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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 3사 토론프로그램, 쟁점은 놓치고 논쟁은 없다

<100분토론>과 <생방송 심야토론>은 한때 전성기를 누렸다. 늦은 시간까지 생중계됐지만 토론자들의 ‘어록’이 인터넷을 통해 퍼지고 토론에 참석한 방청객까지 ‘스타’로 이름을 날리기도 했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토론 프로그램의 주제와 패널, 내용 모두 시청자들의 관심을 끌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토론이 시들해졌다 = 시사토론 프로그램에 대한 시청자들의 반응도 냉담하다. 후한 점수를 찾기란 쉽지 않다. 시청자 이성진씨는 <100분토론> 시청자게시판에 “손석희가 없으니 소 잃은 외양간 같다. 물에 술 탄듯 (토론이) 맹맹하다”고 글을 올렸다. 신성운씨는 <심야토론> 시청자게시판에 “저렇게 쟁점이 없나…차라리 심야토론 접고 심야대답으로 바꿔라”며 꼬집었다.

한 포털 사이트에서 <심야토론>의 평점을 매긴 누리꾼들은 “심야토론도 예전의 프로페셔널함과 중립성을 찾기 힘들어졌다”, “전파가 아까운 토론”, “KBS의 현재를 가장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프로”라는 등의 혹평을 남겼다.

▲ KBS 〈심야토론〉 ⓒKBS

■“정치 이슈 비켜간다” = 지상파 토론프로그램들이 토론에서 사회적 쟁점을 다루지 못하거나 다루더라도 특정 입장에 치우쳐 공정성을 훼손하는 등 퇴행의 길을 가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이명박 정권의 ‘언론장악’ 결과 토론프로그램마저 연성적으로 흐르며 ‘G20’이나 ‘연평도 사건’ 등 친정부적 이슈에만 집중하며 정권 눈치를 보고 있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있다.

유창선 시사평론가는 “토론프로그램의 백미는 정치 토론인데 각 방송사들이 정치 아이템에 대해 부담스러워하는 것 같다”며 “토론프로그램이 관심거리가 안 되는 이유는 핫이슈를 다루지 못해 맥이 빠졌기 때문”이라 지적했다. 그는 “핫이슈에 대한 토론이 공개적으로 잘 이뤄지지 못하면 찬반 표현이 위축돼 정치적 갈등을 해소할 수 있는 공론장이 줄어들게 된다”고 우려했다.

박영선 언론개혁시민연대 대외협력국장도 “방송사가 국민적인 쟁점사안을 누락시켜 자연 고사시키고 있다”며 “손석희 · 정관용 등 사회자를 들어내면서부터 쟁점도 없고 관심도 없는 토론프로그램이 됐다”고 비판했다.

이 같은 지적은 내부에서도 나오고 있다. KBS 사내 심의팀은 <생방송 심야토론> ‘서울 G20 정상회의, 성과와 전망은?’(11월 13일) 편에 대해 “토론이라기보다 패널들을 통한 정책성과 홍보에 열띤 경쟁을 하는 모습이었고 방청객마저 G20 진행스태프로 선정해 G20 홍보에 사활을 건 모습”이었다고 지적했다. <심야토론> ‘수능체제 개편 어떻게 할 것인가’(11월 20일)편의 경우 양대 교원단체 중 전교조 측 패널이 없었으며, ‘연평도 포격 도발, 북한을 다시 본다’(12월 4일) 토론의 경우 “4명의 패널 중 3명이 정부와 대통령을 옹호했다”는 심의지적을 받았다. 또 심의팀은 이날 토론에서 정부를 비판한 김용현 교수(동국대 북한학과)에게 “진행자가 공격적 질문을 던져 중립적이지 못했다”며 진행자의 공정성 문제를 제기하기도 했다.

전국언론노조 KBS본부(본부장 엄경철)는 지난 12일자 노보를 통해 <심야토론>의 편파성과 불공정성을 비판했다. KBS본부는 “지난해 말 한나라당이 예산안을 날치기하고 각종 복지예산을 무더기 삭감할 때 그 주 ‘심야토론’에서 다룬 주제는 ‘줄어든 세밑온정, 기부문화를 생각한다’였다”며 사회적으로 주요한 이슈를 다루지 못하는 상황을 꼬집었다.

