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D를 위한 영화 읽기 ‘살로, 소돔의 12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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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러움으로 더러움을 타도하라!

|contsmark0|1975년 11월2일, 로마 근교의 공터…온 몸이 난자 당하고 자동차 바퀴에 으깨진 시체로 발견된 피에르 파올로 파졸리니. 영화감독이자 시인이자 정치운동가였던 파졸리니는 그렇게 이 세상의 마지막 페이지를 닫았다. 1961년 데뷔작 ‘아카토네’ 이후 일관되게 프롤레타리아트의 삶을 그려냈고 자본주의의 모순을 재생산해내는 부르조아들의 더러운 행태를 충격적인 영상으로 비판했던 좌파 감독 파졸리니.
|contsmark1|그는 자신이 만든 충격적인 영화들만큼이나 충격적인 죽음으로 세상과의 이별을 맞았다. 그러나 그의 마지막 영화 ‘살로, 소돔의 120일’을 보면 파졸리니는 이미 자신의 죽음을 예견했던 것 같다. 그렇지 않았다면 그토록 극단적인 영상을 만들어낼 수 없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contsmark2|파졸리니의 ‘살로, 소돔의 120일’은 영화사상 가장 잔혹하고 반사회적인 영화로 공인(?)받은 작품이다. 어떤 이는 이 영화를 보고 매스껍다고도 하고, 변태적이라고도 한다. 아주 정확한 표현이다.
|contsmark3|‘살로, 소돔의 120일’은 정말 매스껍고 변태적이며, 잔혹하다 못해 참혹하기까지 한 영화다. 영상으로 보여줄 수 있는 가장 더럽고 폭력적이고, 매스꺼운 장면들은 이 영화 속에 빠짐없이 등장한다.
|contsmark4|파졸리니는 이런 장면들을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이 영화 속에 담아냈다. 맨몸으로 줄에 묶인 채 똥을 핥아먹는 소년, 소녀를 구타하고, 온갖 변태적인 성행위를 강제로 시키고 그 모습에 박장대소하는 파시스트들, 그리고 채찍질과 인두로 살을 지지는 모습을 보면서 음악을 틀어놓고 춤을 추는 마지막 장면에 이르기까지 ‘살로…’는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악랄하고 추잡한 인간들의 모습을 가장 잔혹하게 보여준다.
|contsmark5|그러나 ‘살로…’를 조금만 뒤집어 대하면, 그 더러움과 폭력성에 카타르시스를 느낀다. 그 이유는 내가 사도-마조히스트여서가 아니다. 오히려 그 이유는 악랄하고 추잡한 인간상(‘살로…’에선 사도-마조히스트로 포장되어 있지만)을 그만큼 제대로(?) 그려냈던 영화는 이전에도 이후에도 없었기 때문이다.
|contsmark6|파졸리니는 그 악랄하고 더러운 파시스트들을 그들이 가진 본성과 조금도 다르지 않게(!) 가장 사실적으로 그려냈다. 그래서 이 영화는 통쾌하다. 영화가 이렇게도 사실적으로 세상을 그려낼 수 있다니! 추잡한 인간상을 이보다 더 사실적으로 담아낸 영화가 있었을까? 그리고 앞으로도 있을까?
|contsmark7|‘살로…’에서 보여지는 그 모든 더러움은 그보다 훨씬 더러운 파시스트(혹은 인간)의 본성을 한치의 동정도 없이 쳐부숴 버린다. 이이제이(以夷制夷)라고 했던가? 그것이 파졸리니의 의도였을 것이고, 그 의도는 이 한편의 영화 속에 잘 녹아있다.
|contsmark8|파시스트의 아들로 태어나 아버지를 부정하는 좌파지식인으로 살다가 자신의 한 몸에 지녔던 모순을 힘있는 영상으로 비판하며 세상의 모순을 타도하려 했던 영화감독 파졸리니, 그의 극단적인 삶이 고스란히 담겨진 영화가 바로 ‘살로, 소돔의 120일’이다.
|contsmark9|“나는 나의 아버지를 죽였고, 인간의 살을 먹었다. 기쁨으로 몸이 떨린다”
|contsmark10|─ 파졸리니, ‘돼지우리’ 중 ─
|contsmark11|이승훈 ebs <한국영화걸작선> 연출
|contsmark12||contsmark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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