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D를 위한 영화 읽기-돌아온 ‘지옥의 묵시록-리덕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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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메랑처럼 되돌아온 베트남전 영화

|contsmark0|전설적인 베트남전 영화 ‘지옥의 묵시록’이 22년만에 49분을 보완한 새로운 리덕스판으로 돌아왔다. 한편에선 다시 봐도 여전히 대단한 영화라고 하고, 다른 한편에선 덧붙여진 49분이 군더더기 같고 오히려 너무 길어져서 지루했다고도 한다. 하긴 196분 짜리 영화, 그것도 별로 숨을 고를 여유를 주지 않고 시종일관 심각하게 밀어붙이는 긴 영화를 단숨에 보아내는 것은 만만한 일이 아니다.
|contsmark1|영화를 완성도와 재미 혹은 예술적 성취-미장센의 뛰어남 같은 요소들-등 여러 가지 관점에서 평가할 수 있다. 그런데 할리우드에서 이따금씩 나오는 베트남전 영화들은 영화의 사회적 그리고 개인적 차원에서 보다 독특한 기능을 수행한다.
|contsmark2|그건 아주 오래 전에 입은 심리적 상처가 현재의 어떤 순간 대단한 아픔을 주며 살아가는 것을 목격하게 해준다. 만일 그것이 아프다고 해서 없는 척 제거해 버리면 그 때는 넘어가도 차후 더 큰 아픔으로 다가오는 트라우마. 그런 맥락에서 할리우드에서 베트남전 영화는 잊을만하면 다시 모습을 드러내곤 하는 트라우마로 보인다.
|contsmark3|이번에 리덕스판의 탄생이 당시에 작용한 재정, 시간, 흥행압박으로 잘려져 나간 것을 복원한 이유 뒤에는 바로 이 트라우마가 작용하고 있다. 초판과 리덕스판 사이에 존재하는 시간 사이 많은 것이 변했다.
|contsmark4|베트남전이 공산당의 승리로 종결되었고 통일된 베트남은 외부에 문호를 개방한 관광지가 되었다. 그 와중에 ‘플래툰’이나 ‘풀 메탈 자켓’같은 자성적인 베트남전 영화들과 ‘굿모닝 베트남’같은 냉소적 비판이 담긴 영화들이 나왔다.
|contsmark5|미국에서도 베트남전은 미대외 정책의 실수이자 실패이며 도의적 책임감을 느껴야 한다는 점을 수 차례 공식적으로 표명했다. 그래도 베트남전은 여전히 치유되지 않는 상처로 많은 이들에게 남아있다.
|contsmark6|삭제되었던 이미지를 더해 다시 보는 ‘지옥의 묵시록-리덕스’는 바로 그런 상처 드러내기 의식처럼 보인다. 과거의 심리적 상처, 트라우마는 놀랍게도 잊었다고 생각하는 순간, 특히 한참 시간이 지나고 나서 더욱 드러나는 법이 아니던가. 그리하여 해결책은 상처를 드러내고 바라보고 인정하면서 서서히 치유하는 것이다. 시간이 약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는 게 트라우마가 아니던가.
|contsmark7|그런 문맥에서 리덕스판은 아주 느리게 아주 깊은 상처를 치유하는 씻김굿처럼 볼 수도 있다. 그리하여 과거 잘라져나갔던 부분은 너무 아파서 드러내지 못했던 상처를 좀더 온존하게 드러내는 기능을 한다.
|contsmark8|이를테면 베트남전을 스포츠처럼 즐긴 방자한 태도로부터 프랑스 농장부분에서 묘사되는 제국주의적 식민성에 대한 묘사, 헬리콥터 연료와 섹스의 교환같은 장면들은 직시하기 어려운 베트남전쟁의 광기와 악을 담아낸다.
|contsmark9|커츠 대령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원주민들과 같이 있으면 신이 되고픈 유혹을 느낀다’라고. 예전에 볼 때는 깊이 생각조차 해보지 않고 넘어갔던 대사였다. 그런데 리덕스판에서 다시 보니 아프게 마음에 꽂히는 대단한 말이다. 그건 제 1세계의 서양백인이 제3세계 유색인종을 어떤 시선에서 보는가에 대한 적나라한 고백처럼 들리기 때문이다.
|contsmark10|미국편에서서 베트남전에 참전했던 우리에게도 트라우마는 있다. ‘하얀 전쟁’이 최초로 그 상처를 드러냈다. 불현듯 나타난 변진수를 통해서. 그러나 그 이후 우리는 여전히 미국판 베트남전의 트라우마에 자신을 맡겨버린다.
|contsmark11|그러나 그건 우리의 상처와 다르다. 요즘 잘 나가는 한국영화에서 사회적 상처를 치유하는 영화를 만들어도 될 여유와 책임감을 찾아보고 싶다. 엽기적이어도 좋고 액션물이어도 좋으니 라이따이한 문제를 건드리는 한국영화도 나올 만 하지 않은가.
|contsmark12|유지나 동국대 교수, 영화평론가|contsmark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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