이 같은 시사토론 프로그램의 현실은 비단 KBS만의 문제는 아니다. MBC <100분토론>과 SBS <시사토론> 역시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정치적으로 민감한 이슈, 예컨대 ‘MB 레임덕’ ‘종합편성채널 선정’ ‘무상급식’ ‘4대강 살리기 사업’ ‘한나라당 예산안 강행처리’ ‘수신료 인상안’ 등의 사안에 대해선 주제로 다루지 않거나 다루더라도 핵심 쟁점은 피해가는 ‘무색무취’ 토론으로 사회적 갈등을 해결하는 데에는 큰 역할을 하지 못했다는 지적이다. 안준식 MBC 민실위 간사는 “‘100분 토론’의 경우 대표적인 토론프로그램이란 명성에 비해 최근의 아이템 선정이나 패널 선정 및 진행에서 예리함이 무뎌진 느낌”이라고 지적했다.

■제작진과 외부 시각 커 = 제작진 내에서는 고충을 호소했다. KBS <생방송 심야토론> 제작진은 지난 ‘기부분화’ 토론 주제선정의 경우 “무상급식과 관련한 토론을 진행하려 했으나 오세훈 서울 시장의 출연 불발로 당일 긴급히 주제를 바꾼 것”이라 해명했다. 전교조 섭외 제외 지적에 대해서는 “전교조 측이 출연을 고사했다”고 밝혔다.
양찬승 MBC <100분토론> CP는 “(출연자들이) 특정 사안에 대해 몸을 사리는 경우가 많다”며 “이해 당사자들이 토론에 나와 가감 없이 의견을 제시하고 서로 공격하고 방어하며 살아있는 의견이 전달돼야 한다”고 밝혔다. 양 CP는 “(토론프로는) 어떤 이슈를 잡아 어떤 사람들이 나와서 얘기하는 지가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프로그램의 공정성 문제에 대한 반박도 있었다. <심야토론> 제작진은 ‘연평도 포격도발 북한을 다시 본다’ 편의 일방적 패널 구성 지적에 대해 “안보에는 여야가 있을 수 없다”고 반박했으며, 김용현 교수의 경우 “지나치게 좌경화한 발언을 했다”며 도리어 비판하기도 했다. 진행자 공정성 문제에 대해선 “진행 미숙으로 보는 게 옳다”며 “합평회시 MC에게 (공정성 문제를) 주지시키고 있다”고 해명했다.

SBS <시사토론>을 제작 중인 현경보 기자는 토론프로그램의 연성화 지적에 대해 “수긍하지 않는다”고 밝힌 뒤 “찬반이 갈리는 이슈는 부딪히자는 게 우리의 모토”라고 말했다. 현 기자는 “정부의 주요 사안에 대해 논란이 있는 것은 제대로 보자는 입장”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시사토론>은 최근 3개월 간 4대강 사업 문제를 두 번 다루기도 했다.

토론프로그램의 제작진과 외부 시각의 차가 크지만 토론프로그램의 활성화를 위해서는 논쟁적인 사안에 대해 중점 토론을 진행해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주문한다.

정연우 교수(세명대 광고홍보학)는 “현 정권 들어서 방통심의위 등 다양한 차원의 압력으로 제작진이 위축된 것 같다”며 “건드려봤자 골치 아픈 일에 휘말릴 것이라는 우려로 정권에 불편한 이슈는 드러내지 않거나 드러내더라도 면피용으로 핵심을 피해가는 경우가 많다”며 시사프로그램의 ‘순치’를 우려했다.

박영선 언론연대 국장은 “제작자들이 내부 고충을 드러내며 저항해야 토론프로그램에 대한 관심과 지지도 높아질 것”이라 지적했다. KBS본부 또한 “제작 자율성은 연출자 스스로 지켜내지 않으면 누가 거저 가져다주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안정식 SBS 공정방송실천위원장은 “3사 시사토론프로그램이 좀 더 적극적으로 사회적 이슈에 파고들어 우리 사회의 갈등 구조를 가감 없이 풀어야 할 것”이라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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