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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BS 파업이 남긴 것

|contsmark0|파업이 남긴 것, 이라고 글을 써 놓고 보면, 파업이 끝나긴 끝났구나 하는 안도의 한숨 같은 것이 느껴지는 한 편으로, 보다 생생하게, ‘남긴 것’을 차분히 생각해 볼 만한 때가 아직 안 됐다는, 답답함과 분노를 감출 수 없다.
|contsmark1|한국 언론사상 가장 긴 기간 동안 계속된 cbs 파업은 지난 7월 2일의 업무 복귀로 일단은 끝났지만, 파업을 가져온 모순과 긴장과 갈등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오히려 파업 전보다, 노와 사 사이의 긴장과 갈등은 더 커졌다고 보는 것이 정확할 것이다. 도대체 왜 cbs는 아직도 이런 꼴을 겪어야 하는 것일까?
|contsmark2|무려 아홉 달 만에 처음으로 ‘일하기 위해’ 회사에 나온 조합원들은 그 동안 방송을 계속해 온 몇몇 선배, 간부들과 한편으론 서먹서먹하고 한편으론 어쩐지 미안하기도 하고, 또 한편으론 배신감을 주체할 수 없는, 상당히 독특한 분위기의 상견례를 치러야 했다. 예상했던 것처럼, 그런 인간 관계는 쉬운 일이 아니었다. 무려 아홉 달을 갈라져서, 어떤 의미에서는 ‘적처럼’ 지내왔으니 그것도 당연한 일이라 할 수밖에.
|contsmark3|“그 동안 수고했다”, “수고는요, 일하신 분들이 고생하셨죠.” 파업을 끝낸 마당에, 어떻게 들으면 참 따뜻한 대화라고 할 수도 있는 장면이지만, 서로가 느끼는 불편함과 거북스러움은 글로 옮겨놓은 대화에선 전혀 생생하지 않다. 누구도 진정으로 사과하지 않고 누구도 진정으로 미안해하지 않는, 그런 완전히 다른 입장의 두 가지 종류의 인간들을, 9개월의 파업이 만들어놓은 것이 아닐까.
|contsmark4|사실 이 사태에 책임을 져야 할 사람은, 이 거북스런 인간관계 속에 던져진 우리들 그 누구도 아니라고 하는 것이 정확할 것이다. 동족상잔의 비극 속에서, 또는 정권에 의해 공고화된 분단 체제 속에서, 서로에 대한 적대감만 키워 온 우리들 힘 없고 ‘빽’ 없는 민중들이 단지 희생자들인 것과 어느 정도는 이 지형도 닮아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contsmark5|이 모든 사태에 책임을 져야 할 사람은 여전히 당당하게 cbs의 사장으로 남아있다. 노조 위원장을 헹가래까지 쳐 가면서 파업의 승리를 기뻐했지만, 어쩌면, 바뀐 것은 아무 것도 없는지도 모른다. 누군가가 ‘독이 올랐다’고까지 그 상태를 표현한 사장과 회사측 일부 간부들은, 이제는 파업의 종료를 가져온 노사의 공식적인 합의안까지 정면으로 뒤집어엎으려 하고 있다. 고소고발도 취하 못 하고, 해고된 기자의 복직도 절대로 받아들일 수 없으며, 파업기간 중에 개정된 노동조합규약을 다시 원래대로 돌려놓지 않으면 노사협의도 거부한다는 것이다.
|contsmark6|파업 기간 중에 ‘자질 부족’ 이라는 이유로 해임됐던, 하지만 놀랍게도 그것을 사실로 믿는 사람은 거의 없는, <시사자키>의 진행자 정태인 씨의 복귀도 전혀 불가능한 일로 치부되고 있다.
|contsmark7|어이가 없기도 하고 허탈하기도 하고, 밥을 9일씩 굶어가면서 9개월을 파업을 해 왔음에도 이런 추태의 여지를 남겼다는 게 참 창피할 뿐이다. 어쩌면 더 창피한 것은 창피해 할 줄 모르는 사람들과 아직도 같은 방송에 다니고 있다는 사실인지도 모른다. 얼마나 배울 게 많은 세상인가.
|contsmark8|지 웅 cbs 편성제작국 pd|contsmark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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