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연이은 해킹 사건의 불편한 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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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말 SK커뮤니케이션즈가 운영하는 국내 3위의 포털업체이자 최대 SNS(소셜 네트워크 서비스) 사업자인 네이트와 싸이월드가 해킹을 당했다(엄밀히 말하면 크래킹(cracking)이지만 편의상 일반적 용어인 해킹으로 하겠다). 유출된 개인 정보만 3500만 명이 넘는다고 하니 규모를 짐작케 한다. 이 사건은 올 초에 농협을 위시로 한 각종 금융기관의 사고에 이어 초대형 컴퓨터 개인 정보 유출 사건이다.

최근 컴퓨터 범죄는 고도로 지능화되고 있다. 심지어 일부 파일공유(P2P) 사이트에서는 전문 프로그램까지 유포되고 있는 실정이다. 뿐만 아니라 전문 해커들에 의한 범죄 역시 나날이 증가하고 있는 추세다.

그런데 이런 대형 사건이 벌어질 때마다 반복되는 보도가 있다. “중국을 경유한 해커들의 소행”, 또 “반국가 단체 또는 북한의 전문 사이버 공격” 이라는 보도가 단골 메뉴다. 마치 모든 언론사의 논조는 공격한 해커나 불순한 단체가 잘못이고, 우리는 단지 피해자라는 인식만 제공하고 있다. 과연 그것이 전부일까? 우선 최근의 해킹 사건과 관련된 언론 보도는 두 가지의 진실을 심각히 왜곡하고 있다.

첫째, 해킹에 무방비인 국내 인터넷 보안 현실이다. 만약 이번 사건이 북한의 소행이라면 그것은 심각한 문제다. ‘열 사람이 도둑 하나 못 막는다’고 해도 잦은 해킹과 개인 정보의 유출과 피해가 반복된다면 그것은 국가 보안 시스템에 구멍이 뚫린 것이다. 이것은 오프라인에서의 연평도 포격과 같이 사이버 상에서 침공을 당한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그것을 대수롭지 않게 언론은 보도하고 있고, 국가 보안 담당 중 책임져야 할 기관과 사람은 거론하지 않고 있다.

▲ 3500만여명의 개인정보가 유출된 네이트·싸이월드 해킹 사건의 피해자들이 정부에 주민등록번호 변경을 공식 요구하고 나섰다. 사진은 주민등록번호 변경 청구서.

만약 이것이 일부 악의적인 개인에 의해 저질러졌다 해도 문제다. 국내 대형 포털과 안전이 생명인 금융기관이 일개 해커에 의해 농락(?)당할 정도로 취약한 보안 시스템이라는 것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기술사적으로 해킹 기술이 보안 기술보다 빨리 발전한다는 것은 전문가라면 다 안다.

하지만 그것을 막는 기술력이야말로 국가와 기업의 기술 수준을 알려준다. 그런데 그것이 쉽게 구멍이 났는데 누구 하나 책임지는 사람은 없고 시스템적인 오류를 속 시원히 이야기 하지 않는다. 그리고 어떤 언론에서도 본질적인 문제에 대해서는 보도하고 있지 않다. 북한의 소행이든, 중국 해커의 소행이건 이건 심각한 국가 안보와 관련된 문제였는데 말이다.

둘째, 시민사회와 학계에서 우려했던 개인 정보 집중화로 인한 피해가 결국 대형 사고를 불렀다. 그리고 이면에는 인터넷 실명제(제한적 본인확인제)의 폐해가 고스란히 드러났다. 인터넷 실명제는 제도적으로 인터넷서비스를 이용하기 위해서는 이용자의 실명과 주민등록번호를 확인하는 제도이다.

그러다 보니 모든 사이트에서는 각종 개인 정보다 축적되고 있었던 것이다. 우리가 사이트 가입할 때 알게 모르게 제공했던 정보가 인터넷에서 떠돌고 있는 것이다. 한국에서 주민등록번호는 모든 공적·사적 행위의 시작이다. 여기에는 출생에서부터 성별, 생년월일 등 여러 정보가 내장되어 있다. 일부 인터넷사에서는 회원 가입을 위한 주소와 취향, 관심사 등 추가 정보를 요구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과도하게 개인 정보가 노출되고 그것이 일부 사이트에 집중되었던 것이다. 때문에 한곳을 해킹하면 수천만 명의 고급 정보를 얻을 수 있는 해커들의 ‘보물 창고’가 된 것이다.  

▲ 송경재 경희대학교 인류사회재건연구원 학술연구교수
물론 이외에도 여러 문제가 있다. 개인 정보에 대한 인식의 부재, 교육의 문제 등 정보사회에서 제기되는 여러 문제가 올해 해킹 사건에 다 녹아 있다. 그런데 언론은 이런 심각한 문제에 대해 핵심적인 본질을 다루는 심도 있는 보도를 하지 못하고 있다. 이번 해킹 사고는 단순한 사고가 아니다. 크게는 국가 안보와 관련되어 있고 작게는 개인 정보 유출과 실명제라는 규제에 따른 피해가 농축되어 있다. 이제라도 사건의 본질에 대한 체계적인 인식과 의식을 전환해줄 수 있는 언론 보도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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