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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임상규 순천대 총장이 자살을 했다는 뉴스를 접했다. 농림수산부 장관까지 지낸 고위공직자 출신이 비리 혐의로 수사망이 좁혀지자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것이다. 얼마 전에는 부실 저축은행에 대한 수사가 본격화되면서 전ㆍ현직 고위 관료들이 줄줄이 구속되었다. 감사원의 감사위원까지 구속되는 초유의 일이 일어났다.

오는 6월 28일이면 부패방지법이 제정된 지 10년이 되지만, 여전히 한국의 부패 수준은 심각하다. 때만 되면 터져 나오는 부패와 그 때마다 나오는 임시 방편적인 대책들은 이제 지긋지긋하다. 선거가 다가오면서 여ㆍ야가 모두 ‘민생’을 외치지만, 아직도 공직자들이 뒷돈을 받는 국가에서 진정성있는 민생대책이 나오기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부패 근절을 위해서는 투명한 정보공개, 공익제보자에 대한 보호 등이 필요하지만, 독립적인 사정기구도 반드시 필요하다. 그리고 그 대안으로는 이미 십 수년간 논의되어 온 ‘고위공직자비리조사처’가 있다. 고위공직자들의 부패 수사를 전담하는 독립기구를 둬서 부패가 발붙이지 못하게 하자는 것이 핵심이다. 그런데 최근 이 오래된 염원이 실현되는 듯했다. 3월에 국회 사법제도개혁특별위원회 6인 소위원회가 판ㆍ검사들의 범죄를 수사하기 위한 특별수사청을 설치하겠다고 발표했기 때문이다. 이 방안은 조금만 손보면 괜찮은 방안이다. 수사대상만 확대하고 독립성만 강화하면 그동안 시민사회에서 주장해 온 ‘고위공직자 비리조사처’의 설치로 이어질 수 있다.

그러나 여야 정치권이 1년 4개월간 논의해온 ‘사법개혁안’은 검찰의 반발 등에 부닥쳐 사실상 무산됐다. 임상규씨가 자살한 바로 어제 국회 사법제도개혁특별위원회는 특별수사청 설치, 대검 중수부 폐지 등 사법개혁의 핵심 사안들에 대해 더 이상 논의하지 않겠다고 발표했기 때문이다.

이번 사건이 남긴 뒷맛은 씁쓸하기 짝이 없다. 결국 여당이든 야당이든 검찰의 눈치를 본다는 게 명확해졌다. 사실 야당이 ‘대검찰청 중앙수사부 폐지’가 만능의 대안인 것처럼 얘기할 때부터가 이상했다. 독립성이 없는 수사가 문제라면 독립성이 있는 수사를 할 수 있는 주체부터 마련하는 게 우선일 텐데, 그런 얘기는 없이 막연하게 ‘대검찰청 중앙수사부 폐지’를 외치는 것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런데 이렇게 논의가 흐지부지된 것을 보니, 사법개혁 논의를 대충 마무리하기 위한 수순이 아니었는지 의심된다.

사실 국민들이 원하는 것은 단순하다. 국민들은 판사든 검사든 국회의원이든 고위공무원이든 독립된 수사기구가 철저하게 수사하는 것을 원한다. 그래서 부패가 발붙이지 못하게 하기를 원한다.
이 소박한 희망이 또 다시 표류하게 되는 것을 보면, 부패를 근절하고 사법을 개혁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다시 생각하게 된다. 아마도 이 문제가 해결되려면 대한민국의 정치가 근본적으로 변해야 할 듯하다. 검찰의 눈치나 봐야 하는 정치권에서는 개혁을 제대로 할 수 없다는 것이 이번에 다시한번 확인되었기 때문이다.

▲ 하승수 정보공개센터 소장

부패근절이나 사법개혁은 결국 입법을 통해서만 풀 수 있는 문제이다. 입법권을 쥐고 있는 국회를 통하지 않고서는 한 발도 나아가기 어려운 것이다. 그런데 현재의 기득권 정치는 부패한 돈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고, 개혁입법을 관철할 의지가 없다. 이럴 때 우리 국민들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 우리는 이런 딜레마에 빠져 있다. 그래서 선거가 중요하다. 내년에도 검찰의 눈치를 보는 국회의원들이 당선된다면, 개혁은 요원한 일이다. 그렇지 않은 길을 어떻게 열 수 있을까? 변화를 바라는 사람들의 집단적인 지혜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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