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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영성 저버린 MBC 조직개편
  • 승인 2001.09.2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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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smark0|기구개편으로 시사교양국이 없어질 위기에 몰리자 ‘교양 pd’들은 요즘 매일 저녁 회의를 한다. ‘교양 프로그램’의 정체성이 무시된 데 대한 분노, mbc의 공영성을 실종시킬 게 예상되는 개편안에 대한 성토, 그리고 시사교양국 존속의 당위성을 주장하는 논리들이 한없이 이어진다.
|contsmark1|개편안대로 가면, <이제는 말할 수 있다> 등 일부 프로그램은 보도제작국과 통합하여 ‘시사제작국’이 되고, 나머지 프로그램들은 예능국에 흡수되어 ‘tv제작2국’이 된다.
|contsmark2|mbc 조직표에서 ‘교양’이라는 말은 사라지고, 교양 pd들은 양분되어 한쪽은 기자와 ‘융합’되고 나머지는 예능 프로그램으로 ‘견인’되어 시청률을 최우선 가치로 여기는 상업논리에 함몰될 것이라는 게 공통된 분석이다.
|contsmark3|mbc의 공영성을 대표하며 유익한 프로그램을 만들어 왔다는 자부심이 한 순간에 짓밟히고 ‘교양 pd’들이 오랜 세월 발 딛고 일했던 토대 자체가 두 동강이 날 위기이니 어느 때보다 pd들은 처절하다.
|contsmark4|pd들이 특히 분개하는 이유는 20일 아침 나온 성명서의 다음 구절이 잘 말해 준다. “실질적인 방송의 철학도, 개혁에 대한 청사진도, 또 그것을 추진할 능력도 없는 경영진이 오로지 ‘개편을 위한 개편’을 통해 개혁을 호도하고 자신들의 단기적 성과를 대내외에 과시하고자 하는 것”이 이번 기구개편의 본질이라는 인식은 폭넓은 공감을 얻고 있다.
|contsmark5|이제 ‘교양’이라는 말에 작은 따옴표를 붙여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mbc에서는 멀지 않은 장래에 ‘교양 프로그램’, ‘교양 pd’ 라는 단어 자체가 전설 속으로 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분명한 게 하나 있다. 설혹 최악의 사태가 일어나더라도 교양 프로그램의 실종을 막기 위해 pd들이 최선의 노력을 다했다는 점은 역사의 기록으로 남겨야 한다는 것이다.
|contsmark6|긴 회의를 마치고, 정말 오랜만에 몇몇 후배들과 생맥주 한잔을 나눴다. 평소에 말이 적고 회의에서 한 마디 없던 후배가 입을 열었다. “10년 동안 아무 말 없이 이 프로그램 저 프로그램 해 왔어요. 특별히 어떤 프로그램하고 싶다고 얘기한 적도 없어요. 언젠가 기회 되면 다큐멘터리 한번 할 수 있겠지 생각하며 일했는데, 솔직히 허탈해요…”
|contsmark7|생활정보, 재연프로, 시사고발, 다큐멘터리로 이어지는 교양 프로그램의 사슬이 끊어진 아픔을 몸으로 느끼는 것이다.
|contsmark8|늘 논리 정연하고 입장이 분명한 한 후배가 말을 받는다. “대학 때 <명곡의 고향>, <명화의 고향> 보면서 mbc가 정말 좋은 프로그램 하는구나 생각했어요. <인간시대>는 바로 그 시절에 필요한 프로그램이었어요. 하게 된 건 그 동안 교양 pd들이 쌓아온 토대가 있으니까 가능했어요.
|contsmark9|지금 <이제는 말할 수 있다>도 하루아침에 된 게 아니에요. 다 교양 프로그램의 전통 속에서 이뤄진 거잖아요. 기획서 한 장 쓴다고 프로그램이 저절로 나오는 건 아닌데 너무 가볍게 생각하는 게 화가 나요.” 수많은 피땀과 열정으로 쌓아온 시사교양국의 고유한 전통과 저력이 몇몇 사람의 오판으로 무너진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는 절규다.
|contsmark10|나는 1984년 교양제작국이 생긴 직후 mbc에 입사했으니 토종 ‘교양 pd’ 첫 세대다. 17년 동안 화려하지 않지만 언제나 ‘지금 이곳의 시청자에게 필요한’ 프로그램을 하려고 노력해 왔다는 게 속으로 늘 자랑스러웠다.
|contsmark11|시청자와 동료들의 상식을 뛰어넘는, ‘튀는’프로그램을 만들어야 직성이 풀렸고, 대부분의 경우 ‘바른 방향으로’ 튀었다고 자부해왔다. 그리고 이렇게 튈 수 있으려면 개인의 능력도 중요하지만 교양 pd들의 정체성이 보장되는 터전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는 점을 알고 있다. 지금의 이러한 위기를 미리 막지 못했다는 점에서 특히 후배들에게 미안하다.
|contsmark12|‘시사교양국’ 프로듀서들의 성명서를 다시 읽는다. “우리가 만든 수많은 프로그램들은 폭압의 시대에 사회적 약자의 눈과 입 역할을 해 왔으며, 이 시대를 힘들게 살아가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따뜻한 감동과 위로를 주었다. 그러한 노력은 ‘공영방송 mbc’가 반드시 지켜야 할 가치라고 확신한다.”
|contsmark13|시사교양국의 실종은 ‘교양 프로그램’의 토대에 균열을 가져오고, mbc의 공영성은 서서히 퇴색하게되고, 어느 한 순간 되돌아보면 맹목적인 시청률 경쟁이 판을 치는 황폐한 방송만 남아 있을 것이다. 그것은 명백히 시청자들의 손해다.
|contsmark14|※ 본칼럼은 mbc 조직개편안이 이사회에서 수정되기 전에 쓰여진 것으로 일부 내용이 사실과 다를 수 있으나, 이번 조직개편안 파동을 보는 mbc 시사교양국 pd들의 공통된 심경을 담아 수정없이 싣는다.
|contsmark15|이채훈 mbc 시사교양국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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