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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영국= 장정훈 통신원

21세기에만 볼 수 있는 흥미로운 전쟁이 벌어졌다. 한쪽에선 “하지말라”며 ‘명령의 포탄’을 날리고, 다른 한편에서는 “웃기지 말라”며 ‘조롱의 반격’을 가하고 있다.

다름아닌 법과 소셜 네트워크 이용자 간의 전쟁이다. 전쟁의 명분은 다름 아닌 ‘유명인 사생활’이다. 법원은 유명인일지라도 사생활은 보호받아야 한다는 논리로, 소셜네트워크 이용자들은 표현의 자유와 투명성은 민주주의의 근간이라는 논리로 팽팽히 맞서고 있다.

본격적인 전쟁의 시작은 BBC의 간판 기자이자 진행자인 안드류 마(Andraw Marr)였다. 그는 동료 여기자와 사귀고 있었다. 그런데 그는 가정이 있는 남자였다. 사회 통념상 부적절한 관계였던거다.

그는 그러한 사실이 세상에 알려지지 않기를 바랬고 누구든 자신의 사생활에 대해 보도할 수 없도록 법의 힘을 빌렸다. 아무도 모르게 법원에 슈퍼인정션(Super Injunction), 즉 ‘사생활 보도 금지명령’을 신청했던 것이다. 세상은 손가락질을 해댔고 그는 곧 자신의 보호막을 거두어 들였다. 그러면서 이렇게 말했다. ‘창피하고, 찜찜하다. 하지만 내게는 대중의 관심으로부터 보호해야 할 가족도 있다.”

‘사생활 보도 금지명령’으로 비밀리에 법의 비호(?)를 받고 있는 유명인은 여럿 더 있다. 누군가는 그 사실을 알고 있었고, 그 누군가의 손에는 트위터라는 최첨단 무기가 쥐어져 있었다. 그들의 이름은 곧바로 세상 천지로 퍼져나갔고, 비밀은 의미가 없어졌으며, 법원과 유명인들은 순식간에 조롱거리가 되어 버렸다.

법원이 사생활 보호를 신청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보호막을 쳐주는건 아니다. 그들도 표현의 자유, 언론의 자유, 정보공개의 중요성 등을 고민하기 때문이다. 실례로 영국 국가대표 축구선수면서 첼시의 주장이기도 한 존 테리의 사생활 보호 신청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트위터와 같은 소셜네트워크은 그런 소식까지도 실시간으로 퍼 날랐다.

‘사생활보도 금지명령’으로 보호막을 치고 있으면서도 소셜네트워크의 타깃이 되는 이들 중엔 유독 축구선수가 많다. 그리고 폭로의 주요 내용은 여자 문제다.

최근엔 슈퍼모델겸 리얼리티쇼 스타, 이모겐 토마스가 이슈의 중심 인물로 떠 올랐다. 그녀가 CTB라는 이니셜로만 알려진 (사실 트위터나 인터넷에서 실명을 바로 찾을 수 있다) 축구 선수와 부적절한 관계를 가졌다는 것인데 CTB의 실명을 알리고 퍼뜨린 트위터리언(트위터 이용자)들이 허위사실 유포와 ‘사생활보도 금지명령’ 위반으로 고소를 당했기 때문이다.

트위터상에서 수만명에게 공개된 CTB의 실명을 영국의 주요 언론들은 공개하지 못하고 있다. CTB가 ‘사생활 보도 금지명령’의 보호를 받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가운데 지난 22일자 <선데이 헤럴드>가 1면에 그의 실명과 사진을 실었다. <선데이 헤럴드>는 스코틀랜드에서 발행되는 주요 일간지다. 사실상 영국과 한 나라나 마찬가지이지만 스코틀랜드는 ‘슈퍼인정션’의 법적 효력이 미치지 못하는 곳이다. 슈퍼인정션은 영국과 웨일즈에만 효력을 미칠 수 있다.

이쯤되면 전세는 법원과 유명인들에게 유리하지 않아 보인다. 한 두 가지 문제가 걸리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제대로 된 법적 제제를 가하려면 트위터 본사도 대상이 되야 하는데 그 회사는 미국 샌프란시스코에 있다. 스코틀랜드와 마찬가지로 영국법이 영향력을 행사할 수 없는 곳이다.

소셜네트워크엔 국경이 없다. 포스팅을 한 사람이 영국사람이 아니라면 이 역시 처벌을 하기 어렵다. 한국인이 한국에서 포스팅을 했다면 그를 영국 법정에 세울 방법은 없다.

데이비드 카메룬 총리조차 우호적이지 않다. 그는 “의회가 고민해 만들어야 할 사생활 보호법을 법원이 만들고 있다”면서 “모든 사람들이 알고 있는 사실을 신문이나 방송이 다룰 수 없다는 건 문제가 있다. 사생활 보호 조치에 대해 의회차원의 재검토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국회의원중엔 “슈퍼인정션이 악용돼 유명인의 부정을 숨겨주고 있다”고 비난하는 이도 있다.

▲ 영국=장정훈 통신원 / KBNe-UK 대표
그렇다면 미디어들은? 그들은 이렇게 말한다. “어쨌거나 모두가 알고 있다.”

때문에 초등학생들조차 가지고 있는 휴대폰과 소셜네트워크을 제재할 수 있는 방법은 현실적으로 없어 보인다. 혹자는 이렇게 묻는다. “법대로 집행할 경우 최소한 3만명이다. 3만명을 모두 감옥에 넣을 수 있는가?”

이런 가운데 ‘사생활 보호’와 ‘표현의 자유’. 어느 쪽도 포기할 수 없는 이 두 가치 사이의 전쟁은 이미 3개월이 넘어서고 있다. 전쟁의 끝은 묘연해 보인다. 소셜네트워크는 통제가 불가능해 보이는 새로운 차원의 미디어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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