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D의 눈] 제국의 황혼, 그 쓸쓸함과 무서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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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고 붉은 불덩어리 같은 해는 그 어느 때보다 큰 덩치를 뽐내며 맹렬히 타올랐다. 그게 마지막 석양인지도 모른 채. 그리고 이제는 가누기 힘든 거구를 수평선 너머로 누이면서 마지막 가쁜 숨을 내뿜는 이 제국을 우리는 미국으로 기억하게 될 것이다. 영국과 파운드의 패권이 지배했던 19세기를 이어받아 한 세기 가까운 세계 제국의 지위를 누렸던 미국과 달러의 시대가 끝나가고 있음을 부인할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뜨는 해는 지고 차는 달은 기우는 법이니 말이다. 우주 삼라만상이 모두 그러하다.

2008년 금융 위기가 달러의 패권 시대가 끝나고 있음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면, 지금 촉발된 달러 신뢰의 위기는 미국이라는 제국 자체의 생명이 다하고 있음을 알리는 고백에 다름 아니다. 레이건이 도입한 신자유주의로 제국과 달러의 생명을 총칼을 앞세워 연장할 수는 있었지만 부시 정권에 와서는 그 어떤 전쟁으로도 달러와 제국의 심장에 다시 신선한 피를 공급할 수 없다는 자괴감만 확인할 뿐이었다. 그런 면에서 이라크 전쟁은 제국의 마지막 영광을 확인하는 쓸쓸한 회한의 전쟁으로 역사에 기록될 것이다.  

이 엄중한 세계사적 격변기에 다시 광복절을 맞이하는 기분은 우울하고 무섭다. 지금까지 한반도는 시대의 흐름을 거슬러 역사를 그르치는 많은 질곡의 기억들 속에 존재했기 때문이다. 길게는 수·당과 원·명의 교체기에서부터 가깝게는 명·청 교체기와 동서 열강의 세력이 뒤바뀐 서구 식민지 쟁탈전까지, 우리 민족의 권력층은 때론 명분 싸움과 때론 정쟁으로 동북아 전체의 판세를 읽지 못하는 오류를 범했던 것이다. 그리고 그 결과는 대부분 동북아를 둘러싼 전쟁과 왕조의 몰락 그리고 민중의 고통으로 귀결되었다.  

지금이 바로 그 전환의 시대이다. 그래서 수많은 질문과 두려움이 생기는 것을 어찌할 수 없다. 달러가 휴지가 된다면? 미국이 디폴트를 선언한다면? 세계 기축통화가 어느 날 갑자기 열강들의 밀실 회의로 한순간에 금으로 바뀐다면? 기축통화와 세계 패권을 둘러싼 투쟁이 동북아를 중심으로 하는 전쟁으로 폭발한다면? 세계 무역이 ‘만인대 만인’의 보호무역으로 옮겨간다면? 다국적 투기자본들이 한국과 아시아의 신흥국가들에게 다시 금융 위기를 촉발시키려는 악의적 도발을 한다면?

이 모든 질문들에 누가 답을 해 줄 것인가. 미국은 영원한 제국이고, 미국은 변치 않을 우방이고, 미국은 정권 안보의 최고의 방어막이라고 철석 같이 믿는 정권에게서 답을 기대할 수 있을까? 언론이라도 절체절명의 시간으로 다가가고 있는 한반도를 둘러싼 엄중한 위기를 국민들에게 알려야하지 않을까. 먹구름은 천천히 모이지만 폭풍우는 순식간에 닥친다. 동북아 수억 명 민중의 목숨과 재산이 백척간두에 서있다.

 

▲ 김욱한 포항MBC 편성제작팀장

 

세상의 하늘이 무너질까 걱정하던 이가 ‘기’나라에 있었는데 그의 걱정을 세상 사람들이 조롱하며 기우(杞憂)라고 불렀다 한다. 기우가 기우에 그치는 것은 천만다행일 것이다. 문제는 기우가 기우가 아니었을 때다. 그래서 기우는 앞서가는 시대의 고민일 수도 있는 것이다. 하지만 내 걱정이 제발 기우이길 바라는 심정 간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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