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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BS에서 PD로 일하는 것

|contsmark0|세상에 pd처럼 편한 직업은 없다, 라는 말로 글을 시작하면 어떨까? 당연히, 벌써부터 눈을 까뒤집고 이 ‘철없는 연사’를 잡아먹으려는 진지한 pd 여러분의 모습이 보이는 듯 하다. 대부분의 pd 동료 여러분들은 ‘pd’라는 이 일을 그리 편한 직업으로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을 내가 아는 까닭이다.
|contsmark1|하지만 한 번 생각해 보자. 적어도 내가 하고 있는 일을 여러분께서 들어보시라. 아침 9시부터 두 시간 동안 방송되는 fm 음악 프로그램 <아름다운 당신에게>를 만드는 나는, 일찍 나올 땐 아침 여섯 시에도 나오고, 별 일이 없고 녹음이라도 해 놓은 날에는 열 시 넘어서 나오기도 한다. 자기 프로그램만 사고 안 내고 만들고 다닌다면 남들처럼 ‘칼 같이’ 출퇴근 기계 안 찍고 다녀도 된다는 이야기다.
|contsmark2|아침 출근 시간에 넥타이에 코트 안 챙겨도 된다는 사실도 다른 사람들이 부러워할 만한 일이다. 요즘 같으면 그저 청바지에 티셔츠 차림이다. 구두도 안 신는다(구두를 신어본 게 6공 때였나 ys 때였나?). 양말도 안 신고 샌들 차림으로 올 때도 있었다. 물론 그럴 땐 바지도 반바지였다.
|contsmark3|그렇게 철 없는 복장으로 회사에 도착해서 가장 먼저 하는 일은 cdp를 꺼내는 일이다. 책상 위에 쌓인 음반 중에서 한 장을 플레이어에 넣고 헤드폰을 쓰고 플레이 단추를 누른다.
|contsmark4|그저 그 뿐이다. 상쾌하고 심플하다. 음악을 들으면서 방송 생각을 할 뿐이다. 우리 손님들-청취자들-에게 어떤 맛있는 음악을 들려드릴까?
|contsmark5|남들처럼 영업 전략회의를 머리털이 빠지게 해야 하는 것도 아니고 판매 실적이 나쁜 걸 고민하며 줄담배에 폭탄주에, 청춘을 불사를 필요도 없다. 건전한 교양인으로서, 열심히 좋은 음악을 골라 멋진 방송을 만들어내면 되는 것이다. pd란 참, 얼마나 편한 직업인가?
|contsmark6|혹시, 약간의 어려움도 없을까? 뭔가 있겠지, 생각들을 하실 텐데, 뭐 놀랄 만큼 특별한 건 없다고 해야 할 듯하다. 작가가 없어서, 진행자인 양창순 씨와 pd인 내가 직접 모든 방송 원고를 쓰고 있다는 것.
|contsmark7|회사에서 컴퓨터를 지급하지 않아서, 형이 쓰던 노트북을 얻어다 3만원 짜리 랜카드를 사서 끼워 근근히 쓰고 있다는 것. 새 음반을 구입할 예산이 부족해서 음반사 홍보 담당자에게 아쉬운 소리를 해야 한다는 것. 이런 구질구질한 구석들이 몇 개 더 있을 뿐이다.
|contsmark8|pd로서 헐렁하게 산다는 건 어쩌면 참 쉬운 일이 될 지도 모른다. 주변의 여건은 우리에게, 어떤 선택이든 할 수 있는 자유를 주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까지 한다. 쉬엄쉬엄 설렁설렁, 자기 시간이나 그럭저럭 메꾸고 데스크에게 크게 욕 안 먹고, 방송 내용보다는 점심 약속이나 챙기면서 시간 맞춰 예배도 들어가고 출퇴근 정확히 하고, 그러면 되는 건지도 모른다.
|contsmark9|cbs 인사위원회는 실제로, 출퇴근을 정확히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한 간부를 대기 3개월의 중징계에 처했다. 누구보다도 정력적으로, 집중해서 일하는 스타일을 가진, 말하자면 ‘pd다운’ 선배였다. 그 분의 징계가, 권호경 사장의 퇴진을 요구했기 때문이라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는 이유가 여기 있다. cbs에서 pd로 일하는 것은, 사실은 편하지도, 쉽지도 않은 것이다.
|contsmark10|지웅 cbs 편성제작국 pd
|contsmark11||contsmark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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