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설] KBS 스스로 ‘도청 의혹’ 밝혀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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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 ‘KBS 수신료 대책회의’ 도청 의혹을 받고 있는 KBS 장아무개 기자의 휴대전화와 노트북이 경찰의 압수수색이 있기 전에 교체된 것으로 밝혀졌다. 이에 따라 경찰의 압수수색은 성과를 기대하기 어려워졌고, 사건은 점점 미궁 속으로 빠져들 조짐을 보이고 있다. KBS 측은 단순한 분실 사고라고 설명했지만 얼마나 신빙성을 가질지 의문이다.

애당초 논란을 키운 당사자는 아이러니하게도 KBS였다. KBS는 사건 이후 여러 차례 말을 바꾸며 관련 의혹을 부인했다. 처음에 자사 관련설이 불거지자 한동안 침묵 모드로 일관하더니 지난달 30일 보도자료를 통해 “민주당이 주장하는 식의 도청을 한 적이 없다”는 입장을 내놨다. 그러나 이 같은 해괴한 논리는 금세 “다른 형태의 도청은 있었다는 얘기냐”는 반박에 부딪혔다. “귀대기를 할 수도 있다”는 KBS 일부의 주장에 대해서는 그런 취재방식으로 회의 내용을 엿듣기는 불가능하다고 경찰이 결론 내렸다. 이번에 KBS가 또다시 내놓은 해명은 “제3자의 도움을 받았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 경위가 불분명할뿐더러 한나라당과의 관련설에 대해서는 여전히 입을 닫고 있다.

경찰 수사에 대해 “언론자유에 대한 심각한 위협” 운운한것 역시 의혹의 본질을 호도하는 주장에 불과하다. 언론자유는 부당한 권력행사에 맞설 때 통용되는 말이지 지금처럼 자사의 이해가 걸린 사안을 놓고서는 여론의 호응을 얻을 수 없다. 지금 KBS에게 필요한 건 솔직한 자기반성이다.

KBS 이사회 또한 제 역할을 해야 한다. “지금은 의혹만 있어 진상조사를 논의하기에 이르다”는 소극적인 자세로는 곤란하다. 경찰이 KBS를 정조준하고 있고, 만에 하나 의혹이 사실로 드러난다면 김인규 사장을 비롯한 KBS 경영진의 진퇴는 물론 공영방송의 존재 이유에 대한 근본적 물음까지 나올 수 있는 중차대한 사안이기 때문이다. 이사회는 보다 적극적인 태도로 당장 진상조사에 착수해야 한다.

도청 의혹을 촉발시킨 한나라당 한선교 의원이 예정대로라면 유럽 방문을 마치고 13일 귀국한다고 한다. 한 의원은 언론을 담당하고 있는 국회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원회 여당 간사인 동시에 법안심사소위원장으로서 수신료 인상안을 날치기 처리함으로써 이번 사태의 빌미를 제공한 장본인이다. 더 이상 경찰 수사를 피하지 말고 공당의 정치인으로서 책임을 져야한다.

제1야당에 대한 도청이 실제로 발생했다면 이는 국기를 뒤흔드는 매우 중요한 사건이다. 그 의혹의 중심에 공영방송 KBS가 있는 것 또한 참담하기 이루 말할 데 없다. 의혹의 당사자들이 정말로 억울하다면 정정당당하게 진상을 공개하면 그만이다. 지금 필요한 것은 구차한 변명이나 말 바꾸기가 아니라 결자해지(結者解之)의 진솔한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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