 100일 전부터 대대적인 홍보가 시작되었던 터지만, 최근 방송의 뉴스와 프로그램들은 더욱 ‘G20’에 몰입하고 있는 양상이다. 전 세계 20개국의 정상이 한 자리에 모이는 행사이니만큼 그 규모와 중요성을 무시할 수 없다. 하지만 요즘 방송을 보고 있노라면 ‘해도 해도 너무 한다’는 말이 절로 나온다.

모든 방송들이 뉴스와 각종 프로그램들을 동원해 ‘G20 정상회의’ 준비와 그 성과를 알리기에 발 벗고 나서고 있다. 가히 ‘G20 홍보의 쓰나미’다. 한 방송사에서는 주부대상 아침 토크프로그램, 퀴즈 프로그램 등이 ‘G20 특집’으로 탈바꿈을 하고, 다른 방송사에서는 10월에 갑작스레 기획한 ‘활쏘기’행사에 ‘G20 성공기원’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이런 홍보의 광풍을 보고 있노라면 이번 회의가 끝나고 나면 대한민국의 국가 브랜드는 욱일승천하여 곧바로 세계 속의 리더로 자리 잡을 것 같다. 급기야 이런 열풍은 행사가 열리는 서울은 물론 지역 중소도시를 비롯해 각 급 단체, 학교들에 이르기까지 ‘G20’ 관련 캠페인과 결의대회 릴레이를 불러오고, 외신들은 이런 과열 분위기를 꼬집고 있는 실정이다.

현 정부가 전력을 기울여 준비하고 있는 행사이니만큼 홍보에 노력을 기울이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문제는 언론이다. 과연 이번 정상회의가 거둘 성과와 과제는 무엇인지를 진지하게 따져보는 목소리는 찾아보기 어렵다. 온통 쏟아져 나오는 것은 ‘경제효과 얼마’, ‘국가 브랜드 상승’ 등의 장밋빛 전망뿐이다.

과거 우리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가입하면서 ‘드디어 대한민국이 선진국에 들어섰다’는 자화자찬에 취해 쓰라린 외환위기를 미리 살피지 못하고 긴 고통의 시간을 겪기도 했다. 그때도 방송을 비롯한 언론들이 앞장서서 ‘선진국 시대’를 홍보하는데 여념이 없었다. 고통의 순간 직전까지도 우리 내부의 문제와 약점을 경고하지 못했던 지난날에 대한 반성은 지금 다시 사라지고 없다. 현재 대한민국 안에서 벌어지고 있는 국격(國格)의 추락사례들에 대한 날카로운 입바른 소리는 찾아보기 힘들다.

경찰의 무리한 체포를 피하다 분신한 노동자, 불법 대포폰으로 사찰을 보고받고 증거를 은폐하려 한 청와대, 부의 세습과 로비를 위해 각종 위.편법을 동원하고 비자금을 만드는 기업들… ‘국격’을 업그레이드하는 것은 외국의 정상들이 모여 회의하는 것으로 실현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나라 안의 문제들을 스스로 개혁해 나가는 데서 완성될 것이다.

이런 산적한 문제들이 ‘G20’으로 한 방에 해결될 것들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관심의 사각지대로 밀려나고 있는 현실은 분명 우리 방송의 책임일 것이다. 또 한 번 방송이 균형과 견제의 제 역할을 다하지 못한다면 국민과 시청자들로부터 ‘TV는 바보상자’라는 오명과 조롱을 받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TV의 책임이 아니라 바로 우리의 책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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